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시가 나를 불렀다
이젠 대답해도 되는 될까.
열일곱의 무분별한 단어를 기억한다.
걸러낼 틈 없이 불쑥 찾아오던 낯선 감정.
쏟아내야 할 물체는 뚜렷한 형체가 없었다.
어떤 절차로 어떤 형태로 끄집어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당시 국어선생님은 백일장이나 문학대회 추천은 해주셨지만 글쓰기 방향, 방법, 하다못해 얕은 요령조차 알려주시지 않았다.
(물에 들어가본 적도 없는데 수영부터 하라니요?)
말은 삼킬 줄만 알았지 뱉는 법은 서툴렀다.
그저 나오는 대로 검게 칠하면 되는 줄 알았다.
수면 위를 둥둥 떠다니는 낙엽을 낚고 혈관을 부유하는 언어를 건져 올렸다.
손에 잡히는 대로 종이 위에 올렸다.
하얀 길 위에 야생마가 날뛴다.
미친 듯이 절규하고 울부짖는 언어, 소리칠 힘조차 없어 웅크리고 있는 언어.
나는 정신이 아득해져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종이 위에서 헐떡이던 언어들은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을까.
닿지 않는 마음처럼 흩어진 단어는 나에게도 너에게도 닿지 않았다.
어쩌면 아직도 알지 못하는 슬픔의 첫 얼굴이 아니었을까.
그래, 시를 쓰고 싶었다.
질감도 향기도 알지 못하는 아득한 시를 갈망하기 시작했다
26년 전 그날로 되돌아간다. 1500도 용암보다 뜨거웠던 나에게로.
아직 시를 쓰는 방법도 시를 향해 가는 길도 알지 못한다.
다만 그가 불렀으므로 한 걸음씩 따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