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影山]
'위왕의 세숫대야에 비친 여덟 봉우리의 그림자'
산행지 : 팔영산 (전남 고흥)
산행일 : 2021.10.01(금)
산행코스 : 팔영산자동차야영장 주차장-흔들바위-유영봉(491m)-성주봉(538m)-생황봉(564M)-사자봉(578m)-오로봉(579m)-두류봉(596m)-칠성봉(598m)-적취봉(591m)-깃대봉(608m)-원점회기
난이도 : 보통
팔영산(八影山) 이름의 유래는 다음 세 가지 정도로 전해진다.
첫 번째는 '팔영산의 그림자가 멀리 한양까지 드리워졌기 때문이다.'라는 설.
두 번째는 '금닭이 울고 날이 밝아오면서 햇빛이 바다 위로 떠오르면 팔봉은 마치 창파(넓고 큰 바다의 맑고 푸른 물결)에 떨어진 인쇄판 같은 모습이어서 영자(影字)가 붙여졌다.'라는 설.
세 번째는 '세숫대야에 비친 여덟 봉우리의 그림자를 보고 감탄한 중국의 위왕이 이 산을 찾으라는 어명을 내렸는데, 신하들이 조선의 고흥에서 이 산을 발견하였다'라는 설이 있다.
첫 번째 유래는 '롯데타워가 부산에서도 보인다'라는 우수개소리 같아 보이고, 두 번째 유래는 '도대체 무슨 말이야?' 싶다.
세 번째 유래에는 숨은 이야깃거리가 더 있을 것 같았다. 어렸을 때라면 '전설의 고향'처럼 봤겠지만, 사회생활에 찌든 지금은 위왕의 뜬금없는 명령을 받은 신하들이 얼마나 욕을 하며 다녔을지...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다. 한편으로는 팔영산의 8봉이 어떤 모습이길래 신하들이 '찾았다' 할 정도인지 궁금증을 갖게 해 준다.
일출산행을 하려고 새벽에 일어나 일기예보를 봤다. 예보는 구름이 가득하다. 창밖을 보니 새벽안개가 짙었다. 고도가 높은 산이라면 이런 안개가 운해로 깔려 멋진 일출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팔영산은 그 정도로 높은 산이 아니다. 일출에 대한 미련을 접고 9시에 산행을 시작했다. 주차비는 4천 원을 받았다.(2021년 10월 기준)
주차장과 잘 정비된 야영장을 지나면 팔영산 들머리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에서 왼쪽은 유영봉으로 오른쪽은 깃대봉으로 가는 길이다.
등산로에 들어서니 수크렁(벼과의 여러해살이 풀)이 활주로 유도등처럼 길안내를 한다. 유영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흔들바위까지 완만한 편이다.
구름이 많다는 예보와 다르게 구름도 없고 안개도 모두 걷혔다. 옅어진 안개 사이로 작은 빛내림 지는 길이 예뻤다. 계획한 대로 일출산행을 했어도 좋았을 것 같았다.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다 보면 흔들바위가 나온다. 흔들바위부터 유영봉까지 600m 구간은 짧지만 가파르다. 흔들바위라 해서 한번 밀어보지만 꿈쩍도 않았다. 도대체 왜 흔들바위라는 건지...
등산로 초입부터 흔들바위까지 2km 정도 완만한 길을 걷는 동안 몸이 풀린 건지, 가파른 오르막이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가파른 흙길을 지나 바위가 나오기 시작하면 바로 유영봉이 나온다.
구봉산, 팔봉산 같은 여러 개의 봉을 가진 산들이 있지만 대부분 숫자로 봉을 표기한다. 반면 팔영산은 주봉인 깃대봉 외에도 유영봉에서 적취봉에 이르는 8봉에 이름과 표지석이 있다.
첫 번째 봉 유영봉(儒影峯)에 도착했다. '바위봉우리의 모습이 선비의 당당한 풍채를 보는 듯하여 선비의 그림자를 닮아' 이름 지었다고 한다. 선녀봉과 2봉인 성주봉의 수려한 암릉이 한눈에 들어온다.
선녀봉을 거쳐 팔영산에 오르는 등산로도 있었지만 차량회수가 어려워 그 코스는 포기했는데, 산세가 아름다워 한 번은 올라가고 싶어졌다.
팔영산 8봉은 대부분 깎아지는 암릉이다. 등산로 정비가 잘 된 편이라 대부분 안전한 편이지만 가파른 건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힘들고 위험한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런 멋진 바위를 오르다니...' 보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었다.
팔영산 1~8봉은 화강암 주상절리의 붕괴에 의해서 이런 지형이 생성되었다고 한다. 이런 깎아지는 절벽 옆을 오르다 보면 문득문득 두려움이 느껴져 계단 손잡이를 꼭 잡고 거친 숨을 쉰다.
성주봉에 올라 유영봉을 내려다봤다. 선비의 모습이 보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멋진 바위봉 뒤로 나지막한 산과 푸른 바다가 펼쳐지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오르면서 힘들었던 모든 것이 감탄으로 바뀐다.
성주봉(聖主峯)에 올랐다. '성스러운 명산의 주인이 되는 봉우리'라는 뜻이라고 한다. 팔영산의 1~8봉 표지석과 주봉인 깃대봉 정상석은 무릎 높이 정도로 작은 편이다.
성주봉에서 본 생황봉(3봉)보다 6봉인 두류봉이 더 잘 보인다.
중간에 3봉인 줄 알고 올랐던 봉우리. 오르는 길이 유독 정비가 안되어 있어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생황봉이 아니었다. 봉우리에 올라 돌아보니 선녀봉만 보였다.
세 번째 생황봉(笙簧峯)이다. '바위의 모습이 아악에 쓰는 관악기인 생황笙簧을 닮아서' 이름 지었다고 한다.
생황봉에서 보는 두류봉 방향 풍경이 성주봉에서 본 것과 많이 비슷했다.
네 번째 사자봉(獅子峯)이다. '바위의 모습의 사자를 닮아'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사자봉(4봉)과 오로봉(5봉)은 매우 가까이 있다. 가벼운 걸음으로 5분이면 4봉에서 5봉으로 갈 수 있다.
다섯 번째 오로봉(五老峯)이다. '다섯 명의 노인(신선)들이 놀던 곳'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오로봉에서 본 두류봉. 팔영산 1~8봉 중에서 두류봉이 제일 오르기 힘들고 무서웠다. 가파른 계단도 힘들지만 중간에 나오는 계단 없이 구간은 식은땀이 난다. 손과 팔에 얼마나 힘을 주고 올랐는지 쥐가 날 지경이었다.
두류봉을 거의 다 올라가 안전한 장소가 나와 뒤돌아 볼 수 있었다.
종종 등산을 같이하는 친구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산이 예쁘면 다 용서 돼"
아무리 힘든 산이어도 올랐을 때 멋진 풍경이 나오면 다 용서가 된다. 두류봉에서 보는 풍경이 그랬다. 두류봉을 오르는 게 무섭고 힘들었지만 오르고 나니 모두 용서가 됐다.
여섯 번째 두류봉(頭流峯)이다. '하늘 높은 두류산을 닮아서 두류봉'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두류봉에서 본 칠성봉, 마지막 봉인 적취봉은 안 보인다.
두류봉에서 칠성봉 가는 중간에 바위협곡과 바위문을 지난다.
일곱 번째 칠성봉(七星峯). 북두칠성을 의미하는 이름이라고 한다. 칠성봉에서는 두류봉이 나머지 봉을 전부 가렸다.
칠성봉에서 본 적취봉. 이제 8봉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적취봉을 가는 중 돌아보았다. 칠성봉에서 볼 때 두류봉이 이전 봉들을 전부 가렸던 것처럼, 적취봉에서 돌아보면 칠성봉이 나머지 봉들은 전부 가리고 있었다.
여덟 번째 적취봉(積翠峯). '물총새 파란색 병충처럼 초목의 그림자 푸르름이 겹쳐 쌓여 적취봉'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적취봉 아래에 정상인 깃대봉과 주차장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깃대봉을 갔다 다시 적취봉까지 온 후 주차장으로 가야 한다.
깃대봉 가는 중간에 트이는 곳에서 잠깐 나오는데 지나온 봉들이 한눈에 보였다.
정상인 깃대봉(旗臺峯)이다. 깃대봉 전망은 생각보다 아쉬웠다. 남해 바다가 볼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큰 매력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깃대봉에서 인증을 마친 후 다시 적취봉을 지나 원점회귀 한다. 최단코스로 오는 사람은 주차장에서 적취봉과 깃대봉만 둘러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등산로는 대체로 완만해서 오르내리기 쉽지만 최단코스가 맞나 싶을 정도로 거리는 긴 편이다. 사실 팔영산 최단코스는 거리가 짧아서가 아니라 1~8봉을 오르내리지 않아서 빨리 다녀올 수 있다.
산행을 돌아보면 거리는 짧지만 오르내림이 커서 힘든 산행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봉을 오를 때마다 펼쳐지는 멋진 풍경을 보게 되면 '맨인블랙'에 나오는 뉴럴라이저(Neuralyzer/기억제거기) 플래시를 맞은 듯이 힘들었던 기억이 지워졌다. 그만큼 아름답고 오르기 즐거운 산이다.
팔영산을 내려와 다음 산행지인 천관산으로 바쁘게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