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7
얼마전 친구와 통화하다가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요즘은 낙이 없어. 그냥 애들 재우고 유튜브 보는 게 제일 좋아." 라고. 듣는 순간 뜨끔했다. 유튜브 보기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활동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정하기 부끄럽지만, 제일 좋아하는, 가장 좋아하는, 제일 편안한, 하루라도 안하면 뭔가 찜찜한 활동인 듯하다.
나란 사람은 타고난 내향인으로 다른 이들과 어울려 사는 사회성을 습득하긴 하였지만, 다른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즐겁긴 하지만, 그것은 나의 모든, 뱃속까지의 힘을 끌어올려야 하는 일로 밖에 나가 오래 있으면 금방 방전된다. 밖에 나가서 노는 일, 다른 누군가를 만나는 일, 맛있는 걸 먹으러 가는 일, 공원을 산책하는 일, 연극이나 영화, 전시회를 보는 일, 따사로운 햇살을 받는 일,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일, 놀이공원에 가는 일, 야구장에 가는 일....모두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이지만 동시에 에너지를 방출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밖에 나가 노는 것이 즐겁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일을 하고 오면 에너지가 방출된다. 에너지는 어떻게 모이느냐. 집에서 가만히 있을 때 모인다. 정확히는 집에서 책을 보거나 티비나 행드폰 같은 전자파를 쐴 때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다. 철없는 고딩 시절에는 누가 하루에 30만원씩 나에게 넣어준다면 (거주할 집이 있다는 전제하에) 집밖에 나가지 않고 책이나 티비를 보고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었다. 지금은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칩거만 하는 패턴이 바로 우울증으로 가는 길임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전자파 목욕을 하는 순간을 은밀히 즐긴다. 유튜브 보기는 나의 길티 플레져다. 내 취미가 유튜브 보기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없지만 은근히 몰래몰래 좋아하는.
티비 보기를 매우매우 좋아하지만 요즘은 티비의 자리를 유튜브에게 내어준 듯 하다. 이제 집에서 티비를 켜는 일은 거의 없다. 보고싶은 방송을 챙겨보는 일 또한 유튜브로 검색해 보는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넷플릭스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유튜브의 접속시간에 비할 수 없다. 유튜브의 매력은 무엇일까.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그동안 알려주지 않던 이야기를 속속들이 알려준다는데 있지 않을까. 다양한 매력의 사람들이 각자가 즐거워하는 이야기를 해준다는데 있지 않을까. (방금 전에도 수영배울 때 브라질리언 왁싱을 해야할까요? 라는 고민에 답해주는 유튜브를 보았다.)
MZ답게 구독을 많이 하지는 않는다. 일단 귀찮아서 그렇고, 대놓고 널 좋아해 하는것 같아 부끄럽고, 나중에 재미없어졌을 때 구독 취소하기가 거추장스러워서가 아닐까. 그럼에도 구독하고 챙겨보는 유튜브 채널로는 민음사 TV, 침착맨, 노필터TV, 배사임당, 보라끌레르, 슬기로운 초등생활, 미키피디아, 걍밍경....등등이 있다. 구독하는 채널 많은 편인가....민음사 TV는 출판사에 다니는 직장인들이 책 이야기를 하는게 너무 재밌는데, 책얘기 뿐 아니라 다른 광범위한 주제들도 회사 동료들끼리 이러쿵 저러쿵 상대와 합을 맞추어 이야기하는 장면들이 너무 재밌다. 민음사 TV를 보며 출판사에 다니고 싶다, 직장에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침착맨은 정말 타고난 달변가로 무슨 말을 해도 웃기고, 방송 분량도 많아서 심심할 때마다 믿고 트는 방송이다. 기타 다른 방송들도 가지각색의 이유로 재밌고, 재미로 보다가 아이 교육때문에 보다가, 재테크 해야하는데 하는 마음으로 보다가, 요새 어떤 옷 입어야 하나 싶어 보다가, 다른 사람들은 어떤 물건을 사서 쓰나 궁금해서 보다가, 운동해야지 하고 본다. 한마디로 유튜브를 끌 시간이 없다......
가장 인상적인 건 사람들이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구나를 본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유튜브를 끈다면 더 열심히 살 수 있겠지만 유튜브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으쌰으쌰해야겠다 하는 마음도 든다.
나는 어떤 유튜브 채널을 열 수 있을까 가끔 생각한다. 직업적인 특성을 살려 수능 영어기출문제 풀이를 한문제씩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가....시청자가 없을 듯하여, 사실은 게을러서 생각만하고 있다. 이제 유튜브 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