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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일방통행

계절, 너 참 예쁘다-19

by 진아

가을은 한정판 계절 같다. 얼른 즐기지 않으면 금방 동나고 만다. 바닥이 보이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가을이 주는 선물을 전부 누리려 욕심을 내본다. 단 한그루 나무, 한 송이 꽃도 놓치지 말아야지. 바람, 햇살 한 톨 흘리지 말고 전부 담아야지.

오늘도 고운 옷으로 갈아입은 창밖풍경. 덕분에 살아있는 그림을 매일 감상한다. 입동은 지났으나 만추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구멍난 가슴안고도 끝까지 꽃피우는 흰 부들레야(왼쪽), 털스웨터 입고 산책나온 '등골나물꽃'(오른쪽)



기억은 일방통행


세상을 전부 얼린다 해도

그리움까지 얼리진 못했나 봐


심장 아래

흐르는 물줄기는

당신 목소리일까

철 지난 후회일까


화석이 된 기억은

소리도 없이 찾아오고


언 수면 아래는

그대만 흐르고




몸을 움츠릴수록 그리움은 활개 치나 보다. 옷을 아무리 껴입어도 허기진 마음까지 데울 수 없나 보다. 시린 겨울은 잊지도 않고 돌아온다. 하루를 꼬박 걸어도 한 달을 꼼짝없이 달려도 왜 아직도 그 계절일까.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란스커트로 뽐내는 '은행나무', 살아있는 불꽃축제 '단풍나무'



가을풍경


가로수마다 피어난

노랑빨강 불꽃


거리는 온통

살아있는 불빛축제


가을을 누가

서늘하다 했는가

쓸쓸하다 했는가


넋을 잃고 바라보면

퍼런 하늘마저

발그레 물든 두 볼


오늘은 가장 따스한 날

눈치 없이

그리워만 해도 되는 날




어둑한 새벽 지나 아침이다. 하루의 시작과 끝은 키가 작아서 손내밀면 닿는다. 지금은 가을을 접고 겨울을 꺼내들 시간. 가을은 그대로인데 촉촉한 머리카락 휘날리며 다음 계절이 온다. 11월은 겨울로 들어서는 문. 입구를 서성이다 그리운 것을 만지작거린다.



계절이 그리는 풍경화는 얼마나 경이로운지. 색색가지 고운 빛 채우려 얼마나 마음 졸였을까. 추워질 걸 알고 따뜻한 빛깔로만 채색했나 보다. 풍경보다 아름다운 그 마음을 책갈피로 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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