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지 Oct 30. 2022

그녀는 말하고 듣고 생각하는 중

저녁 여덟 시쯤이 다 되자 현관문 소리가 들린다.

“오셨어요? 밥은요?”

“안 먹었어, 엄마 배고파. 밥 있어?”

“아뇨, 아까 형하고 다 먹었어요.”

“그러면 냉장고에 만두 있던데 그거 좀 해줘”

 꽝꽝 얼어있는 냉동 만두를 꺼내 에어 프라이기에 넣는다. 목이 다 늘어난 반 팔, 반바지를 입고 엄마 영이 나온다. 냉장고 신선 칸에 놓인 수제 맥주를 꺼내어 자리에 앉는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익숙한 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투아웃 주자 1,2루 타석에 4번 타자 최X우가 들어섭니다.”

몇 대 몇이냐 묻는 말에 그녀가 돋보기를 가지러 일어난다. 파란색 뿔테를 코 끝에 걸친 엄마 영의 입에서 험한 말이 나온다.

“우라질 6대 1이야 6대 1”

영 바로 옆에 앉는다. 옆으로 누워있는 핸드폰에 시선이 모인다. 아직 4번 정도 기회가 남았으니 괜찮을 것이다 말하며 그녀를 진정시키려 노력한다. 도대체 기아는 언제 잘하냐며 한숨을 내뱉는다. 시간 맞춰 에어프라이어의 불이 꺼지고 고소한 냄새가 집안을 메운다. 영의 반쯤 남은 맥주를 뺏어 컵에 따른다. 가서 하나 더 꺼내라는 그녀의 손짓과 동시에 냉장고 문을 연다. 오늘 하루 어땠냐 묻자 그녀가 고개를 흔든다. 애들이 수업하기 싫어서 난리 친다 말하며, 억지로 시키려니까 짜증 난다 한다. 마음 같아선 등짝을 한 대 때리고 싶지만, 내 자식새끼도 아니라 그냥 참는다 말하는 그녀의 미간이 한층 깊어진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아빠는 언제 오냐 묻는다. 오늘 야근이라 늦게 온다고 연락했다 말하며 심술 난 표정으로 엄마 영이 나를 쳐다본다.

“너네 아빠 성상 더 많아진 것 같지 않냐?”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도대체 왜 저러냐 한탄하며 너는 아빠가 이해되냐 짜증 낸다. 어김없이 오늘도 경제위기와 자연재해로 인해 하나님의 세상이 올 것이라 말했던 아빠와의 카톡을 공유한다. 속이 타는지 영의 맥주잔이 벌써 비워졌다. 형은 친구 만나러 나갔냐는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언제 일어나서 점심 먹었냐는 하는 물음에는 12시쯤이라 얼버무린다. 어제 새벽까지 너네 형 방 불이 켜져 있었다 말하며, 게임이 그렇게 재밌냐 묻는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형처럼 오랫동안 꾸준하면 질려서 못한다 손사래를 치며 엄마 영에 편을 든다. 손가락으로 형의 제대 날짜를 세어보니 한 바퀴를 돌고도 남는다.

 한 시간쯤 지나자 문 열리는 소리가 난다. 발소리를 쿵쿵 내며 들오는 형과 눈이 마주친다. 오셨냐 묻는 형을 엄마 영이 빤히 쳐다본다. 

"뭐 먹고 들어오는 거야?"

"돈가스요"

 잠깐 앉아보라 하는 엄마 영의 말에 형이 살짝 움츠러든다.

“엄마하고 도롱이하고 같이 독서모임 하자”

형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갑자기 왜 그러시냐 묻자 엄마 영이 할 거냐 말 거냐 말하며 대답을 독촉한다. 옅은 미소로 말없이 식탁을 바라보는 형을 다그친다.

“그냥 엄마 봐서라도 해줘, 집에서 노는데 잠깐 책 읽으면 되지. 일주일에 한 권만 하자 맛있는 점심 먹으면서”

왜 이걸 하고 싶냐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 아들하고 대화 좀 해보려 한다 말한다. 옆에서 두 사람의 기싸움을 가만히 지켜보다 안 되겠다 싶어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낸다. 

“형은 책이 부담스러운 거지?”

그렇다 말하는 형을 보고 다른 방식을 제안한다. 대안은 영화. 어차피 형 OTT 같은 것으로 영화 자주 보니까, 같은 영화 보고 이야기하면 대화가 되지 않겠냐 말하자 엄마 영이 형을 쳐다본다. 영화는 괜찮냐 물으니 충분히 볼 수 있다 답한다. 사실 책을 읽히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속삭이듯 말하는 엄마 영이 눈을 질끈 감는다.  

“그래 그럼 영화로 해 영화로”

극적인 타협 후 형이 자리를 뜬다. 아마 책으로 했으면 일주일하고 끝났을 것이라 위로하며 영의 기분을 맞춘다. 요즘 플랫폼이 많아져서 주제도 좋고 생각할 거리도 많은 영화 찾기가 편하다 하자 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반바지와 수건 한 장 걸치고 나오는 형에게 엄마 영이 영화 골라서 알려 달라 이른다.     


 분위기 좋고 얘기 나누기 적당한 레스토랑에 음식을 한 상 가득 시킨다. 유명 OTT에서 고른 미드에 대해 조금씩 이야기를 나눈다. 먼저 입을 열은 엄마 영이 충격적이었던 내용에 대해 감탄과 공포감을 드러낸다. 음식을 양껏 씹으며 형도 엄마 영의 말을 거든다.

“그 미드 시리즈가 조금 생각할 거리들을 주더라고요”

엄마 영이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자 식기를 내려놓고 손까지 써가며 형이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사람의 뇌에 있는 정보들을 데이터화 시켜서 빼낼 수 있게 되면 그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인공지능을 탄생시킬 수 있고, 또 정말로 그게 가능해진다면 범죄자를 잡았을 때도 뽑아낸 데이터를 가지고 진위를 파악할 수 있는 거죠” 

“이런 건 어떻게 알았어?”

“이게 워낙 유명해서 유튜브에서 보다가 흥미로워서 다 찾아봤어요”

 엄마 영의 시선이 형에게 한 참 머물러 있는다. 잠깐 조용해진 틈을 타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형, 컴퓨터 모니터가 두 대잖아요. 그걸로 한쪽에서는 게임하고 한쪽에서는 영상 봐요”

“그래서 너도 모니터 두 대 필요해?”

형이 부럽냐는 듯 쳐다보는 눈초리에 빠르게 아니라 답한다.

“너는 어땠어?”

“저도 주제 자체가 재밌어서 잘 봤어요. 근데 보다 보니까 이게 인도적으로 약간 어긋난 것 같은 느낌도 들더라고요. 제 생각으로는 저렇게 진짜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대화가 가능한 자아를 만들 수 있게 되면 아무리 인공적으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 공감에 대상이 되어 있을 것 같은데, 회사가 시스템을 다루는 방식이 너무 폭력적인 것 같았어요”

 음식을 먹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엄마 영과 형을 바라본다.

“엄마는요? 엄마는 어땠어요?”

“엄마도 점점 엄마가 알고 있던 진짜 사람, 삶 이런 게 모호해지는 것 같아서... 메타버스라고 들어봤어?”

형과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뭔지는 아는데 하지는 않는다 말하자 엄마 영이 계속 대화를 이어간다.

“그래? 요즘애들은 거기서 친구도 만나고 한다고 하더라고. 어쨌든 그런 거 보면 가상세계에 비중이 점점 커져갈 거라 하는 전문가들의 말도 틀린 것 같지 않고... 세상이 변하고 있는 게 느껴져...”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만족스러운 음식과 대화에 다음 영화는 내가 선택하고 먹고 싶은 음식도 생각해놓으라 말한다. 돌아오는 길에 잠시 생각에 잠긴다. 최근 엄마 영 입에 붙은 말이 있다. 요즘은, 요즘 애들은 어떻다 하는 말을 참 많이 사용한다. 자신이 살아오던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의 삶에 놀라기도 하고 그런 세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가끔씩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뉴스를 가지고 와 나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녀의 표정은 항상 호기심에 가득 차 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물어보기도 하며 발상 자체를 바꿔야 하는 것에 감탄하며 탄성을 내기도 한다. 과연 10년 뒤 20년 뒤에는 어떤 세상이 엄마 영의 궁금증을 자극할까 상상하니 괜히 미소가 번진다.

이전 10화 일단 해봐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