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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 Oct 13. 2024

주중의 뚱자

나의 유일한 대화 상대, 엄마

"서터레스를 받아서 그래, 그냥 냅둬어어~~"


미용을 하고 방석에 화풀이하는 걸 보더니 "이걸 왜 이렇게 다 찢어놨어!" 하고 목청을 높이는 오빠. 뭔가 잘못되었군.. 난 이런 느낌이 강하게 들 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척 엄마를 봐. 그럼 엄마가 다 막아주거든.


엄마는 예측이 가능한 사람이야. 동이 틀 때 즈음 일어나서 사과랑 사료를 주고 얼마 안 있다가 나를 데리고 산책을 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자는 오빠 집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지. 같은 한국이라도 시차가 다섯 시간 정도 나는 것 같아. 오빠 집에만 가면 눈 뜨고 나서 내내 배를 곪아야 해. 주중에는 상상할 수도 없어. 난 루틴을 지켜야 마음이 편한 강아지인데 말야.


엄마가 사는 곳은 걷기 좋은 동네는 아니야. 집에서 나오면 차들이 빵빵 대며 지나가고,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오토바이가 길을 막아서기도 해. 한 번은 킥보드를 탄 작은 인간이 앞으로 휙 지나가서 엄마가 넘어진 적도 있었어. 그때 후유증으로 엄마는 아직도 다리를 절뚝거려. 그래도 엄마는 오전 8시와 오후 5시, 산책 가는 루틴을 꼭 지켜. 올여름 너무 더워서 산책을 못한 강아지들이 스트레스를 받아서 병원에 많이 왔다는데 그에 비하면 난 건강하게 잘 보낸 편이야.


엄마 집은 계단 위에 있어. 엄마는 내려가는 것이 관절에 안 좋다고 나를 안고 내려가곤 해. 엄마도 무릎이 안 좋으면서. 잠시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지만 어쩔 수 없어. 산책할 땐 이곳저곳의 냄새를 맡느라 나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거든. 엄마가 목줄을 잡고 있는데도 내가 가는 쪽으로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걸 언니가 찍은 영상을 보고서야 알았지 뭐야?


그치만 내가 유일하게 뽀뽀를 하는 사람은 엄마야. 뽀뽀를 하면 엄마가 크게 웃으면서 냉장고를 열거든. 내게 고기를 때면 휴지에 꾹꾹 눌러서 기름을 빼고 (이건 마음에 들어) 고구마와 닭가슴살을 말려서 주고, 알록달록한 파프리카와 오이를 잘게 썰어줘. 내 성질이 더럽긴 해도 잔병치레 없이 동안 강아지로 있는 것은 엄마 덕분인 걸 알고 있어. 넓은 집에 살지도 않고 예쁜 옷이 많지도 않지만, 나는 복 받은 강아지라는 걸.


나를 키우기 전에는 엄마도 개를 무서워했대. 지금도 내가 성질을 내면 "왜 또 지랄이야 지랄이!" 하면서 같이 성질을 내. 어쩔 땐 나를 무서워하는 것 같기도 해. 그렇지만 아무 데나 오줌을 싸면 안 되는 것을 가르쳐 준 것도, 날씨가 추워졌다고 가장 먼저 따뜻한 이불로 바꿔주는 것도 엄마지. 털이 길게 자라면 머리핀을 꽂아서 눈을 찌르는 털들을 고정시켜 주는 사람이 엄마야. 가끔 사료를 넘치게 줘서 곤란하긴 한데.. 그건 내가 알아서 안 먹으면 되니까 괜찮아.

말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이 뭔지 가장 빠르게 알아차리는 것. 그것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사랑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래. 엄마는 내게 그런 사랑을 주었어.


하루 종일 혼자 있는 엄마는 내게 많은 이야기를 해. 했던 말을 또 하는 건 이제 적응이 되어 가는데 웃다가 갑자기 한숨을 쉬는 건 아직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한 번은 눈에서 물이 주르륵 흘러서 내가 핥아주어야 했지.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나는 개들과는 다르게 사람 눈에서 물이 나오는 건 슬프다는 표시라고 하더라? 엄마 말을 다 알아듣지는 못해도 엄마가 슬픈 건 싫어.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엄마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 것 같거든. 한 번은 내가 컥컥거리며 기침을 심하게 하니까 엄마가 놀라서 나를 안고는 궁둥이를 토닥토닥하면서 말했어.


"뚱자야.. 아프지 말고, 사는 동안에는 건강하게만 살자."


나도 말했지.


'엄마도 나랑 건강하게 살자. 뚱자가 지켜줄게.'


나는 가끔 엄마 꿈을 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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