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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지 Oct 30. 2022

초행길 그리고 탈선

 8 일곱째  0 3~5 사이.   없는 음성과 밝은 빛이 쏟아진다. 잠들기 위해  시간 동안 바둥거린  무색해졌다. 짜증과 불안함이 솟구친다.   방문을  것일까. 술에 취했나? ‘평소  하던 짓을  하필 지금 할까. 그것도 시험이 이틀 남은 지금화가 머리끝까지 난다.

다시 잠에 청하려 눈을 감는다. 최대한 힘을 푼다.

“자자 신경 쓰지 말고 자자. 내일 한마디 하더라도 지금은 자자.”

다시 문이 열리고 머릿속에 또렷한 한마디가 들려온다.

“엄마가 이상해.”

 거실  불이 켜져 있다.  야밤에 집이 이렇게 환했던 적이 있었나, 어지러운 머리를 잡고 급히 나간다. 엄마 영이  늘어져 있다. 가까워질수록 표정 관리가 되지 않는다. 분명 무언가를 말하고 있지만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다리를 한쪽씩 잡고 옷을 갈아입히는 누이와 형을 보며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이해하려 최선을 다한다.

“넘어지셨나? 아니면 무언가에 쏘였나? 말로만 듣던 쇼크인가?”

온몸이 죽은 오징어처럼 널브러지기 시작한다. 초인종 소리와 함께 가슴팍에 119 문구를 단 주황색 옷을 입은 네다섯 사람이 들이닥친다.

“갑자기 마비증세가 왔어요. 오른쪽 팔이 움직이지 않더니 이렇게 됐어요”

급히 가져다 댄 체온계에 38이라는 숫자가 선명히 보인다.

“마비증세는 보통 뇌일 가능성이 커요”

그녀를 들어 들것에 앉힌다. 인상을 쓴 채로 제대로 앉지도 못해 벨트에 고정되는 영을  놓고 바라본다.

뇌?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생각한다. 가만히 집에만 있었는데 머리를 다칠 수 있나 싶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약한 신음을 하던 그녀의 입에서 나온 어눌한 한마디가 머리를 찌른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따라오실 보호자 분 누구냐 묻는 말에 급히 아빠가 뛰어 나간다.     

 한바탕 소란이 사그라든  소파에 앉아 생각을 정리한다. , 다리 근육에 문제가 생겼나 예상해본다. ‘일단 의식이 있는 상태로 병원으로 갔으니 다행이다생각한다. 거실에서 어쩔  몰라하는 누이와 형과 함께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한다. 동그랗게 모여 서로의 생각을 공유한다. 영이 놀라서  몸을 가누지 못했을 것이라 의견이 모이며 일단은 연락을 기다려보기로 한다. 생각보다 길어지는 시간에 거실에 자리를 잡고 눕는다.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야 하기에 눈을 감고 차분하게 마음을 먹는다. 별일 아닐 거라 되뇌며 무음이었던 핸드폰을 소리로 바꾸어 머리맡에 둔다. 그렇게  시간쯤 지나자 전화가 울린다.

“병원에 도착했고 엄마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아. 갈 때 거의 말도 못 하고 그랬어. 지금 나도 코로나 때문에 못 들어가고 있으니까 너희도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얘네들이 방역복으로 갈아입느라 출발이 10분 넘게 지체됐었어”

 불안함이 엄습해 온다. 간단한 문제일 것이라 생각하고 다독이던 마음이 한순간에 무너진다. 복잡함을 달래려 창밖을 응시한다. 새벽의 고요함이 너무도 무겁게 느껴진다. 제발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그녀가 아프길 기도한다. 30분쯤 지나자 이번에는 방에 있던 형의 전화가 울리고, 풀이 죽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엄마 뇌출혈이래 당장 수술해야 한대… 상태가 안 좋아서 돌아가실 수도 있대”

현실감이 없었다. ‘뇌출혈, 죽을 수도 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말이 되지도 믿어지지 않는데 지금 격고 있는 현실이란 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계속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전조증상은 없었는지 돌이켜 본다. 불과 몇 시간 전에 함께 배구경기를 보며 떠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럴 수 있나 싶다. 3일 정도 전에 머리가 기분 나쁘게 아프다 한 것이 떠오른다. 크게 걱정할 것 아니라는 듯 말하였던 그녀의 모습이 선명하다.

 진동음과 함께 전화가 울리고 아빠가 급하다는 듯 엄마 영의 저녁식사 시간을 묻는다.

“여섯 시쯤에 먹었어요 왜요?”

“그리고 먹은 거 있어? 수술하려면 최소 여섯 시간은 공복이어야 한대”

곰곰이 생각한다. 저녁을 먹고 배구를 보던 도중 배가 고파 떡을 구웠던 게 생각난다. 엄마 영에게 권했지만 살찌니 먹기 싫다 했던 말이 선명히 떠오른다.

 먹었어요  시까지는. 그리고 누나랑 같이 있었는데   드신  같아요

알겠다 말하고 전화가 급히 끊긴다. 휴대전화에  맞대고 있던 형제들이 모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렇게   동안 지속되던 적막을 뚫고 옆에 있던 누이가 흐느끼기 시작한다. 울음소리를 듣자마자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겼다. 주체할  무언가가 마구 쏟아졌다. 엄마 영에게 너무 미안했다. 너무 이른 결말인  같아 눈물이 쏟아졌다. 아직 해야  것도 많고 이제 자식들 떼어내고 엄마 영의 삶을 살아갈 시간이라 생각하니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두드렸다. 이렇게 이별을 맞이 하는  아니라 생각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 머리를 쥐어뜯는다. 꿈인가 싶어   쌔게 때리고 느껴지는 고통에 발을 구른다. 꺽꺽 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직 엄마 돌아가신  아니니까 이상한 생각하지 말자 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원래 의사들은 최악을 얘기한다 말하며 서로를 다독이려 노력한다. 한참을 울던 도중 조심스럽게 누이의 동거인이 들어온다. 동거인에게 한참을 안겨 울던 누이  이대로 집에만 있을  없다 한다.

“병원 주차장에 있더라도 일단 거기서 기다리자. 가면 뭐라도 있겠지”

간단하게 옷을 입고 부천으로 향한다. 20분 정도를 달리자 병원 주차장에 도착한다. 텅텅 비어있는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전화를 건다.

“엄마 수술 들어갔어요?”

“아직 안 들어가 갔어 들어가면 말해준다고 했는데 아직 아닌가 봐”

“인터넷 찾아보니까 골든타임이 있던데 괜찮은 거예요? 이미 지났는데…”

“나도 잘 몰라”

 떨리는 손으로 검색을 한다. 겨울철에 쓰러지면 혈관이 더 수축되어 위험하다는 말, 뇌출혈 후 사망 사례, 골든타임을 넘기고도 극적으로 살아난 사람. 불안한대로 일단 다 읽고 공유한다. 그래도 병원인데 의식을 잃은 사람을 그냥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한다. 좁은 차에 네 명이서 구겨진 채 소식을 기다린다. 과묵하던 형이 엄마 영의 핸드폰에 작은 메시지도 남긴다.

“엄마, 이 글을 보면 소원이 없겠어요 너무너무 보고 싶어요”

수술을 들어가고도 남을 시간이 다 되었음에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입에서 탄식이 터진다.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건지 이러다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한다. 의사들을 호출한지도 벌써 네 시간 정도가 흘렀는데, 뭘 이렇게 꾸물거리는지 참았던 화가 올라온다. 그녀를 보낼 마음도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자꾸만 드는 이상한 생각에 주먹으로 다리를 내려찍는다.

‘이상한 생각 하지 마 아직 늦지 않았어 잘 될 거야’를 속으로 계속 읊는다.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되뇌지만 잡을 곳도 의지할 곳도 없어 말 한마디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신이 있다면 기적을 행해주길 바라지만, 이 또한 얕은 믿음에 금방 혼란스러워진다. 새벽 다섯 시가 다 되어서 그녀가 수술실에 들어갔다는 연락이 왔다. 담당의가 두세 시간 걸릴 거라 말하고 들어갔고, 추가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나오겠다는 말을 남겼다 한다. 이제부터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시간 빨리 흘러 수술이 끝나길 바란다. 눈을 감고 머리를 비우려 노력한다. 엄마 영을 다시 만나면 어떨지 생각하며 최대한 낙관적이게 마음을 먹으려 노력한다. 울다 지쳐 쪽잠을 자고 다 헐어버린 코와 눈 사이로 흐르는 물을 막으려 애쓰기를 두 시간. 누이의 핸드폰이 울린다. 그리고 선명하게 한마디가 들린다.

“엄마 수술 끝났어. 근데 못 일어날 수도 있대. 뇌 문제라 언제 일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코로나 때문에 들어갈 수도 의사를 만날 수도 없어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간다. 일단은 문제없이 수술이 끝난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잘 버텨준 엄마 영에게 고맙고, 다시 한번 더 기회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병원을 떠난다.

 싸늘한 집이 낯설다. 새벽의 긴장아직 남아있는지 너무도 차갑게 느껴진다. 대충 세수만 하고 침대에 누워 보지만 전혀 잠이 오지 않는다. 뻐근한 몸과 팅팅 부은 얼굴에도 마음이 불편하여 결국 일어나 앉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계속 기억을 더듬어 봐도 현실감이 없다. 어제 점심으로 형제들과 함께 브런치를 먹으러 갔던  꿈같다. 만족한다는  형제들을 쳐다보던 그녀의 모습에 다시 눈물이 맺힌다.  벌어서 자식들 맛있는  사줄  있어 기쁘다. 먹고 싶은   먹어라 말했던 엄마 영이 떠올라 다시 눈물을 흘린다.  물건 하나하나에 영의 기억이 남아있다. 책상부터 책장, 벽지, 행거, , 이불, 침대 . 모두 영과 함께 고르고  것들임이 상기되니 허무하기 이를  없다. 도무지 방에 있을  없어  방으로 넘어가 울음을 터뜨린다.

“나 내 방에 있을 수가 없어. 엄마가 너무 생각나서 도무지 맨 정신으로는 있을 수가 없어”

누워있던 형이 조용히 와서 안아준다.

“그럼 그때마다 형 방으로 와”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방에 들어가자마자 다리가 풀려버린다. 닫혀있는 암막 커튼에 통곡한다. 잠시 외출하고 집에 돌아오면 방에는 항상 영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방문도 열어놓고 답답하게 닫혀있는 커튼을 활짝 열어놓았다. 어둡던  방에 그녀의 손길이 남고, 내가 없는 시간 동안 방에 있었을 그녀를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오랜 외출에도 미동 없는 커튼과 병원에 누워있을 그녀를 생각하니 무언인가 하나가 고장  것처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소리를 듣고 방으로 들어온 누이가 나를 안는다. 도무지  힘으로는 감당할  없을  같다 소리를 내며 울부짖는다.

“엄마한테 미안해서 어떡해, 이건 아닌데”

 엄마 괜찮을 거라 안심시키는 누이의 손떨림이 느껴진다. 본인도 확신할  없지만 일단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방으로 왔다고 생각하니 답답하고  미안했다.  먹지도 잠을  자지도 못했다. 그냥 시간이 빨리 가기를 . 너무 많이 울면 머리가 아프다는  처음 깨달았다. 신경 쓰이는 두통에 진통제를 먹어보지만  말을 듣지 않는다.  때리고 울기를 반복한다.     

이른 아침, 눈을 뜨고 안방으로 향한다.

“병원에서 전화 온 거 있어요?”

아직 없다 말하며 전화기를 꺼내 통화 버튼을 누른다.

“네, 응급실입니다.”

“혹시 거기 김미영 환자 상태 좀 알 수 있을까요?”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남편이요”

시끄러운 주변 소리와 함께 담당 간호사가 전화를 받는다. 아직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급히 전화를 끊는다. 가만히 방에 앉아 전화통화 하나에 의지해야 하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얼굴도 모르는 간호사의 말 한마디라는 게 기가 차다.

“새벽에 엄마 수술한 침대 보니까 머리카락이 다 떨어져 있더라. 자세히 보니까 자른 게 아니라 뽑힌 거 같았어. 막 발버둥 쳤던 것 같아.”

가만히 듣고 있는다. 그때의 심각성이 다시 한번 인지되고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다. 아직도 오전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너무 더디다.

 내가 목표했던 많은 일들이 부질없이 느껴진다. 그저 그녀만 건강히 돌아왔으면 좋겠다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점심쯤이  되자 전화 벨소리가 울린다. 핸드폰에 선명히 적힌 ‘응급실이라는 단어에 모두 숨을 죽인다. 전화를 받으니 담당의라 말하고는 현재 상황을 읊는다. 위급한 일이 생기거나 추가적으로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면 다시 연락드리겠다 말하는 의사를 붙잡는다.

“그런데 수술 후에 얼마나 지나면 깨어나나요? 지금 깨어나야 하는데 못 일어나시고 있는 거죠?”

  딱히 그런  있는  아니고요. 환자분은 잠자는 약을 이번 주말까진  거라서 아마  일어나실 거예요

이게 무슨 소린가 싶다. 입에서 육두문자가 쏟아진다. 사람 가슴 졸이고 애태우는  재미있나 생각한다. 잠자는 약을 쓰면 쓴다 말했어야지 사람 재워놓고  일어나는 것처럼 겁을 주는 막되 먹은 놈들이 어디 있나 생각한다. 화가 치밀어 르며, 한참 동안 입을 험하게 사용한  크게 숨을 내뱉는다. 그래도 이번 주말에는 걱정을 조금 줄일  있겠다 생각한다. 그녀가  쉬고 있다 믿어야 밥이라도  숟갈 넘길  있을  같았다.

 방에 앉아 엄마 영이 일어나면 무엇을 물어볼지, 어떤 말을 해줄지 고민한다. 평소에 하지 못한 말은 무엇일까 생각하며 종이에 적어 내려간다.

1. 최근 그녀와 함께 했던 일 물어보기

2. 평소 하던 일에 대해 생각나는 거 있는지 물어보기

3. 수업에 오지 않아 전화를 한 학부모들 반응 얘기해주기

 그녀와 나의 시간을 하나하나 회상하며 다시금 함께 기억할  있기를 바라본다. 생각이 많아져 쉽게 잠들지 못하고, 아침에는 매번 놀라며 잠에 깬다. 생각할수록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괴리감이 느껴진다. 집안 내력에 암이 있어 걱정하던 엄마 영을 떠올린다.  관리를 위해   백을 들여 디톡스를 하고, 평소 하지 않던 운동도 꾸준히    생각하니 다시 두통이 몰려온다. 영의 최근  상태  가장 건강하다 자부할  있었는데 이럴  있나 싶다. 자신의 건강과 외적인 변화를 보며 만족스러워하던 영의 모습이 떠올라 눈을 질끈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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