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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꽃은 눈물이 번진 얼룩일지 몰라

계절, 너 참 예쁘다-18

by 진아

봄은 연분홍색으로, 여름은 초록색으로, 가을은 노랑과 빨간색으로 아낌없이 칠하더니 그 많던 빛깔 다 쓰고 흰색만 남았다. 겨울이 하얀 이유는 세상 모든 색을 다 써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얼룩덜룩한 자국도 하얀색 크레파스로 덮자. 하얗게 하얗게 어떤 눈물도 보이지 않게 칠하자. 봄이 오면 다시 꽃 필수 있게. 울긋불긋한 상처도 꽃으로 덮을 수 있게.




보름달 1


별도 지고

나뭇잎도 진 텅 빈 하늘에

덩그러니 남은 까치밥


밤새 날던 새도 쉬어가고

소풍 끝낸 울 엄마

고요히 잠든 곳


하늘이 남겨놓은

탐스런 까치밥 덕분에, 울 엄마

겨울도 배불리 드시겠다



입동에 핀 청개구리 '사과꽃'(왼쪽), 보라색 체육복 단체로 맞춰입고 소풍나온 '쑥부쟁이'(오른쪽)


입동에 피어난 사과꽃을 어찌하나. 만발한 꽃은 지고 푸르렀던 숲은 잠들 준비를 하는데. 일찍 깨어난 꽃을 어찌하나. 찬바람 불기 시작한 계절은 겨울문을 두드리는데. 봄이 오려면 아직인데. 길고 매서운 겨울을 어찌 버틸까. 작고 여린 잎으로 추위를 어찌 이겨낼까.




보름달 2


주홍빛 감 따다가

울 엄마 생각나

남겨놓은 감하나


까치밥 될 줄 알았던 열매

휘영청 높이도 떴다


엄마가 떠난 겨울밤

둥그런 눈물도 떴다


흘리다만 눈물이

담지 못한 한마디가

하늘에 걸렸다


울 엄마 하늘에서도

노랗게 잘 익었다고

곱다고 손도 못 대고

바라만 보시겠다



올겨울 졸업식 앞두고 졸업 증명사진 찍는 '마가렛'(왼쪽), 늦잠자다 한낮에 기지개 켜는 '버베나'(오른쪽)


낯섦과 변화는 늘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아프고 힘든 순간에 떠오르는 얼굴은 잡고 싶었던 손이다. 미미한 온기라도 기대고 싶은 간절함이다. 계절을 건너며 떠오른 그리움은 차츰 흐려지기도 하고 띄엄띄엄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한다. 너와 나의 그리움이 같을 수 없겠지만 길게 자라난 그림자는 닿아있다. 지금은 하늘에 노란 전등을 켜고 그리움의 무게를 재는 시간이다. 깊이도 넓이도 다른 그리움의 무게에 추를 매단다.



지는 꽃은 더 깊고 진하다. 여름내 만발한 꽃은 지고 도라지꽃 한두 송이만 겨우 남았다. 고운빛은 사라지고 철 지난 미련만 보랏빛 멍으로 남았다. 지는 꽃은 눈물이 번져서 생긴 얼룩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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