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랑 얘기해 본 적 있니 | EP.08
완전히 닫힌 겨울도 아니고,
그렇다고 봄이라고 부르기엔 아직 이른
그 애매한 시기.
코트를 입고 나오긴 했는데
햇볕 아래에 서 있으면
괜히 민망해지는 날.
목도리를 풀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들고만 다니게 되는 오후.
이런 날엔
마음도 딱 그 정도로 느슨해져요.
단단히 정리해 뒀다고 생각한 기억들이
별 이유 없이 슬쩍 올라오고,
요즘은 잘 떠올리지 않던 사람이나
이미 지나간 말 한마디가
괜히 마음을 건드리죠.
특별히 그리운 건 아닌데
그렇다고 아무 감정도 아닌 것도 아닌...
왜 지금 이게 떠오르지?
싶은 순간들이요.
ㅡ
이럴 때 보면
기억은 참 이상해요.
부를 때는 안 오다가
이런 틈만 나면
아무렇지 않게 얼굴을 내밀어요.
아마 경계라는 게
사람을 조금 느슨하게 만드는 시간이라서
그런가 봐요.
앞으로 가기엔 아직 발걸음이 가볍지 않고
뒤를 돌아보기엔
이미 마음이 너무 많이 움직여버린 상태.
그래서 이 시기엔
자꾸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슬쩍 바라보는 것 같아요.
그때의 나는 어땠는지,
지금의 나는 조금 나아졌는지.
딱히 답을 내리려고 묻는 건 아닌데,
그냥 안부처럼요.
ㅡ
기억은
완성된 계절보다
이렇게 애매한 시간에 더 잘 떠오르는 것 같아요.
정리되지 않았고
아직 이름도 붙지 않은 감정들이라서
더 쉽게 스며드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나는
이 맘 때를 좋아하면서도
조금은 조심하게 돼요.
괜히 마음이 약해지고,
괜히 솔직해지고,
괜히 오래된 나를
다시 만나게 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이’의 시간은
분명 필요한 것 같아요.
한 번쯤 기억이 흔들리고 나서야
아,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하고 알게 되는 순간이 있으니까요.
아직 봄은 아니고,
이미 겨울도 아닌 지금.
이 애매한 계절 한가운데서
나는 오늘도
조금 풀린 마음으로
잠시 멈춰 서 있어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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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은
눈이 참 많이 왔어요.
이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조금 과하다고 느낄 만큼요.
이렇게 경계에 선 날에 내리는 눈은
마치...
기억을 한 번 더 흔들어보라는 신호 같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