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영 Sep 22. 2024

주말의 뚱자

내가 그녀를 처음 물던 날

그제만 해도 엄청 덥더니 지금은 선선한 바람이 불어. 우리 강아지들이 힘들어하는 계절이 드디어 가나 봐. 휴.. 이제 좀 산책할 맛이 나겠군! 이번 여름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스팔트 바닥에 발바닥이 닿을 때면 나는 어김없이 주저앉고 말았지. 그 덕분에 오빠에게 안겨서 사람들 눈높이의 풍경을 볼 수 있었지만.


내가 가을을 좋아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어. 그건 바로 낙엽 밟는 소리야. 바스락바스락...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그 소리. 넓적하고 둥그렇게 생긴 과자를 먹는 소리 같기도, 하늘에서 수많은 물방울들이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한 그 소리 말이야. 우리 강아지들 귀에는 무려 18개의 근육이 있어서 사람보다 훨씬 잘 들을 수 있어. 사람에게는 6개밖에 없다며? 그래서 오빠는 가끔 엄마가 부를 때 대답을 안 하나 봐. 이해해. 세상엔 듣고 싶지 않은 소리도 있거든. 나는 사람이 들을 수 있는 4배 거리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어. 그래서 옆동네 개 짖는 소리가 들리면 나도 같이 "호우~호우~" 소리를 내곤 하지. 오빠가 나를 보러 오는 발소리, 엄마가 사과를 깎는 소리가 들리면 누구보다 먼저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댕그랗게 뜨고 기다릴 수 있어.

낙엽 밟는 소리가 좋아

지금처럼 날씨가 선선했던 날이었어. 그맘때 오빠는 주말만 되면 어디론가 나가고 늦게 들어왔는데 어느 날 나에게 옷을 입히더라고. 그것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 주황색 공룡 옷. 오빠는 그 옷이 제일 귀엽대. 나는 튀는 걸 싫어해. 사실 옷 입는 거 자체가 싫어. 난 자연인, 아니 자연개로 태어났는데 왜 자꾸 옷을 입히는 거야. 오빠는 단장을 하더니 차 안에 준비한 상자에 나를 태우고는 어디론가 갔지. 차만 타면 긴장하는 나와는 다르게 오빠는 설레보였어.


목적지에 도착을 했을 때, 오빠는 나의 얼굴을 한 번 더 단장해 주고는 쓰다듬었지. 내가 누군가에게 예쁘게 보이길 바랐나 봐. 그렇게 둘이 나와서 넓은 곳을 보니 좋더라. 바람이 솔솔 불어오길래 나의 솔방울 꼬리를 한껏 흔들면서 걸었어. 사람들은 나의 미모에 연신 감탄했고, 나는 우쭐했지.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다 좋았어. 갑자기 어떤 여자가 내 이름을 부르면서 뛰어오기 전까지는.



"뚱~~~~ 자~~~~~~~~~~~~~~~~~~~"

누구지 이 여자는

'뭐지 이 여자는?'


여자는 오빠가 나한테 하듯이 오빠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더니 볼에 뽀뽀를 날렸어. 에.. 엥? 오빠랑 나는 오늘 둘이만 있는 게 아니었어? 오빠는 나를 보는 대신 자꾸 이 여자를 보면서 웃었어. 매우 심기가 불편하군. 저 웃음은 원래 나한테만 보여주는 건데. 왜, 왜, 이 여자를 보면서 자꾸 웃는 거야? 아니, 손은 왜 잡아?!!!


눈에서 불이 나올 정도로 오빠를 빤히 쳐다보았지만, 이런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그 여자만 보는 오빠에게 매우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 그런데 심지어 오빠가 내 등을 그 여자한테 보여주면서 만져 보라고 하는 거야. 나는 낯선 사람에게 등을 보여주지 않아. 만지는 건 더더욱 싫다고!


그렇지만 예의를 차리기 위해서 나는 뚱커페이스를 유지했어. 여자는 조심스럽게 등을 만지기 시작하더라. 어딘지 강아지를 많이 만져 손길은 아니었어. 살짝 머뭇거리는 모습이 날 무서워하는 것도 같았지. 그때 나는 알았어. '훗.. 내가 이길 수 있겠군..!'


나는 강약약강아지라 나를 무서워하는 존재에게는 크게 짖고, 이빨을 드러내지. 나를 편하게 생각하면 나도 그렇게 대해주지만, 불편해하면 나도 불편한 존재가 돼. 봤지? 강아지들은 아주 상대적이야.

그날 언니는 새 장난감을 사 왔어. 나는 지금보다 조금 못생겨 보이네. 아마도 이건 머리빨 때문일 거야.

오빠랑 그 여자는 사진을 찍고, 책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지. 풀밭에서 그렇게 노는 게 처음이었나 봐.


'재미없어...'


나는 시간이 빨리 흐르길 바랐어. 평소에도 집에 있는 게 제일 좋지만, 그때만큼 집에 가고 싶었던 적이 없었을 거야. 낯선 여자야, 얼른 집에 가버려라~ 속으로 한 열 번쯤 구시렁대었을까, 드디어 둘이 헤어질 시간이 되었지. 여자는 나를 만지지도 못하더니 헤어질 갑자기 오빠한테 안겨있는 나의 뒷발을 잡고 양 옆으로 흔들면서 "뚱자야 안녕~" 하는 거야. 와.. 내가 등은 참아도 발은 참지.. 그때까지 참았던 화가 폭발하면서 입이 먼저 나갔어.


"쿠앙!!!"


나는 그렇게 여자의 손을 물었고, 여자는 깜짝 놀라서"악!" 소리를 지르면서 일어났지. 내가 세게 물었기 때문에 좀 아팠을 거야. 여자 눈에 살짝 눈물이 고인 것도 같았어. 모든 은 아주 순식간에 일어났어. 내가 물려고 마음먹으면 아무도 나를 말릴 수 없지. 이제 알겠지? 나를 함부로 건들면 안 된다는 걸.


오빠는 나를 안고 있다가 깜짝 놀라서 그 여자 손부터 살펴보더라. 어쩐지 나보다 그 여자를 걱정하는 것 같았어. '아니, 저 여자가 내 발을 먼저 만졌다니까?? 나부터 챙겨야지 오빠.....'

기억하기론 내가 언니를 처음 물었던 때가 그때야. 앞으로는 나를 함부로 만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기억력이 좋지 않은 언니는  이후로도 나에게 친한 척을 하다가 물렸지. 생각해 보니 어제도 나에게 물렸네.  좀 가만히 내버려 두면 될걸.. 왜 자꾸 만지려 드는지 몰라.


그런데 말이야, 처음이랑 지금 달라진 건, 이제 언니는 이상 내게 물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거야.


그렇게 세상에 나를 무서워하지 않는 인간이 명이 되었어. 엄마, 오그리고 낯선 여자에서 언니가 이 언니.

그리고 언니는 나와 함께 산책을 나갈 때, 사람들이 날 만지려고 하면 이렇게 말해.


"우리 개는 물어요."


언니를 만나서 내 스타일이 더 좋아진 건 인정할게


*강약약강아지: 강한 강아지한테 약하고 약한 강아지한테 강한 강아지

이전 03화 주말의 뚱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