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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지 Oct 30. 2022

영과함께

 조용한 집을 울리는 초인종 소리와 함께 낯선 실루엣이 급하게 떠난다. 문을 열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묵직함이 느껴진다. 택배 온다는 얘기가 없었는데 이렇게 큰 게 왔나 싶어 현관으로 끌고 들어온다.

“경기도 김포시, 주소는 맞고… 김X영…”

엄마 영의 택배다. 상세 품목에는 대 여섯 가지 목록이 나열되어 있다. 대충 보아도 울 50%, 면 100% 이런 게 적혀 있는 걸 보니 옷임을 직감한다. 커터칼로 살짝 뜯어 열어본 상자에는 갖가지 옷들이 수북이 들어있다. 양을 보아하니 그동안 장바구니에 모아둔 옷을 한 번에 결제했나 싶다. 그녀의 옷장에 늘어나는 옷들을 보며 나도 옷 사고 싶다 했던 얼마 전이 떠오른다. 네가 옷 입고 나갈 곳이 어디 있냐 말하며 대차게 거절했던 엄마 영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뾰로통한 표정으로 엄마 옷만 이렇게 많이 사냐 하면 당연하다 말하며 나중에 네가 네 돈 벌어서 사면 누가 뭐라 그러냐 한소리를 들었다. 이번에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라 예상되는 엄마 영의 반응에 부러움의 혀를 한 번 차고 방으로 들어온다.

 삼십 분 정도 지났을까. 일을 마치고 들어오는 엄마 영이 바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안방으로 향한다. 이때다 싶어 그녀의 뒤를 밟는다. 옷방에서 상자 속 옷을 꺼내던 영이 무안하다는 듯 인사를 건넨다.

“왔어? 밥은?”

“옷 사셨네요?”

“입어보고 반품할 거야. 할인한다길래 그동안 입어 보고 싶었던 거 다 주문한 거야. 이런 건 배송비 아껴야 하니까 한 번에 하는 거거든”

그녀가 옷을 하나하나 열어보며 품질을 확인한다. 입기 전부터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으로 보아 환불은 연막임이 분명하다.

“엄마 옷 입게 잠깐 나가 있어”

그녀의 말과 함께 옷방을 나와 침대에 앉는다. 뒤적거리는 소리가 울리고 몇 분이 지나가 엄마 영이 옷을 입고 나온다. 회색 후드 집업과 통이 큰 갈색 바지 고동색 티셔츠를 입은 엄마 영이 어떻냐 묻는다. 그녀의 말과 동시에 옷들을 빠르게 스캔한다.

“예쁜데요? 근데 좀 비쌀 것 같아 보이는데 얼마예요?”

“이거? 이거 얼마 안 해. 여기가 옷감을 좋은 걸 쓰는데 그에 비해 옷이 별로 안 비싸”

엄마 영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한다.

“목단 옷이에요?”

엄마 영이 어떻게 알았냐는 듯 웃으며 박수를 친다. 그녀가 자주 애용하던 옷가게 중 하나를 툭 던진 것이 운이 좋게 얻어걸렸다. 거울 앞에서 몸을 빙빙 돌리는 그녀의 입이 쉴 틈이 없다. 후드 집업은 편하게 입으려고 샀고, 티셔츠는 하나 사 봤는데 감이 너무 좋아서 몇 개 더 샀다 말한다. 미소가 떠나질 않는 엄마 영의 얼굴을 보며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서울이 아니어도 엄마들이 겉모습을 엄청 신경 쓴다 말하며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추고 수업해야 자신의 말이 먹힌다 말한다. 어설프게 옷 입고 아는척하면 무게감이 없다 말하는 엄마 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가끔 이렇게 옷도 사고 해야 수업하는 맛이 나지”

 한층 높아진 그녀의 목소리로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조금은 완화되었음을 느낀다.


 보이는 모습이 다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겉모습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 말하는 엄마 영 밑에서 자라왔다. 어렸을 적 할머니 할아버지 말만 믿고 자신이 정말 예쁘다 생각했던 것이 학교를 다니며 거짓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했다. 옷을 후줄근하게 입고 학교에서 본인을 찾는 할머니를 피해 다녔고, 특히 다 해져있는 할아버지의 낡은 구두를 끌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는 할머니를 보면 한 바퀴 빙 돌아가곤 했다 한다. 

 그런 그녀가 아빠를 만난 이유도 긴 다리와 하얀 피부라 말한다. 패션 센스는 완전 꽝이지만 본인 원하던 큰 키와 좋은 비율에 잠시 눈이 삐었다 말한다. 지금도 낡은 회색 티에 다 해진 트레이닝복 반바지를 입고 나오는 아빠를 보면 엄마 영의 매서운 눈빛과 함께 질타가 시작된다.

“옷을 왜 그렇게 입어? 그렇게 다니면 남편하고 같이 못 다녀!”

민망한 듯 웃다 인상을 한 번 쓰고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는다. 나름 노력했지만 여전히 이상한 색 조합에 안 되겠다는 듯 영이 따라오라 소리친다.

“아니 이렇게 센스가 없어서 어떡해. 자 이거 하고 이거 입어”

엄마 영이 내민 하늘색에 분홍색이 약간 섞인 셔츠와 곤색 바지로 빠르게 환복 한다. 아빠를 빠르게 훑어보며 훨씬 났다는 말과 함께 상황이 종결된다.

 솔직하게 진실을 얘기해야 한다는 이유로 어렸을 적부터 엄마 영은 나의 외모에 비수를 꽂았다. 형제들을 둘러보다 나를 보고는 다리가 좀 짧다, 머리가 크다, 늙어 보인다 같은 말을 가감 없이 얘기해주었다. 왜 본인을 닮아서 그렇게 태어났냐 나무랐고,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다"라 되받아치는 말에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본인이 너무 심했다 생각하면 “그래도 엄마보다는 나으니 괜찮다” 하며 위로를 해 주었지만 이미 토라진 마음을 달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건 옷뿐만이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즐거움을 위해 공간에 변화를 주는 것을 좋아했다. 멀쩡히 잘 놓여있는 식탁을 이리 돌렸다 저리 돌렸다 옮기며 같은 공간과 같은 가구로 다른 느낌을 내고 싶어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 영은 항상 방에 있는 나를 찾곤 했다.

“도롱아 소파를 이쪽으로 빼고 여기에 식탁을 거실로 오면 어떨까?”

이번에는 왜 갑자기 그려나 물으니 밥과 차를 먹으며 밖을 보고 싶다 말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식탁을 자주 쓰지 않으니 이곳에서 공부도 이야기도 나누면 좋을 것 같다 한다. 그녀의 한마디에 무거워 꿈쩍도 하지 않는 식탁을 끌고 이리저리 움직인다. 바닥에 상처가 날까 수건을 밑에 받친다. 힘겹게 가져온 식탁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엄마 영이 미안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이상하다... 그냥 원래가 나은 것 같은데?”

식탁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니 등 뒤에 난 땀으로 옷이 젖었다. 아침부터 땀을 빼게 만든 엄마 영에게 축축한 옷을 보여준다. 미안하다 말하는 엄마 영은 그래도 한 번 정도는 바꿔봐야 이상한지 아닌지 알 수 있다며 무안한 표정을 짓는다.


 날이 조금씩 풀리고 무더위가 찾아오기 일보 전 엄마 영이 이사를 계획한다. 이곳저곳 많이 옮겨 다녔던 지난날들과 다르게 이번에는 오래도록 머무를 계획을 가지고 이사를 준비한다. 깨끗한 집을 원했다. 모르는 이의 삶의 향기가 강하게 베여있는 곳이 아니었으면 한다 말하였다. 특히 주방. 그곳만큼은 싱크대부터 아일랜드까지 하나하나 바꾸고 싶어 했다. 앞으로 오래도록 지내게 될 장소에 언제 생겼는지 모를 10년의 묵은 때가 거슬리는 듯했다. 금전적으로 부담이 되는 것 같아 잠시 고민하는 했지만 이번에는 포기할 수 없다 말하는 단호함이 엄마 영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런 큰일을 앞두고 엄마 영은 나를 찾았다. 학교와 군 문제로 바쁜 두 형제와 인테리어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 아빠를 제쳐두고 내 방문을 두드렸다. 구조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어떤 색 조합이 좋을지 머리를 맞댔다. 대리석은 어떤 모양이 눈에 편할지 생각하고, 타일은 음식물이 튀었을 때 잘 닦이는 재질을 고민했다.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수전 모양은 어떤 것이 좋을지. 후드는 어떤 모양에 기능이 있어야 할지.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인터넷에서 예시를 꼼꼼히 살펴보며 골랐다. 그녀의 온 신경이 집으로 향했다. 함께 작업할 인테리어 업자와 아침에 한 번, 놓친 건 없을까 확인 차 퇴근 후에 한 번 이사 갈 집을 방문했다. 비교적 여유롭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인 나에게 잔심부름은 적격이었다. 인테리어 업자와 간단한 소통부터 시간이 없어 처리하지 못하는 일은 모두 내 몫이었다. 타일 크기에 착오가 생겨 변경이 필요한 일. 확인 차 치수를 재야 하는 일 등.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아갔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생기면 나에게 의견을 구하였고, 때때로는 내가 그녀를 설득할 수 있음에 놀라웠다.

 이사 전 날 깔끔하게 바뀌어있는 집을 만족스럽다는 듯 돌아다니는 엄마 영을 따라 눈동자가 움직인다. 나도 모르는 사이 무언가 달라지고 있었다. 항상 기대고 의지할 줄만 알았던 사람의 짐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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