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계절은 희망을 머금은 꽃봉오리

계절, 너 참 예쁘다-24

by 진아

사람을 앓듯 계절을 앓는다. 그저 지나가는 계절은 없다. 투명한 물고기같이 온몸을 통과해야 지나간다. 계절의 낱장을 전부 헤아려야 지나간다. 피부도 없이 지나온 겨울은 차갑고 열기를 그대로 품어야 했던 여름은 화상자국으로 남았다. 극과 극의 계절이 지나야 보이는 것이 있다. 다가올 계절은 희망을 머금은 꽃봉오리로 남았다. 내일은 그저 풍요로울 것이다.



나비처럼 날아 사뿐히 피어라 '팬지'(왼쪽), 겨울이 두렵지 않은 내일 '카란코에'(오른쪽)



겨울비


톡톡

대지를 두드리는

노크소리인가


아직 봄은 이르지만

긴 겨울 잘 보내라던 입맞춤


봄이 되면 돌아온다던 너는

새벽에서 아침으로 건너가

어둠을 한 겹 씩 벗긴

하얀 공깃밥 위로

모락모락 피어나는 뽀얀 김


따끈한 시간을 먹자

같이

호호 불며 맞이하는

겨울하루 위 겨울비






내일은 삶요일. 오늘은 빛요일. 일주일에 요일 하나를 더 추가했다. 딱딱한 일곱 개 일상에 말랑한 젤리 같은 요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겨울에는 빛요일을, 여름에는 초록요일을 톡톡 털어 넣는다.


태양광 인간에게는 빛이 물이다. 햇볕을 먹고 햇볕을 입고도 빛을 탐한다. 길게 들어 누운 요염한 빛의 자태. 냉큼 볕 속으로 뛰어든다. 겨울 속으로 빛 속으로 들어간다. 마주 보지 않아도 닿는 온기는 겨울에만 존재한다.



더 넓은 세상을 비출 졸업식의 꽃(왼쪽), 꽃보다 아름다운 분홍빛 '포인세티아'(오른쪽)



겨울은 파각 중이다


할아버지의 봄은 이미 다 써버렸기 때문에 계절이 돌아와도 물리적인 봄만 맞이할 뿐이다. 찬란한 봄은 지나가고 잠결에 떠오른 문장 속에서 단어를 골랐다. 꿈인걸 깨달았을 때 잊지 않으려 문장을 되뇌었다. 뼈대조차 흐릿한 문장이라도 흩뿌렸면 옅은 흔적이라도 전달된다면 그걸로 족하다.


다시 잠든 아침은 새로운 하루로 열렸다. 하얀 김 속에 먹음직스러운 자태를 드러낸 얼굴은 새초롬하다. 갓 태어난 빛깔은 알지 못하고 울아침은 두터운 고요로 둘러싸였다.


겨울은 파각 중이다. 동시줄탁으로 태어난 우리. 엄마의 의지와 나의 의지로 세상밖으로 나왔다. 두려운 세상에서 단 한 사람. 기둥이 되었다가 둥지가 되었다가 세상의 전부가 되었는데. 병아리는 전부를 잃고도 살아가는 병아리는 닭이 된 줄도 모르고 걸어간다.

겨울은 함께 파각 중이다. 자신의 세계를 깨고 나오면 어떤 계절에 닿을까. 봄이 계절의 절정은 아니므로 누군가에겐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최고의 날일수도 있다. 겨울을 지나 또 다른 겨울을 마주할지라도 태초의 파각은 숨처럼 남아있다.




뼈대를 세우지 못한 활자가 어지러이 대기를 떠돈다. 민들레 홀씨처럼 떠돌다가 언젠간 뿌리를 내리고 숨을 불어넣겠지. 뿌리를 내리고 노란 꽃을 피우겠지. 앙상한 나무가 헐벗은 날 지나 눈부신 꽃을 피우듯이. 마른날 견디다 보면 계절은 돌고 돌아온다.



시간을 건너뛴 아침이 새벽흉내를 내고 있다. 입이 간질간질할 텐데 침묵을 지키고 앉았다. 닮은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 창밖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진짜가 아닌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흘러가는 게 삶의 풍경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