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하루에 한 번 오는 주치의에 연락을 기다린다. 아빠 핸드폰의 벨소리가 울리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소리 나는 곳으로 달려간다. 아침에 일어나면 회사에 나간 아빠에게 연락해 병원에서 연락이 왔냐 묻는 일상이 다시 시작됐다. 복잡스러움이 연상되는 주변 소음과 함께 간호사들이 주치의 선생님을 바꿔주겠다 말하면 모두 숨을 죽인다.
“오늘 환자분 상태 확인했고 CT 찍어 봤는데 다행히 출혈량이 더 늘지는 않아서 약으로 출혈 잡고 자연적으로 마르길 바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약품이 비급여성이라 보호자분 동의가 필요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약품 사용해 주시고요. 출혈이 그렇게 잡히면 수술은 필요 없을까요?”
“일단은 상황을 봐야 하는데 출혈이 멈춘 거라면 약품 사용하고 경과를 지켜봐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마 자연적으로 마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분명 긍정적인 소식이지만 가시지 않는 불안함이 계속 가슴을 조여 온다. 회복과 후유증이 이 정도면 정말 좋은 것이라 말했던 게 얼마 전 일인데, 완전히 바뀌어버린 상황에 긴장의 끈을 더 조인다.
엄마 영이 중환자실에 내려 간지 삼 일이 지났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아빠가 병원에서 엄마를 다시 일반병실로 내려보낼 거라 했다 말한다. 오늘 찍어본 CT에서 출혈이 많이 없어졌고 회복도 잘 진행 중이라 한다.
“내가 갈 거야. 그리고 일주일 정도 있다가 재활병원으로 옮겨야 할 것 같아. 지금 상황으로는 두개골 덮는 수술은 어려울 것 같고, 그렇다고 재활도 못하고 이렇게 있을 수 없으니까 주치의가 재활 전문 병원 가서 재활받는 게 어떠냐 제안하더라고 그러니까 내가 들어가서 엄마랑 같이 퇴원할게 그리고 재활병원은 네가 가”
이미 계획을 다 세워놓은 아빠 말에 알겠다 한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집을 나선 아빠가 이른 오후에 영상 통화를 건다. 약간 멍해보지만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는 엄마 영이 눈앞에 나타난다. 아빠에게 엄마 괜찮은 거냐 묻자 듣고 있던 엄마 영이 힘들다 말한다. 중환자실에서 가만히 누워만 있으니까 지겹고 힘들었다 한다. 조금 있으면 퇴원하니 금방 보자는 말을 남기고 전화가 끊긴다. 혹시 전화 소리를 들을까 문자로 엄마의 상황을 아빠가 전달한다. 지금은 마약성 진통제를 쓰고 있고 나가기 전에 CT를 한 번 더 찍어서 상황을 살피고 퇴원할 것 같다 한다. 아직 두통이 심해서 계속 약을 찾고 계속 잠을 자는 엄마 영의 상황도 전달한다.
약속한 일주일이 조금 넘자 드디어 엄마 영이 퇴원을 해 집으로 오는 날이 되었다. 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 퇴원한 당일 하루만 집에 머무르고 내일 재활병원으로 떠나야 하지만, 오랜만에 볼 엄마 영을 생각하니 살짝 흥분한다. 집을 치우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실내화와 사복을 입은 엄마 영이 눈앞에 나타난다. 뛰쳐나가 그녀와 눈을 맞추자 동그란 눈과 살짝 놀란 표정이 맞이한다. 그녀를 부축해 소파에 함께 앉는다. 집을 계속해서 둘러보며 왼손으로 힘없니 쳐져있는 오른손을 잡고 있던 엄마 영이 조용히 말한다.
“일단 씻어야겠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분주하게 움직인다. 혹시나 넘어질까 화장실에 나무 의자를 들여놓고 아빠가 엄마 영을 안방으로 데려간다. 나는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아빠가 엄마 영의 목욕을 옆에서 돕는다. 여러 번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고 곧이어 물소리가 멈춘다. 터벅터벅 걸어 나오는 엄마 영의 시선이 한 곳에 멈춘다.
“저게 뭐야? 완전 신당을 차려놨네”
영의 목청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더니 중심을 잃고 휘청거린다. 재빨리 다가가 영을 부축한다.
“내가 죽어도 저렇게 해 놓을 거야!? 언제까지 그럴 거야?”
상황의 심각함을 인지한 아빠가 부랴부랴 성상을 치운다.
“사람은 그냥 이렇게 죽는 거야 하나님이고 하느님이고 거대한 심판이 뭐 어쩌고 저쩌고 해도 하루아침에 이렇게 되는 거라고”
아빠를 노려보는 엄마 영을 진정시키려 노력한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흥분하는 엄마 영을 잡고 그러다 진짜 쓰러진다 말린다. 씩씩거리며 눕고 싶다 말하는 엄마 영을 데리고 침대에 눕힌다. 미간에 주름이 한 층 더 깊어진 엄마 영이 돌아 벽 쪽으로 눕는다. 혹시나 잠을 자다 떨어지지는 않을까 두려워 침대 바로 옆 선반에 쿠션을 깔아 두고 바닥에는 두꺼운 이불을 펼쳐 놓는다. 내 행동을 보고는 살짝 미소를 띤 그녀 옆에 잠시 눕는다.
“뭘 이렇게 까지 해? 왜 이렇게 엄마한테 잘해줘”
“이게 뭘 잘해주는 거예요... 그냥 하는 거지”
눈을 감고 잘 준비를 하는 엄마 영에게 조용히 묻는다.
“그런데 엄마 한 일주일 전에 병원에서 저 본거 기억 안 나요? 저랑 하루정도 같이 있었는데... 아까 엄마 얼굴이 저를 처음 보는 것처럼 놀라는 것 같아서 그냥 물어봐요”
감았던 눈을 뜨고 잠시 생각하던 엄마 영이 고개를 젓는다.
“그랬었나 기억이 없네”
“그럼 됐어요. 저녁은 뭐 드시고 싶으세요?”
“별로 먹고 싶은 거 없어... 아 추어탕 먹을까?”
집 앞에 있는 추어탕 집을 얘기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다 말하고 여기서 쉬고 있으면 아빠랑 같이 사 오겠다 말하고 방을 떠난다.
양손에 한가득 포장음식을 사 들고 집으로 들어온다. 엄마 얼굴이 보고 싶어 일이 끝나자마자 달려오겠다 약속했던 작은 이모와 사촌 동색 몫까지 고려해 총 칠 인분을 사 가지고 왔다. 커다란 솥을 끄내 가져온 음식을 담아 팔팔 끓인다. 함께 포장해준 부추와 마늘 고추를 적당히 넣고 저녁시간이 되길 기다린다.
어둑어둑 해 지는 시간이 되자 엄마 영이 방에서 터벅터벅 걸어 나온다. 마비가 와 어깨에 힘이 없어 대롱대롱 흔들리는 오른팔 그리고 빡빡 민 머리를 긁으며 나오는 엄마 영에게 시선이 향한다. 씩 하고 웃는 그녀의 모습에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앉힌다. 오랜만에 보는 작은 이모와도 간단히 인사하고 앞에 놓인 추어탕을 응시한다.
“엄마 많으니까 먹고 또 먹어요. 제가 아주 정성스럽게 끓였어요. 그리고 이모가 반찬도 몇 개 했어요”
숟가락을 들고 조심스럽게 떠먹는 엄마 영이 맛있다 한다. 그릇을 싹싹 비운 엄마 영을 바라보며 더 드리냐 묻자 손을 휘휘 저으며 배부르다 말한다.
소화시킬 겸 소파에 앉아있는 엄마 영 옆에 기댄다. 거실에 놓은 스피커를 켜고 짧은 음악 프로그램 영상을 재생한다. 그녀가 좋아하던 경쟁 프로그램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를 함께 듣는다. 13분 남짓한 영상은 말리꽃, 보고 싶다, 미아 순으로 진행된다. 노래를 조금씩 따라 부르며 다리를 떠는 그녀를 슬쩍슬쩍 쳐다본다. 애절하게 “지쳐 쓰러지며 되돌아가는 내 삶이 초라해 보인 대도”라는 가사를 듣자 울컥하여 엄마 영을 바라본다. 아무렇지 않은 듯 덤덤히 노래를 듣는 그녀를 꼭 안는다. 갑자기 왜 이러냐는 듯 쳐다보는 엄마 영에게 애정표현이다 능청스럽게 대답한다. 오랜만에 엄마 영과 익숙한 공간에서 평소대로 실컷 떠들었다. 이전과 다름없이 그녀는 열심히 이야기를 듣고 내 입은 쉴 틈 없이 말한다. 잊고 있던 일상이 다시 돌아왔고, 지속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에 오늘만큼은 마음을 비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