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더 하면 되지 뭐

[Muzi-Series] EP.07 이제 좀 놓고 살자

by 마리엘 로즈


“웃기다니, 뭐가 웃겨?”

"애가 나한테 통보했을 때 말이지."

이제 안 하겠다고, 그냥 놓고 싶다고.

그 말이 나오자마자 내가 느낀 건,

이상하게도 절망도 분노도 아니었어.

미안하지만... 조금 반가웠어.

“아, 이제 쉴 수 있겠다.”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거든.

“야, 진심이야? 반가웠다고? 너 정말...”

정말 그랬어.

숨을 참다가 처음 내쉰 느낌이랄까.

나조차 몰랐던 어떤 긴장을,

그날 처음으로 풀어낸 것 같았어.


"그렇다고 진짜 그만둔건...설마... 아니지?"


“새벽에 도시락 싸고, 플랜 확인하고, 활동 체크에

세특 자료 정리하고, 내신 정보 미리 파악하고,

수면 패턴까지 챙기고...”


그동안 너무 꽉 쥐고 있었던 거야.

손끝이 저릴 정도로 탈진한 줄도 모르고,

그냥 계속 잡고만 있었어.

요령없이 너무 무식하게만 몰아간거지.

아이는 잠깐 쉴 수 있어도, 나는 쉴 수가 없었어.
아니, 잠깐 눕는 것도 사치였지.
나는 그 아이의 엄마이기만 한 게 아니니까.

집안일에 개인적인 일에 자잘한 돌봄까지.

하루에 열두 번씩 머릿속에서 엑셀창이 열렸다 닫혔다 했는데,

그날 딱!

누군가 그 창을 닫아도 된다고 허락해준 기분이었어.

성적이고 뭐고, 나도 솔직히 그냥 좀 쉬고 싶었나봐.

공부가 아니라 이 상황 전체에서.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우리 아이만의 마음이 아니었을 거야.

수험생이라면 누구나,

그리고 함께 달리는 부모라면 누구나 느꼈을

감정이었을 거야.

우리가 무슨 전국 1등을 노린 것도 아니고,

이만큼 했으면 된 거 아닌가.

심지어는 나중에 다시 하면 되지 이런 생각도 들더라.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진짜 최선을 다했거든.

더는 해줄 수 없을 만큼.

붙잡을 미련도 남지 않을 만큼.

그래서였을까.

놓는 순간에는 그게 위로가 되더라.



그러던 어느 날 애가 그러는거야.

“선생님이...

요즘 나 핸드폰 너무 자주 본다고 지적하셨어.”

그 얘기를 듣고 그제야 확실히 느꼈어.

'아, 얘도 나처럼 지쳐 있었구나.'하고.
거기가 도피처가 아니었을까 싶은...




근데 참...

이 경험이 좀 무서우면서도 웃긴게

둘 다 쓸데없는 용기만 생겨서는,

애도 "한 번 더 하면 되지 뭐.”이러고 있더라니까

“진짜 말이 안 나오네. 시험이 장난이야?”

장난?

우리가 장난이었으면 이렇게까지 안 했지.

그만큼 너무 힘들었어.

그래.

이제 좀 놓고 살자. 그 말이,

처음으로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어.



처음엔 ‘이거 그냥 자기합리화 아니야?’ 싶었는데,

곱씹을수록 그 합리화조차 다정하게 느껴졌어.

창조주도 일주일에 하루는 쉬셨잖아.

우린 얼마나 더 달려야 ‘이제 쉬어도 돼’란 허락을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걸까.

이걸 어릴 때부터 한 아이들과 부모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니까.

진짜!!좀 쉬자.

같이.

그리고

너무 빨리 먹은 밥이 체하듯이,

우리 아이에게도 부작용은 나타났거든.



사실, 우리 애. 중학교 땐 정말 야무졌어.

계획도 스스로 세우고, 자료 정리도 척척 잘했고,

나보다 시간 관리를 더 잘하던 아이였거든.

근데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확 달라졌어.

겁은 많아지고, 실수할까 봐 주저하고,

결정을 못 내려서 질문은 많아지고,

그러다보니 자신감이 눈에 띄게 줄었지.

그걸 보면서 직감했어.

‘아, 이러다 진짜 애까지 망치겠다.’
그래서 그냥, 더 과감하게 손을 놓기도 했어.


인생에서 공부가 전부는 아니잖아.


"진짜? 애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둔 거야?

완전히 손 놓고?”


물론, 완전히 놓은 건 아니야.

딱, 기본만 챙겼어.

밥 챙기고, 잠 챙기고.

공부는 도움을 요청할 때만 살짝.

외에는 “네가 알아서 해봐.”

그렇게 말하고 딱 일주일만 그냥 쉬라고 했어.

“에이,난 또...고작 일주일이잖아.”

그건 우리 생활을 몰라서 하는 말이야.

한 시간이 뭐야... 잠깐 컨디션 조절용으로

재운 낮잠도 십 분 단위로 끊어서 재웠다니까.

그랬던 내가, 무려 일주일을 그냥 쉬게 하다니.
처음엔 진짜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거든.

근데 이상하지?

하루, 이틀 지나니까 불안보다 먼저 온 건,
'쉼이 이런거였구나'하는 휴식의 진정한 의미였어.

왜 쉬어야하는지 그제서야 알겠더라구.



“와... 그게 말은 쉽지. 나였으면 절대 못 했다.”




맞아. 예전 같았으면 나도 못 했을걸.

근데 진짜 너무 지치니까,

사람이 스스로를 놓게 되더라.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순간,

처음으로 제대로 숨을 쉬는 기분이었어.


그때부터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어.

우리 애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이상하게 말하지 않아도 알겠는 거야.

생각해보면 말이지...


우리 둘, 사주가 닮았거든.



"그거 알아? 우리 애랑 나, 사주가 같아."

“사주가 같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궁금하지?

이럴 땐 내가 왜 그렇게까지 공부했는지,

이제야 알겠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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