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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 Sep 29. 2024

주말의 뚱자

나를 만나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너는 참 좋겠다. 너도 예쁘고, 엄마도 예쁘고~"


똥을 싸러 나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말했어. 언니는 내 고개를 숙이면서 "고맙습니다."하래. 인간의 말을 못 하는데 어떻게 하라는 거야? 요즘은 애 대신 개를 키운다더니 내가 그 개인가?


모르는 사람이 말 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특히 길에다 침을 뱉는 인간들은 무서워.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작은 인간들도 싫어. 그들은 시끄러운 데다가 정신없이 움직이는 다리를 가지고 있지. 자기 시선에서만 생각하는 인간들은 잘 모를 거야. 놀이터에 가면 가끔 끈적거리는 물체를 밟는데 오빠는 또 껌을 묻혀 왔냐며 발바닥에 붙은 그것을 떼어줘.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야. 그러다 힘줄을 자르기라도 해 봐. 최악이지. 개TSD가 올 것 같아.


원래부터 사람들을 싫어했냐면 그건 아니야.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지나가는 까치만 봐도 쫓아가서 놀려고 하고 언니들이 예쁘다고 하면 발라당 드러누워서 배를 드러냈대. 오빠는 걱정했어. 내가 아무나 좋아하니 따라갈까 봐. 그렇게 똥꼬 발랄했던 내가 사람들을 싫어하게 된 계기는 두 번의 경험 때문이야. "물어!" 하고 장난치던 아저씨들과, 오빠가 나를 보러 오지 않았던 때의 경험.


그 경험은 오래전이지만 생생하게 기억나. 오빠는 여느 때처럼 아침에 집을 나갔는데 올 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았지. 엄마랑 나는 기다렸어. 하루, 이틀, 달, 달.. 그렇게 여섯 달이 지나도록 오빠가 오지 않는 거야. 오빠의 냄새는 점점 사라지고 몸이 아프기 시작했지. 나는 6.1kg에서 5.1kg가 될 정도로 살이 빠졌어. 강아지에게 1kg는 인간에게 10kg나 다름없는 거 알아? 축 늘어진 내 곁에서 엄마는 엉엉 울었어. 내가 죽는 알았나 봐. 도 이렇게 견생을 마치는구나 싶었는데... 오빠가 돌아왔지. 그런데 오빠도 나처럼 살이 빠져 있었어.


그때의 경험으로 오빠 옆에 있을 때 누가 날 만지는 것을 싫어해. 누군가 우리를 떼어놓을까 봐 불안하거든. 오빠가 외출하면 나는 하염없이 현관문만 바라봐. 신발들이 놓여 있는 찬 바닥에 누워서 오빠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오빠가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가면 매트에 앉아서 물소리가 그칠 때까지 멍 때리다가 오빠가 나오기 전에 자리로 슬쩍 돌아가곤 . 엄마랑 언니는 그런 나를 안쓰러워 하지만 개춘기를 세게 겪었으니 어쩌겠어. 어떤 기억은 아주 오랫동안 남아 개의 성격을 형성한대.

오빠 옆에 있을 때는 방해받고 싶지 않아.   

사료를 싫어해. 색깔이고 맛이고 단조롭지. 사료는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이야. 인간들이 먹는 온갖 색깔의 음식을 한 번이라도 맛본 개들은 이전의 삶으로는 돌아갈 수 없어. 달걀, 사과, 감자 같은 맛있는 것을 섞어줘야 하지. 오빠는 사료를 주면서 "도넛처럼 맛있게 생겼네. 밥을 잘 먹어야지"라고 말하는데 <그럼 오빠가 먹어>

맛 없는 사료와 나를 귀찮게 하는 언니의 손

다리를 만지는 걸 싫어해. 내 다리는 보기보다 가늘고 약하지만 털로 덮여 있으니 그렇게 보이지 않나 봐. 작은 인간들은 특히나 그걸 몰라서 큰일이야. 심지어 앞발을 붙잡고 요즘 유행한다는 이상한 춤을 추게 하는 거야. 그들이 귀엽다고 깔깔대며 웃을 때 우리 개들의 표정을 봤어? 하나같이 입을 꾹 다물고 있지. 인간들이 좋아하고, 하라니까 할 수밖에 없는 거야. 나처럼 자유를 쫓는 풍운아 아니, 풍운개들은 다리를 잡으면 불안해져서 이성을 잃곤 해. 나는 그저 하라는 대로만 하는 강아지는 아니거든.


믿고 등을 내보였을 때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 쉬려고 누워 있는데 귀찮게 하는 것, 내려놓을 때 뒷발부터 세게 놓는 것, 맛있는 것을 보고만 있게 하는 것, 작고 답답한 곳에 가둬두는 것. 호들갑 떠는 것, 징징대는 것, (그놈의) 손! 하이파이브, 엎드려. 기다려. 정체불명의 박스, 길고 뾰족한 우산을 흔드는 것. "안돼"라는 말.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


생각해 봐.

인간이 싫어하는 대부분의 것은 개도 싫어해.

언니가 좋아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더라.


'내가 대접을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그렇게  대하면 내게 물릴 일은 없을 거야.  

오빠 마중 가려고 얌전히 기다리는 나

예민하고 섬세한 강아지는 자기를 위하는 행동이 뭔지 알아. 산책하고 오면 언니가 발을 닦아주고, 눈을 한참 보다가 물티슈를 가져와 눈곱을 떼어주는 것들 말이야. 오빠가 빗으로 박박 빗겨줄  아프지만 꾹 참아. 우리 개들은 자신을 위하는 행동에 화를 내거나 물지 않거든. 인간들은 가끔 자기를 위한 말에도 으르렁대더라. 왜일까? 인간 세상에는 이해 못 할 일들이 많아. 

오빠가 나를 빗겨줄 때
토끼와 나



*개TSD: 개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어렸을 적 심리적 상처를 경험한 개가 분리불안 증세를 보이는 현상 (인간의 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로부터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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