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벼리고 비운게 겨우 초승달

계절, 너 참 예쁘다- 23

by 진아

예쁘고 고운 풍경을 보면 가슴에 종소리가 난다. 메마른 심장에 샘이 솟는다. 자연은 시가 되고 계절은 그대로 액자 속 그림이 된다. 말라붙은 세상에 마음을 기울이면 어느새 활자는 계절로 다시 태어난다. 앙상한 나무가 아직도 빛나는 건 봄을 품은 까닭은 아닐까.



빈둥지증후군 이겨내고 제2의 삶을 시작한 '호접란'



초승달 1


손톱은 눈물의 발자국


마음을 벼리고 비운게

겨우 초승달


겨울걸음이 빨라진다

온전한 동그라미가 아니라도 좋아

반이라도 채울 수 있다면


보름달만 한 기대와

변색되지 않을 별빛의 약속


나무는 꿈을 꾼다

생명을 보듬은 대지처럼

긴 겨울잠에 빠진 어미처럼


다시 피어나 만날 날처럼

초승달 하나 하얗게 찍혔다




자유를 찾을수록 말을 잃어간다. 침묵에 잠길수록 고요한 타인이 된다. 언어는 헤엄치는 법을 몰라 허공만 떠돌다 죽고 태어나길 반복한다. 인어공주는 말을 잃고 후회하지 않았을까. 전하지 못한 이야기가 물거품으로 사라진 걸.



한겨울 마라톤 풀코스 완주하고 인증샷 찍는 '꽃기린' 자매



초승달 2


하늘에 걸린 손톱모양 옷걸이

누가 걸어놓은 걸까

솜털옷 구겨지지 말라고

가을이 두고 간 마음일까

아직도 따끈한 겨울햇살




아침에 켜놓은 노트북과 여태 눈싸움 중이다. 어떤 진전도 없는데 질긴 미련을 핑계 삼아 붙잡았다. 곁에 둬도 마음이 없으면 헛수고인걸. 저녁에 다시 불러 앉힌 마음. 그 사이 해가 떴다 사라지고 빗줄기는 천천히 빗금을 그으며 지나간다. 별일 없는 하루가 폐장을 준비한다. 소리도 없이 마음은 시끄럽고 허공엔 아무도 없는데 발 디딜 틈조차 없다. 넘쳐도 부족한 풍요가 12월을 가로지른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자꾸 일어나는 하루를 계절은 모르는 척 지나간다.



너와 나의 언어는 달라서 우리 사이에는 늘 바다가 놓여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문장을 너는 알아보지 못하고 나는 네가 부르는 노래를 듣지 못한다. 들리지 않는 음악을 바라만 볼 수는 없어, 겨울이 얼기 전에 간격을 좁혀야지. 이제는 바다로 거침없이 뛰어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