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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지 Oct 30. 2022

기다림

 아빠의 간병기는 생각보다 수월했다. 솔직히 얘기하면 누이보다 비교적  감정적인 것도 연락을 기다리는 입장에선 편했다. 엄마 영의 상태를 묻기도 훨씬 수월하였다. 그녀의 한마디면 끔뻑 죽는 아빠였기에  그녀 말이  맞다 맞장구 쳐주며 지내는  같았다. 그런 아빠가 만만해서인지 분명 누이와 있을 때는 재활 병원으로 입원하여 짧고 굵게 재활을  것이라 했지만, 아빠에게는 살아있는 것도 기적이니 통원 치료하겠다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도 입원하여 치료받는  낫지 않겠냐는 아빠의 말에는 남편이  아냐 받아쳤고  이후에는 재활병원 얘기조차 꺼내지 못했다 한다. 그렇게 서로 거리며 별문제 없이 일주일이 지났고 내일모레면 출근해야 하는 아빠를 대신할 간병인을 정할 시간이 왔다. 이번에는  차례라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었지만, 예상과 다른 연락이 온다.

“지동아 엄마가 너 말고 누나 오라고 하네, 네가 간병하다 병날까 엄마가 걱정되나 봐”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내가 보고 싶을 만도 할 텐데 왜 오지 말라 하는지, 조금 서운했다. 내가 아무리 몸이 안 좋아도 내 부모 간병 정도는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못 믿어주나 싶었다. 아쉬움 마음에 혼자 토라져 있기를 삼십 분 생각을 조금 바꿔본다. 아마 엄마 영도 이런저런 일을 시키려면 나보다는 누이가 편해서 그런 것 아닐까 예상해본다. 아무리 내가 잘한다 하더라도 당사자가 불편하면 의미가 없다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는다. 엄마가 너 안 찾고 또 자신을 또 부른다 놀리는 누이를 한 대 칠까 고민하다 포기한다. 나보다야 한번 해본 누이가 더 잘하겠거니 생각하고 마음을 접는다. 전화를 들어 영의 번호를 누른다. 나 안 보고 싶냐는 추궁과 함께 다음에는 꼭 내가 가겠다 말하며 약속을 받아낸다.


 다시 누이가 병원으로 향했다. 누이를 통해 들려오는 말들이 하나같이 주옥같다. 상태가 많이 좋아진 영을 보고 의사들이 기적이라 했다 한다. 후유증도 마비 증세가 있었던 오른손이 말을 듣지 않는 것과 말이 조금 어눌한 것 정도면 예상보다 훨씬 상태가 좋다 하였고, 출혈 부위가 컸던 만큼 많이 잘라냈던 영의 두개골도 이제 복원해도 된다 한다. 별 이상만 없으면 곧 수술 날짜를 잡자 말하고 떠났다는 말에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누이가 찍어 보내준 영의 모습도 훨씬 좋아졌다. 움직이지도 못하던 오른손이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한다. 조금씩 좋아지는 상황에 이제는 정말 걱정을 줄여도 되겠다 생각한다.

 하루에 한 번씩 하는 영상통화에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옛날 엄마 영의 모습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다. 밥은 먹었냐 묻는 엄마 영에게 잘 챙겨 먹고 있으니 걱정 말라 말한다.

“토익 시험은?”

복숭아를 먹는 엄마 영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아직 못 땄어요... 점수가 계속 조금씩 부족하네요”

고개를 저으며 영이 시선을 돌린다.

“도대체 언제 따. 그냥 학원 가라니까?”

 엄마 영이 옆에 있는 누이에게 학원 가격을 묻는다. 가격도 30~40이면 될 것이고 한 달만 빡세게 다니면 나올 거다 말한다. 원래 학원이 하는 일이 그런 거다 하는 누이의 말에 엄마 영이 날이 선 눈빛으로 경고를 날린다.

“그냥 빨리 끝내. 너도 그만하고 싶지 않아?”

“엄마 재활병원 가면 그때부터 다닐게요… 엄마가 제 걱정해주니까 너무 좋네요”

 평소 같았으면 뾰로통한 표정으로 엄마 영을 노려봤겠지만 지금 만큼은 너무도 그리웠던 이 순간에 그냥 헤벌쭉 웃는다.


 다음날 전화로 영의 수술 날짜를 전달받는다. 금요일에 수술한다는 말에 기쁘면서도 마음이 무겁다. 두개골 복개 수술은 간단한 성형술이라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하여도 수술은 수술이니 신경이 쓰인다.

 그렇게 기다린 금요일 아침. 수술 준비를 하던 엄마 영에게서 소식이 들려온다. 갑자기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해 수술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얘기를 전해 듣는다. 멀쩡하던 몸이 하필 수술 날에 왜 열을 올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한껏 긴장하고 준비하던 영도 기분이 좋지 않은지 전화를 받지 않는다. 빨리 머리를 덮고 재활 훈련에 매진하려 했던 계획이 틀어졌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다시 짧아진 머리카락만 남아있다.

 당황했지만 누이와 영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최대한 진정된 목소리 수술하기 전에 문제가 발생해서 다행이다 말한다. 혹여나 수술하고 문제가 생기면 더 골치 아팠을 텐데, 이것도 한편으로는 운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말하며 좋은 기운을 전달하려 해 본다. 하지만 이미 싸늘해진 분위기에 기가 밀려 흐지부지 전화가 끊겼다. 원래 인생은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고 수도 없이 들었지만 오늘만큼은 이 말이 별로 위로가 되지 않는다.

 누이에 말투도 지난번 간병 때보다 훨씬 날이 섰다. 성질이 났는지 자신은 간병하는데 너희는 뭐하냐 묻는다. 보나 마나 또 게임하겠지 하는 누이에 말에 당황한다. 억울함이 올라오지만 꾹 참는다. 누이가 엄마 영 옆에서 밝은 에너지를 줘야 할 것을 생각해 최대한 부드럽게 얘기한다.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하다. 필요한 것 있으면 얘기해라” 말하며 누이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한다. 빠르게 전화가 끊긴다. 심란해진 마음을 달래려 방에서 혼자 중얼거린다. 자신이 들어가고 싶어서 들어갔으면서 누가 누구한테 성질인가 싶다. 방에 앉아 한참 구시렁거리자 다시 누이에게 전화가 온다. 영이 너무 무기력해 힘들다 말하며 나에게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 한다. 오늘 받으면 내일 아침에 결과가 나오니 내일 오후나 그 다음날 아침에 간병을 바꾸자는 말에 알겠다 한다.

 시간을 확인하고 보건소로 향한다. 큐알코드를 찍고 검사 사유에 간병을 택하고 긴 면봉으로 콧구멍을 쑤신다. 약간의 긴장감이 돌며 보고 들은 내용들을 토대로 병원 상황을 그려본다.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뭔지 모를 두려움에 불안함이 커져간다. 그저 엄마 영 앞에서 좋은 기운을 양껏 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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