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영의 간병일이 조금씩 늘어날수록 누이의 입에서 짜증과 힘듦이 나오기 시작한다.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떠오르지 않아 뭐 필요한 거나 먹고 싶은 거 있냐 물어본다. 잠시 고민하던 누이가 입을 연다. 족발과 빵이 먹고 싶다 한다. 집 앞에 파는 빵집에서 달달한 빵과 족발을 싸가지고 와 달라 말한다. 누이의 말에 흔쾌히 알겠다 말하고 내일 아침에 가져가겠다 한다.
배달앱에서 제일 빨리 여는 족발집을 찾는다. 보통은 오후 네시 이르면 두시에 영업을 시작한다. 스크롤을 열심히 밑으로 내리다 딱 한 곳 열 두시에 영업 시작이라 적힌 곳을 발견한다. 음식점을 찜 목록에 넣어놓고 퇴근한 아빠를 찾아 방으로 들어간다.
“누나가 음식하고 필요한 물건 좀 가져다 달라고 하네요”
“어떤 거?”
“빵 하고 족발 먹고 싶다고 해서 싸주고 그리고 생필품 몇 개요”
아빠가 고개를 끄덕이자 안녕히 주무시라는 말과 함께 방에서 나온다.
아침 일찍 눈이 떠진다. 병원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괜히 초조해진다. 대충 몸을 씻고 시계를 본다. 아직 일일곱 시도되지 않은 시간에 너무 서둘렀음을 인지한다. 아홉 시부터 여는 빵집 시간을 생각하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눈을 감는다. 해야 할 일을 정리하며 놓친 건 없나 다시 확인한다. 천천히 생각하다 음식을 담을 통이 마땅한 게 있을까 싶어 급히 몸을 일으킨다. 불안한 마음과 함께 부엌으로 뛰쳐나간다. 혹시라도 통이 없으면 대참사다 싶어 찬장을 이리저리 뒤진다. 간신히 서너 개 남아있는 통들을 찾아내 물로 한번 헹구고 말려 놓는다. 혹시 늦잠을 잘까 싶어 알람을 한 개 더 맞춘다.
시끄럽게 울어대는 핸드폰에 잠에서 깨어 대충 옷을 입고 빵집으로 향한다. 문을 열자마자 허전한 매대를 보며 한숨을 쉰다. 오픈 시간부터 빵으로 꽉꽉 차 있을 것이라 생각한 내가 바보다 생각하고 점원에게 말을 건다.
“혹시 빵 언제쯤에 나오나요?”
“어떤 빵 말씀하시는 건지…”
“그냥 전체적으로 빵 나오는 시기가 언제일까요?”
열한 시는 넘어야 빵이 많이 나온다는 말에 집으로 향한다.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한 게 아무것도 없다. 허전함을 안고 다시 방으로 들어와 앉는다. 생각보다 변동사항이 많아진 일정을 정리한다.
시간에 맞춰 도착한 음식 그리고 생필품들을 차에 싣는다. 새로운 이어폰과 여분의 베개가 들어있는 종이백 하나, 음식물들이 잔뜩 들어있는 장바구니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출발한다. 점점 낯익어지는 길에 며칠 전에 느꼈던 두려움이 상기되며 눈가가 촉촉해진다. 불안한 마음과 세상을 다 잃은 것만 같었던 시간을 생각하면 음식을 가져다줄 수 있는 이 순간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인지한다. 병원 입구에 도착하고 누이에게 문자를 넣는다. 주변을 둘러보니 가벼운 차림으로 입구 쪽을 바삐 살피는 사람들이 여러 보인다. 모두 손에 종이백 하나씩 들고 있다. 손을 크게 흔들며 미소를 띠는 사람들의 표정에 괜스레 웃음이 나온다. 기다리던 사람들이 하나씩 자리를 뜬다. 생각보다 늦어지는 누이에 걱정이 된다. 전화 한번 해볼까 싶어 핸드폰을 잡고 번호를 찾는 순간 인기척이 느껴진다. 파란색 헤드폰을 목에 걸고 다 늘어난 티셔츠와 바지를 입고 있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색 조합인가 싶은 걸 보니 누이가 분명하다. 뭐하냐는 듯 쳐다보는 누이에게 손에 든 물건을 들이민다.
“이건 음식이고 이건 물건들, 얘기한 건 다 넣었어. 확인해보고 또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해줘”
살며시 열어 안에 든 물건들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아빠는 어디 있냐 묻는 말에 주차하고 있다 한다. 먹는 건 잘 먹냐, 힘든 건 없냐 물으니 괜찮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시켜먹기도 하고 병원에서 간단하게 사 먹는다 말한다. 형식적으로 가볍게 한번 포옹하고 얼른 들어가라 말하며 짧은 만남을 종료한다. 코로나만 아니었어도 입구에서 방황하다 집에 돌아갈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아쉬움이 더욱 커진다. 주차장 입구 쪽에서 낯익은 실루엣이 보인다. 누나는 갔냐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병원 입구에서 멀뚱이 서 있다 다시 주차장으로 향한다. 빠른 귀가에 지체 없이 주차 정산기가 열린다. 말없이 조용히 도로를 달린다. 창문 밖 바람소리와 엔진 소리에 익숙해져 갈 때쯤 진동이 울린다.
“여보세요, 엄마?”
침대에 누워 다 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뻥긋 거리는 엄마 영의 모습이 보인다. 먼 길 왔는데 못 보고 가서 아쉽다 말하는 엄마 영의 말에 맞장구친다. 망할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한번 안아 드리는 건데 아쉽다 덧붙인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너무 멀리까지 온 거 아니냐 묻자, 손을 저으며 15분 거리밖에 안 된다 능청을 떤다. 웃으며 가져다준 할라피뇨 빵 잘 먹었다는 말에 놀라 그거 먹어도 되냐 물어본다. 조금은 먹어도 괜찮다 말하는 그녀의 표정이 편해 보여 안심한다. 또 가져다 드리겠다 답하고 짧은 대화가 끝난다. 허전했던 마음이 조금은 채워지는 것 같다. 자그마한 휴대폰 화면과 손 한 번 잡지 못하는 게 여전히 아쉽지만, 잠시나마 얼굴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생각하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닷새 정도 지나자 영의 간병을 하던 누이에게서 싫은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영이 무기력해 자신의 마음이 너무 힘들다 한다. 간병을 바꾸자 말하는 누이에 입은 이미 심술이 나 있다. 병원에만 있어 답답하다는 말과 함께 침대가 불편하여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말한다. 간병 가기 전부터 분명 병원 침대가 불편할 것이라 말했지만, 이는 누이의 예상을 뛰어넘은 듯했다. 아빠하고 얘기해 보겠다 말하고 전화를 끊는다. 잠시 숨을 고르고 전화 기록을 뒤진다.
“아빠 누나가 힘든가 봐요 간병 바꾸고 싶은 것 같던데...”
“그럼 바꾸면 되지, 내가 들어갈까?”
월차를 한꺼번에 몰아서 낼 수 있을 거다 말하며, 집에 있는 노트북 챙겨서 업무 보면 된다 말한다. 그래도 괜찮냐 물으며 내가 들어가도 된다 말하지만, 너는 조금 있다 엄마 재활병원 들어가게 되면 그때 간병하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아쉬우면서도 마음이 놓인다. 맨날 아프기만 했던 나보다는 간병 경험이 많은 아빠가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나중에 힘쓸 일 많을 때 들어가서 엄마 자주 보자 생각한다. 퇴근한 아빠가 부랴부랴 짐을 싸자 옆에서 살짝 거든다. 들고 온 베개도 필요 없다 말하며 두꺼운 수건 몇 개나 더 가져오라 말한다. 형의 커다란 군대 가방을 들쳐 메더니 이 정도면 되었다는 듯 가방을 툭툭 친다. 거실 한편에 쟁여놓은 짐들을 놓는다. 한동안 쓰지 않았던 노트북을 켜 회사에서 사용할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하며 준비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