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언니한테 혼났어. 언니가 아침부터 날 만지길래 내가 쿠앙! 물었거든. 인간들은 참 이상해. 자기들은 예쁘다고 만지면서 그걸 싫어하는 쪽은 인정을 안 하려고 든단 말이야. 강아지라도 다 같은 강아지가 아니야. 나는 아무 때나 만지는 걸 싫어한다고.
오빠랑 언니랑 보내는 날은 이틀이야.인간들은 이날을 주말이라고 하더라? 이틀 중 마지막 날. 오빠가 바닥에 있는 매트들을 치우면 나는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가.강아지는 냄새로 시간을 파악하는 거 알아? 난 오빠 냄새의 농도로 내가 다시 이 집에 올 시기를 파악해. 오빠가 이상한 언니랑 결혼을 하면서부터 나는 오빠를 이틀에 한 번씩만 보고 있어. 주중에는 하루 걸러 오빠가 전에 살던 집으로 날 보러 와. 인간들은 참 이상해. 원래 살던 집에서 엄마랑 편하게 살면 좋을 텐데왜 번거로운 일들을 만들어서 할까? 아무튼 나는 그래서 이전보다 오빠를 자주 못 봐. 오빠는 내 평생의 사랑인데이게 다 이 언니 때문이라고 생각하니까 언니가 더 싫어졌어. 언니는 오빠 옆에 계속 붙어 다니고, 착각이 심한 편이야. 나는 더위를 많이 타서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는 걸 좋아하는데, 화장실 문 앞이 딱 그곳이거든. 근데 이 언니가 샤워하고 나오면 나를 보고 "에고~언니 기다렸어?" 하고 뽀뽀를 날리는 거야.아주 짜증이 나 죽겠어! 내가 그르렁거려도 무시하고 뽀뽀를 해 대는 거야! 이건 견스라이팅이라고!!
나는 "아이고 이뻐~"하면서 날 건드리고만 가는 걸 제일 싫어해. 만졌으면 소시지 간식이라도 줘야 할 거 아냐. 견생에 공짜가 어딨어. 우리가 꼬리를 열심히 흔들고, 사람에게 만져달라고 몸을 비벼대는 것도 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야. 귀여운 것들이 살아남는다는 말 들어봤어? 지금이야 눈 주위가 시커먼 곰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원래라면 우리가 대표적인 표본이지. 아 누워있는데 또 언니가 배를 만지네.. 머리를 쓰다듬네? 자꾸 나를 농락! 농락하는 거야??? 아.. 하지 마.. 하지 말라고 했다...?으르렁댄다....!!!아를르rrrrrrrrrrrrrr...!!!!!! 나는 최선을 다해 그르렁 거리기 시작해. 근데 이 언니는 눈치가 없는 건지 말을 못 알아듣는 건지 계속 만져. 온 힘을 다해 그르렁거리고 매서운 이빨을 보여주겠어. 아르rrrrr...! 아르르르르rrrrrrrrrrr!!
근데.. 이거... 아주 조금씩 기분이 좋네...? 올려다보니 언니는 눈이 반쯤 감겨 있어. 자면서도 그렇게 날 만지고 싶을까? 하긴 자기 머리털보다 내 털이 부드럽긴 할 거야. 하여간 이 집 인간들은 일요일에 그렇게 늦게까지 자더라? 강아지들이 12시간 이상 자는 건 봤어도.. 아휴.. 정말 지겹게 잔다... 부지런한 강아지들은 참을 수가 없지. 빨리 사과를 깎아서 대령하라고!
나는 내가 상전으로 사는 방법을 잘 알고 있어. 사료를 먹기 싫으면 몇 개 깔짝대다가 그만 먹고, 걷기 싫으면 길 중간에 주저앉아 고개를 떨구고 슬픈 표정을 보이면 돼. 그럼 이 순진한 언니는 사료에 맛있는 걸 섞어주거나 바로 와서 안아주거든. 인간들은 이게 버릇을 잘못 들이는 거라는 걸 알면서 자기 자식들한테도 그러더라? 나는 새끼를 낳으면 아주 강하게 키울 자신이 있어. 조금 모른 척하면서 키우면 돼.
그러고 보니 내가 새끼였을 때가 생각나네. 오빠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여의도에 있는 펫샵에서 데려왔대. 그때는 '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같은 말이 없을 때라나. 강아지를 번식시키는 공장들이 없어져야 하지만 이미 태어난 강아지들까지 펫샵에서 그냥 기다리다 죽을 순 없잖아? 나는 오빠가 그때 나를 데려와줘서 너무 고마워.나 이래 봬도 생존본능이 매우 강한 강아지라 그날은 어떤 강아지들보다 오빠 다리에 열심히 매달렸지. 오빠는 얼굴의 윤곽이 뚜렷한 편은 아니었지만 느낌상 착한 인간일 거라는 직감이 오더라고. 나는 내 직감을 믿어. 그리고 그게 내 견생을 바꿨어. 뭐, 예쁘게 생긴 것도 한몫했을 거야. 내가 그 흔하다는 갈색 푸들 중에서도 좀 예쁘거든. 눈은 아주 진한 갈색이고, 네 다리는 길고 튼튼하지. 허리가 조금 길긴 해도, 이 정도면 강아지 모델감 아니겠어? 오빠는 내가 어렸을 땐 이렇게 귀엽지 않았대. 눈도 작고.. 뭐 신빙성이 없는 얘기니 여기까지.내 이름이 왜 촌스럽게도 뚱자가 되었는지는 다음번에알려줄게. 오늘은 내 얘기를 너무 많이 한 것 같아. 나는 누구한테도 나에 관한 얘기를 먼저 하지 않거든.내가 좋아하는 인간은 이 세상에 딱 두 명뿐이야.오빠. 그리고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