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집에 들어오면 언니가 오빠한테 꼭 묻는 말이야. 아니 내가 똥을 싸든 말든. 그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인 것 마냥 호들갑이라니까. 언닌 분명 나를 10분 전에 혼내놓고 다시 눈과 눈 사이를 쓰다듬어. 기억력이 물고기보다 나쁜가 봐. 나는 안심하고 다시 등을 내어주지. 계속 긁어라... 아니 거기 말고 조금 위에.
아침에 언니 오빠는 뭘 하느라고 바빠. 오빠는 커다란 화분들 몇 개를 화장실로 옮긴 뒤에 물을 주고, 언니는 책상에서 뭔가를 두드리고 있지. 그러다가 주방에서 뭘 하기 시작하는데... 나는 어쨌든 맛있는 냄새가 나는 쪽으로 몸을 돌려. 원하는 것을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 뭐라도 떨어진다는 강아지계의 속설이 있거든.
어떻게 하면 원하는 것을 얻는가.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무척이나 궁금해하더라. 내 생각에 그건 아주 간단해. 원하는 것이 있다면 얻을 때까지 그것만 보는 거야. 사과가 먹고 싶을 때는 사과만 보고,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는... 여기까지만 할게. 나는 목표 지향적 강아지로서 오빠를 졸졸 따라다니다가 같이 살게 되었지. 강아지를 키우기에 가장 좋은 사람은 루틴이 있는 사람인 거 알아? 같이 살고 나서야 알았는데 오빠는 그런 사람이야. 루틴이 있으면 예측이 가능하고 예측이 가능한 사람은 같이 살기에 최적의 인간이지. 결혼한 뒤로 날 보러 오는 날이 오락가락하지만 적어도 날 굶기거나 외롭게 하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알아.
<이상적인 루틴>
일어난다-똥을 싼다-사과를 먹는다-사료를 먹는다-낮잠을 잔다-일어난다-똥을 싼다-간식을 먹는다.
산책할 때 풀냄새를 맡는 걸 좋아해.특히 두껍고 넓은 잎들.걔들은 항상 그 자리에 있고 나를 귀찮게 하지도 않지.
아스팔트보다 흙을 밟는 걸 좋아해. 이번 여름은 특히 뜨거웠어. 기온이 올라가면 아스팔트 바닥은 두배로 뜨거워져서 발바닥에 화상을 입히기도 해. 강아지가 걸으려고 하지 않거나 한쪽 발을 들면 아프다는 신호이니 안아주거나 그늘이 있는 길로 걷게 해 줘. 그렇다고 신발을 오래 신는 건 별로야. 강아지들은 말랑말랑한 젤리 발바닥으로 체온을 조절하거든.
산책하고 와서 멍 때리는 걸 좋아해.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그때는 날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특히 내가 양다리를 꼬고 있는 건 쉬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야!
감자를 좋아해. 인간들은 소금이랑 설탕을 뿌려먹던데 나는 이해가 안 돼. 감자는 감자 자체로 맛있는 걸! 감자랑 고구마 둘 다 좋지만 감자가 조금 더 좋아. 이건 비밀인데, 하나 알려줄까? 오빠는 가끔 고구마를 으깨 놓으면 먹으면서도 감자인지 고구마인지 구분을 못 하더라. 근데 그건 엄마도 그래. 집안 내력인가 봐ㅋㅋㅋ
오빠 옆에 누워서 자는 걸 좋아해. 오빠 옆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게 느껴져. 그런데 오빠는 내가 옆에 있는데도 자꾸 언니 볼을 만지작거린다? 그럼 내가 엉덩이를 오빠에게 더 착 붙이고 위를 올려다보지. 그럼 갑자기 언니가 날 만지기 시작해. 아. 이건 아니야. 아니라고.....!
이 정도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마칠게. 내가 좋아하는 건 그렇게 많지 않아. 하지만 싫어하는 것은 리스트를 몇 장이고 뽑을 수 있지. 나와 친해지고 싶다면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돼. 그건 다음 주 이 시간에 알려줄게. 관심 없다고? 그래도 알아두는 것이 좋을 거야. 나를 한 번 알게 된 이상, 당신은 이미 행복의 세계에 발을 들인 거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