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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도 바뀌고 환경도 바뀌다

사람은 참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동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by yeon

이곳으로 일을 하게 되면서 나는 어쩌다 보니 운이 좋았던 것인지 내가 잘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매달 매달 전체 직원 중의 1위를 했다


이곳은 매월 1일이면 매월말일까지의 실적을 정산하여 매월 1일에 극장을 통째로 다 빌려서 시상식을 하고 영화 관람을 하는 시스템을 이곳의 운영센터장의 운영 방식이었다.

이곳에 인원은 총 1000명 정도 된다.

여기서 매월 나는 지금 이제 1년째 1등을 하고 있다.

어쩌다가 2등을 할 때도 있었지만 거의 그런 경우는 드물어서 매월 1등을 했고 시상식에 상패를 거의 다 받았고 수상금까지 매월 꼬박꼬박 받았더랬다.


그래서인지 내가 전화를 하는 콜의 내용이라던지, 방식과 대화 방법 등을 많이 녹음해서 사람들에게 윗사람들이 전파한 것 같다. 잘하는 사람을 따라 하거나 배울 점이 있다면 그것을 인용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도 방법이고 그것을 선호하는 것이 이곳의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잘 안다. 나의 통화내용은 절대 교육용이 될 수 없다.

이유는 명확하다. 상담은 정확하게 한다.

고지도 정확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소통에 있어서의 공감이라고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고객에게 연락을 했다. 이 고객은 지금 노후를 생각하고 있는 고객이며 아이가 둘이 있다.

현재 가지고 있는 보험들은 거의 많지가 않고 소수만 가지고 있다.

이런 경우 나는 이렇게 말을 한다. 고객님 보험은 노후에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 회사를 다니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거의 없는데, 공부를 하다 보니 보험이라는 것이 어떨 때는 부담되어 가입이 힘들고 어떨 때는 필요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서 쉽게 해약을 하게 되죠

저 또한 그렇고 지금도 저는 보험을 그리 많이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 나이가 00살인데,. 만일 고객님께서 제 나이에 보험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가지셨다면 지금의 나이에는 아마 몇 년만 더 내면 완료되는 보험들이 많을 거예요.

보험료는 형편의 문제도 있지만 마음의 문제도 있고 그리고 미래의 문제가 한꺼번에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지금 제가 안내해 드릴 보험은 가격이 2만 원 정도 가량 되는 보험인데 이 보험은 이런 이런 혜택이 있고 이런 혜택이 있어요 지금부터 어떻게 어떻게 몇 년까지 납부하시면 얼마이고 이 돈은 중간에 급한 일 이 있으면 해지가 아니라 중도인출 기능이 있기 때문에 비상금으로도 사용하실 수 있어요.

이런 부분을 감안했을 때 고객님이 한 달에 2만 원을 덜 쓰고 보험료로 납부가 된다면 고객님의 자녀분이 성인이 되었을 때 만기 환급을 받으셔서 보탬이 되실 수도 있고 그 안에 사고가 발생하면 보험해택도 받으실 수 있기 때문에 이 보험을 권해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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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느 날 길을 지나가는데 어떤 꼬마아이가 핫도그 하나를 사 먹으면서 친구에게 너도 하나 사줄까? 내 가방 들고 다녀!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거든요? 그 아이 집은 부유 할까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아이는 핫도그 사 먹을 돈도 받지 못해서 아끼는 거겠죠 친구가방을 들어주면 핫도그를 먹을 수 있으니까요. 아이들은 단순하지만 그걸 보는 어른인 저로서는 맘이 좀 아프더라고요. 만일 내가 결혼해서 내 자녀가 저렇게 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드니까 화도 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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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 적어도 그런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말을 했다. 이 멘트는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가 내가 항상 이런 식으로 상대방을 파악하고 그 사람의 맘에 와닿게 이야기하려고 했기 때문이고 이 고객은 이로서 이 보험을 가입함은 물론이며 소개로 몇 명을 더 가입시켜 주셨다.


이런 것들은 그때 그때 상황이 달라지고 잘못 삐딱하게 들으면 " 이 여자가 뭐라는 거야?"" 그래서 내가 뭐 그렇게 거지라도 된다는 거야? 이런 식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에 상담원의 말투와 공감에 대한 능력대처가 중요하다. 그것이 나만의 스타일이었고 나는 그것을 고수해 왔고 여기까지 올라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교육용으로는 부적합하기 때문에 거의 고정멘트를 쓰고 스크립트대로 따라 읽는 그런 창조적이지 못한 내용들로 가득 찬 교욱용 녹음 콜들만 상담원들은 들을 수박에었다.

"넌 어떻게 그렇게 잘하니?"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난다,

"그냥 어찌하다 보니까 잘 되는 거 같아. 방법은 따로 없고 그냥 내 방식대로 하는 거?"라고 말을 한다.

이런 말이 이쁘게 들리지는 않고 잘난 척하는 것처럼 들린 모양이다.


물어봐놓고는 나보고 싹수가 없다고 한다.

여기서 이때부터 나의 별명읜 싸기 지였다. 싸가지라는 말을 하기가 너무 노골적이어서 그런지 4가지라고 불러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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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따가운 눈초리로 보고는 했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그냥 무시했고, 나와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들은 나에게 말을 걸어왔고 그중에서도 몇 명은 또 악담을 해댔고 몇 명은 진심으로 나에게 대해줬다.

그 진심으로 대해준 사람은 동생이 되었고 남자 동생으로 지금까지 몇십 년 동안 나와 연락을 하고 지낸다.

그 동생은 결혼도 했고 가정도 잘 꾸리고 있다. 참으로 좋은 동생을 이곳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이곳에서의 적응기는 진행되었고, 나는 나만의 스타일로 계속 진화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욕심을 너무 부린탓인지 몸이 좋지 않았다. 하루종일 앉아서 콜을 하다 보니 방광에 문제가 발생했고 어린 나 이게 방광염이 와서 꽤나 고생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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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픈 거보다 결석하고 돈을 못 버는 것이 난 더 싫었던 모양이다.

어릴 때부터 몸관리를 해야 한다고 어른들을 말하지만 어릴 때부터 돈을 벌지 못하면 몸이 아무리 건강해도 무슨 소용이야?라고 생각했다.


이때 나의 월급은 월 600이 넘었다.

거의 매월 그렇게 받았고 나름의 생활도 풍족해졌다.

일 년 정도 일하고 나니까 돈이 조금씩 쌓인다. 나는 돈을 모두 다 엄마에게 주고 엄마가 관리한다.

말했지만 집에 가지고 가면 현금으로 뽑아서 어디 얼마 어디 엄마 이렇게 해놓고 남는 돈은 적금하고 나머지는 용돈을 받아서 썼다. 그때는 내가 아직도 빚을 갚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나의 명의로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돈을 입금해도 내 통장이 아니라 엄마의 통장이나 아빠의 통장에 입금해서 보여주고는 했다.

한 치의 의심도 없었고, 그냥 내가 열심히 일한 돈을 모으면 집을 하나 일찍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집욕심이 있었고 또 운전면허증도 땄으니 차도 하나 사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이제는 어른이고 내가 돈을 직접 벌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었다.

신용카드는 물론 안되니 무조건 현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돈에 대한 집착을 엄청 부렸다.


이제부터는 나도 도약을 할 시기이고, 나도 뭔가를 자신감 있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일 년이나 지나서 알았다.

주변도 이제 눈에 들어온다. 일 년 동안 이곳에 혼자 적응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고 아파도 단 한 번도 지각이나 결석을 한 적이 없다. 이제는 익숙해진 환경.


난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편이지만 이때는 어릴 때였고 이때는 일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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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이 되는 날 나는 이곳에 새로 입사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고 주변이 보였고 사람들이 보였다.

그전까지는 그저 치열하게 혼자서 닭장 안에 헤드셋을 끼고 열심히 쪼아대는 닭에 불과한 것 같았다.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상을 받고 돈을 많이 벌었지만 왠지 이제야 사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스스로에게 너무나도 냉혹하였던 것이다.


나도 이제는 스스로 일어설 준비가 되었고 여기서 조금만 더 벌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이루고자 하는 맘이 깊이 생겼다. 하지만 내 주위에는 사람이 많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일 년 동안 혼자 앞만 보고 달렸기 때문에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 남동생과는 가끔 고민상담을 하는 정도로 교류했고 나머지사람들은 그저 귀찮고 나에게 말을 안 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기 때문에 친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 노력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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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나는 이곳에서 나를 알리고 좀 더 진화된 모습의 나를 기대하고 있다.

아픔은 쉽게 낫지 않는 것 같다. 마음의 상처는 신체의 상해와 다르다는 것을 지금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때의 나는 그것보다도 무조건 성공에만 목을 맸다.

남자들도 이렇게 까지 열심히 안 하는데 너는 왜 이렇게 까지 하니?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여기서 나는 일 년이 되어서 팀의 팀장이 되었고. 이제는 팀장이라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스스로 알아가면서 팀장이라는 자리의 무게감과 팀원들의 교육을 맡아야 한다.

자신감? 그런 건 모르겠다. 감투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또 무거운 것인지 알지도 알수도 없는 나이였다.

그런 나에게 팀장이라는 직책이 정해졌고 나는 내침의 20명을 관리하면서 실적을 관리하여야 한다.

매우 귀찮지만 왠지 멋져 보이는 직책이다.


이제부터 내가 팀장이었을 때 모습과 생각을 다음 편에 적어보려 한다.

그때의 나는 지금 생각해도 자격미달이다. 하지만 독자들은 어떻게 봐줄지 모르겠다.

나의 25살의 팀장! 과연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미숙하다.

하지만 나는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제부터 나는 다시 시작이다.

그리고 많은 것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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