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 제임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by 김삼일

(이제 여름이 다가오지만) 봄, 가을이 되면 단벌신사처럼 입고 다니는 옷, 세인트 제임스 티셔츠. 약 15년 전쯤인가, 20년 전쯤인가, 세인트 제임스 광풍이 불었었다. 온갖 거리의 사람들이 세인트 제임스 티셔츠를 입고 돌아다녔다. 그 시기에는 세인트 제임스 티셔츠가 예뻐보였음에도 살 수 없었고, 사지 않았다. 경제적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던 학생 신분이었던 내게, 티셔츠 한장에 10만원이 넘는 이 옷은 너무 고가라 생각되어 살 수 없었고, 둘 중 한명이 입고 다니는 티셔츠를 입기가 웬지 모르게 쑥스러워서 사지않았다.


세인트 제임스 광풍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사그라들었고,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살 수 없었고, 사지 않았던 저 줄무늬 티셔츠도 나의 마음속에서 점점 잊혀져 갔다.


그러던 어느날, 약 10년전쯤, 뉴질랜드 어느 골목에서 세인트 제임스 티셔츠가 걸려있는걸 발견하고는, 돈도 벌고, 유행도 지났으니 이제는 사도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파란색 줄무늬 세인트 제임스 티셔츠를 구매하게 된다.


그냥 줄무늬 티셔츠일 뿐인데 세인트 제임스 티셔츠는 뭐가 다른 걸까. 패션에 문외한인, 이런 티셔츠가 유행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남편도, 이 티셔츠를 입고 나왔을 때는, 예쁘네. 하고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칭찬을 건넸다. 실제로 그냥 하얀색 바탕, 파란 줄무늬, 어깨 아래 팔 라인의 파란 딱지가 붙어있는 이 티셔츠를 입으면 티셔츠임에도 무언가 조금은 신경쓴 느낌이 난다. 요즘말로 꾸안꾸인가. 일단 면에 힘이 있어서 후줄근해보이지 않고, 하얀 바탕색과 파란 줄무늬 색도 누래지지 않고 밝은 느낌이어서 얼굴을 빛나게 해주는 느낌이 난다. 특히 봄, 가을에 무엇을 입을지 고민될때 입기에 제격이어서, 이런 휘뚜루 마뚜루 입을 수 있는, 후줄근하지 않은 긴팔티셔츠는 잘 찾아보기 힘들어서 또다른 색깔의, 빨간 줄무늬 세인트 제임스 티셔츠를 구입하여, 파란 티셔츠와 번갈아 입고 다닌다.


면티셔츠 한 장에 10만원이 넘는 가격이라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이제 이 티셔츠를 입은지 10년째이고, 앞으로 10년은 더 입을 계획이니 이 정도면 제대로 구매한 거 아닌가 스스로 생각하며 가심비에 관해 생각한다. 나를 만족시키는 소비, 5년동안 유행이 지나길 기다렸다가 한 소비, 사면서도 과소비는 아닐까 두번씩 생각하는 나, 그럼에도 10년을 입고 만족하는 나. 세상의 많고 많은 물건들 중 나를 흐뭇하게 해주는 물건. 더 더워지기 전에, 내일은 반바지에 세인트 제임스 티셔츠를 입어야 겠다. 부지런히 입어야 겠다.

keyword
화요일 연재
이전 07화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