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노을 타고 남은 하늘엔 어둑한 잿더미만

계절, 너 참 예쁘다-21

by 진아

운동 마치고 돌아온 거실에 햇살이 만개했다. 당장 저 빛을 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저 온기를 느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식탁은 비워두고 베란다에 상을 폈다. 따뜻한 보이차를 내리고 읽을거리와 간식을 챙겼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찻잔 위에 햇살이 눈처럼 내렸다. 따뜻한 계절에는 결코 느끼지 못할 충만함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겨울에는 햇빛이 금보다 귀하다. 조금이라도 볕을 쬐려고 등을 내밀었다.



늦잠 자고 젖은 머리카락으로 등교하는 '메리골드' 자매(왼쪽), 보송한 털모자만 쓴 미니멀 라이프의 대가 '민들레 홀씨'(오른쪽)



배웅

뒷모습만 보여도

발을 동동 구르던

목놓아 부르던 네가

소리 없이 지나간다

끝을 그리면

톡 터지는 게 외로움

흔들리는 뒷모습은

한걸음도 떼지 못하고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스스로 내려가는 길이라며

가장 빛날 때 낮은 곳으로 간다

울음소리 한번 못 내고

떠나는 길


노을 타고 남은 하늘에

어둑한 잿더미만 내려앉았다




반짝이는 은색. 반짝임은 설렘인데 어둠 속에 빛나는 유성 한줄기에 서글퍼졌다. 길게 그어진 빛줄기. 어떤 소원 빌까. 젊음은 식상하고 불멸은 과하다. 지금 이대로 빛나다 져야지. 말없이 감싸주고 함께 울어줘야지.



본격적인 추위에 앞서 얼른 아끼는 원피스 꺼내 입은 목마가렛(왼쪽), 독감 회복 후 오랜만에 일광욕 즐기는 '그랜디플로라 나무수국'(오른쪽)



균형 잡기


슬픔은 속도가 빨라서 한 방울만 떨어져도 우주를 물들인다. 한 방울만 떨어져도 눈물에 감염된다. 햇살 속에 들어가도 아직도 추운 건 촘촘한 슬픔의 거미줄에 걸린 까닭이다. 보이지 않는 줄이 몸을 휘감지만 너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너무나 말짱한 사람은 꾀병을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

견고한 눈물이라도 보이지 않는다면 그저 물방울에 불과하다. 짭짜롬한 슬픔은 혀로만 감지될까. 농도를 알지도 못하면서 섣불리 다가서면 깊고 축축한 동굴은 마르지 않는 우물이 되어 있다.

눈물과 땀은 주기적으로 배출해야 삶의 균형이 유지된다는데. 비척거리던 걸음과 흔들리던 마음추가 비로소 중심을 잡는다. 기울어졌던 오후가 수평을 찾아간다. 스스로 중심이 되는 순간, 무게 추는 기꺼이 삶의 열쇠가 되기로 했다.



매서울 거란 예상과 달리 밤공기가 보드랍게 퍼졌다. 겨울밤이 봄밤보다 포근하게 느껴지는 건 예상치 못한 온기이기 때문이다. 누그러진 밤은 온전한 위로가 된다. 밤도 평범한 일상이 되는 시간이다.
keyword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