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경비에 가로막혀 누군가가 들어가는 것만 보다 이제는 병원 입구 키오스크에 서 있다. 방문 목적과 개인정보를 제출하고 표를 받아 입장한다. 사람이 가득 차 있는 접수 코너를 비집고 들어가 번호표를 받는다. 예상 대기시간은 30분. 붐비는 사람들 틈을 벗어나 비교적 한가한 곳에 짐을 내려놓는다. 들어갔냐 묻는 누이의 전화를 받고 현재 상황을 설명한다. 위에서 영이 기다라고 있으니까 연락 한번 해보라는 말에 전화를 건다.
“엄마 지금 병원 로비인데, 사람이 많아서 시간 조금 걸릴 것 같아요”
“그래, 천천히 와”
긴 대기시간 끝에 얼굴에 피곤함이 잔뜩 묻어있는 상담원과 마주한다. 보건소에서 보내준 문자를 보여달라는 말에 급히 꺼내 내민다. 환자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냐 묻자 어머니라 답한다. 놀이동산에서나 보았던 팔찌 티켓을 내 팔목에 두르며 7층으로 올라가라 말한다. 사람이 많아 간신히 올라탄 엘리베이터가 7층에 멈추고 양 옆에 하나씩 총 두 개에 입구와 마주한다. 영이 어디에 있을까 잠시 고민하다 오른쪽에 있는 입구로 들어가 간호사를 붙잡는다.
“저 김OO 환자 보호자로 왔는데 혹시 어디에 계실까요?”
잠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열심히 타자를 두드린다. 환자 이름 한 번 더 얘기해달라는 말에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한다.
“이쪽 말고 반대쪽으로 가셔야 할 것 같아요”
구개를 꾸벅 숙이고 다른 문으로 향한다. 가장 한가로워 보이는 간호사에게 다가가 환자 이름을 말하자 손짓과 함께 바로 앞에 보이는 방에 오른쪽 제일 첫 번째라 얘기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조심스럽게 커튼을 연다. 핸드폰에 집중하던 영의 시선에 나에게 쏠린다. 반가운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앉으라 말한다. 눈이 반쯤 풀린 영을 보며 촉촉한 눈가로 잘 지내셨냐 묻자 고개를 끄덕인다. 이게 얼마만인가 싶어 엄마 영의 손을 조심히 잡는다. 진통제를 갈아주러 온 간호사에게 엄마 영의 일정을 전달받는다. 저녁 먹기 전 ct촬영이 남아있고 공복을 유지하라 이른다. 엄마 영의 얼굴을 유심히 본다. 옆에서 봤을 때는 몰랐지만, 이마부터 머리 중간까지 뼈가 없어 함몰되어 있다. 흰머리를 경멸하며 3주에 한 번씩 염색을 하던 그녀의 머리에 하얀 눈이 내렸다. 그녀가 아프다는 게 다시금 실감이나 살짝 울컥한다.
유튜브를 보는 영에게 뭘 보냐 물으며 다가간다. 오랜만에 그녀의 냄새를 맡는다. 약간 퀴퀴한 냄새가 섞였지만, 엄마 영의 냄새가 틀림없어 웃음이 나온다. 생각보다 편한 병실 침대에 속으로 누이 욕을 한다. 접이식으로 의자로 바꿀 수도 있고 쿠션감도 있는 이 침대가 뭐 그렇게 불편하다고 짜증을 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하도 허리가 아프다 하길래 나는 철판으로 된 간이침대인 줄 알았건만 괘씸함이 올라온다. 앉아서 핸드폰으로 노래를 듣는다. 심심하면 영이 무엇하나 슬쩍 쳐다본다. 조용히 핸드폰을 보던 영이 갑자기 이어폰을 뺀다. 왜 그러냐 물으니 더 이상 볼 게 없다 말하고 침대 높이를 조절한다. 그리고는 3초 만에 꺼지듯 잠에 든다. 영을 만나면 즐겁게 해 주겠다 다짐했는데, 생각보다 무기력한 모습에 당황한다. 심지어 잠을 잘 자다가도 갑자기 인상 쓰며 뒷 머리를 잡는다. 얕게 나오는 신음을 통해 무언가 잘 못 되었음을 느낀다. 불안한 마음에 전화를 들어 누이에게 연락한다.
“누나 엄마 원래 이랬어? 머리가 엄청 아픈가 봐, 그리고 잠도 완전 전원 꺼지듯이 자…”
원래 그랬다 대답한다. 자신도 병원에 있으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는다. 지금 상태로는 영이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이런 영을 두고 별다른 말 없이 간병을 바꾸자 한 누이가 살짝 탐탁지 않다. 머리가 많이 아픈지 온몸을 비틀며 구르는 영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옆으로 간다. 혹시나 머리를 부딪칠까 벽과 영의 머리 사이에 손을 가져다 댄다. 한참을 엄마 영 옆에 서있으니 간호사가 CT를 찍으러 내려가라며 커튼을 열어젖힌다. 영을 깨워 실내화에 발을 넣어주고 링거 폴대를 민다. 불안한 균형감각에 폴대를 잡으로 말하지만 영이 말을 듣지 않는다.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자 손을 가져다 올리니 그제야 폴대를 잡는다. 길을 안내해줘도 내 말이 안 들리는지 반응이 없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말해도 그냥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다. 좀비 같은 그녀의 모습에 마음이 심란해진다. 간신히 영상 의학원에 도착했고 의사를 따라 영이 CT실로 들어간다. 텅 비어 있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 영이 나오길 기다린다. 몇 분 지나자 문이 열리고 영이 감사합니다 하며 나온다. 터벅터벅 걸어오는 영을 잡는다.
“엄마 괜찮아?”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까보다는 나아진 것 같은 엄마 영의 상태에 한 손으로 부축하고 빨리 밥 먹으러 올라가자 말한다. 간이침대에 놓여있는 밥을 세팅한다. 뚜껑을 열고 엄마 영에게 숟가락을 쥐어준다. 밥 위에 반찬을 올려주며 맛있냐 물으니 먹을만하다 한다. 배가 고팠다 말하며 차근차근 밥과 반찬을 비워 나간다. 복스럽게 먹는 영을 보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엄마 밥 먹는 거 보니까 꿈만 같다”
살짝 미소를 보이는 엄마 영에게 어떤 반찬이 먹고 싶냐 물으며 젓가락을 움직인다. 순식간에 밥 한 공기를 뚝딱 먹었다. 입맛이 없어 밥을 잘 안 먹는다 말했던 누이의 말과는 정반대이다. 정수기에서 물을 한 잔 떠 영 앞에 가져와 약을 뜯는다. 시키는 대로 단숨에 약까지 다 먹은 엄마 영이 침대를 올리고 기대어 앉는다. 그릇 가져다 놓고 올 테니 여기 그대로 있어라 일러두고 병실을 나온다. 늦은 식사로 이미 밥차는 떠났고, 간호사들에게 물어 조그마한 선반에 그릇을 올려둔다. 다시 병실로 돌아가려 몸을 돌리는 순간 엘리베이터가 열리며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내린다.
“여기 김OO 환자 보호자분 어디 계세요?”
무슨 일인가 싶어 다급한 마음에 손을 들고 뛰어간다.
“네, 제가 보호잔데 무슨 일이시죠?”
“아 잠깐 얘기 가능하실까요?”
의사를 따라 간호사들이 모여있는 데스크로 향한다. 그 옆에 놓인 컴퓨터에 사진을 띄우고 의사가 마우스를 흔들며 한 부분을 가리킨다.
“여기 보시면 하얀 거 보이시죠? 지금 두통도 심하시고 열도 꽤 높으셔서 CT를 찍어 본 건데, 이게 없던 게 생긴 거거든요”
의사가 엄마 영이 쓰러져 처음으로 병원으로 왔을 때 찍었던 CT 사진을 화면에 띄운다. 두개골 그 안에 뇌가 보이고 절반 정도가 하얀 무언가로 덮여있다. 이 하얀 부분이 출혈이고 이를 잡기 위해 두개골을 절제한 것이다 말한다.
“그런데 지금 보시면 저번만큼은 아니지만 출혈이 또 나온 것 같아요. 상황을 봐야 알겠지만 지금은 출혈로 보여요”
당혹스러워 의사를 가만히 쳐다본다.
“그러니까… 뇌출혈이 다시 생긴 거라는 거죠?”
고개를 끄덕이는 의사가 시선을 모니터로 돌리고 계속 설명을 이어간다.
“지금 이 부분이 출혈이 계속 진행 중인지 아니면 멈춘 건지 모르는 상황이긴 한데 이 정도 진행됐으면 피가 많이 나온 거라… 지금은 의식이 있으시긴 한데 저번처럼 다시 위험한 상황으로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지금 당장 중환자실로 내려가서 집중적으로 케어 받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수술을 하지 못해 기운이 빠져서 무기력증이 걸린 것이 아니었다. 다시 머리가 출혈이 생겨서 힘이 빠진 것이라 생각하니 무언가에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해야 하면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 말하고 의사를 잡는다.
“그래도 지금은 의식도 있으시고 병원에서 바로 조치하면 괜찮으신 거죠?”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의사가 머리는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 말하며 일단 최선을 다해보겠다 한다. 출혈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혹시 어머니가 의식이 흐려지면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말한다. 최대한 감정을 추스르고 잘 부탁한다 말한다.
엄마 영이 앉아있는 병실 커튼을 열고 의사와 함께 엄마 영을 찾는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이 땡그래진 엄마 영에게 의사가 다가간다.
“어머니, 어머니가 열도 나시고 머리가 계속 아프셨잖아요. 저희가 알아보니까 머리에 문제가 생겼어요. 그리고 이게 그냥 넘길일이 아니고 자칫하면 처음 오셨을 때만큼 심각해질 수도 있어서 여기 계시는 건 보다는 중환자실에 내려가서 집중적으로 치료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희가 어머니 수술했던 사람들이거든요? 그때도 잘 잡았으니까 이번에도 괜찮으실 거예요”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는 엄마 영의 시선이 사선으로 바닥을 향해있다. 의사가 병실을 빠져나가고 간호사들이 침대를 옮길 준비를 한다. 약간 멍한 표정으로 상황을 파악하던 엄마 영이 침대를 내리라 말하며 눕는다. 그녀의 손을 잡은 채 침대 등받이 버튼을 누리고 최대한 감정을 억눌러 얘기한다.
“엄마, 제가 의사들한테 들어보니까 그냥 예방차원에서 내려가는 거래요. 거기는 삼십 분에 한 번씩 엄마 상태 확인하니까 혹시 모를 상황에 빠르게 대처하려고 그러는 거래요. 그리고 여기 병원이니까 절대 엄마를 그냥 내버려 두진 않을 거예요. 의사들이 원래 과장이 심하잖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고개를 끄덕이는 엄마 영의 눈가가 촉촉하다. 휴지로 눈물을 한 번 훔쳐주고 옆에 쭈그리고 앉는다. 잡고 있던 손을 천천히 살피니 오른쪽 팔에 시퍼런 멍과 주사자국이 수도 없이 흩뿌려져 있다. 참았던 눈물이 조금씩 새어 나온다. 절대 감정적으로 엄마 영을 자극하지 않으려 했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떨어진다. 뒤를 돌아 고개를 숙이고 옷소매로 급히 닦아낸다. 눈이 부신지 엄마 영이 불을 끄라 말한다. 조용히 천장을 응시하던 그녀가 자그마한 소리로 말한다.
“너무 힘들다. 그냥 그만하면 어떨까?”
다시 올라오는 감정을 누르고 최대한 목소리를 밝게 만들어 말한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다 왔어요. 지금 내려가는 건 큰일이 날까 봐 미리 예방하는 거예요. 그리고 엄마 봐요. 정신도 멀쩡하고 밥도 잘 먹었잖아요”
반응하지 않는 엄마 영을 바라본다. 졸린 듯 눈을 감아 버리고 이네 숨소리가 잔잔해진다.
색이 한층 짙은 간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침대를 끌고 온다.
“마스크를 쓰시고 아무것도 챙기지 말고 몸만 넘어오세요”
엄마 영이 몸을 일으켜 이동한다. 그녀의 귀에 마스크를 걸어주고 엘리베이터 앞에 멈춰 선다. 어디까지 따라가도 되냐 묻는 말에 간호사들이 중환자실은 외부인 출입 금지라 3층 중환자실 입구까지만 가능하다 말한다. 엘리베이터가 열린다. 잡고 있던 엄마 영의 손을 놓으며 너무 걱정하지 말고 금방 보자는 말을 전한다.
짐을 챙긴다. 2주 정도의 흔적이 남겨져있는 병실 물건들을 하나하나 가방에 넣는다. 가져온 가방에 도무지 다 들어가지 않아 간호사에게 봉투를 하나 얻어 간신히 다 담는다. 병원 입구에서 차를 대고 기다리고 있다는 아빠의 문자를 확인한다. 불이 다 꺼진 병원 로비를 지나치고 아빠에게 짐을 넘긴다.
“저는 중환자실 간호사 만나야 해서 다시 올라가야 돼요. 잠깐 기다리고 계세요”
중환자실 입구 앞에 놓여있는 호출 버튼을 누르자 무슨 일이냐 묻는다. 방금 중환자실 내려간 김OO 환자 보호자라 말하자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이 돌아온다. 중환자실 앞에 쭈그려 앉는다. 그렇게 10분, 15분, 20분이 지나자 부랴부랴 온몸에 방역복을 입은 간호사가 나온다. 따라오라는 말과 함께 중환자실 옆 상담실에 들어가 앉는다. 간단하게 중환자실에 대해 설명하고 엄마 영의 백신 접종 여부를 묻는다. 아직 못 맞았다 하자 차트 백신접종란에 미접종이라 적어 넣는다. 엄마 영이 중환자실에서 지내는 동안 필요한 물품목록을 종이를 찢어 적어준다.
“휴지나 물티슈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게 있으면 그거 가져오시면 되고, 없는 물품은 밑에 편의점 가서 사시면 돼요”
물건을 준비하고 중환자실 벨을 누른다. 이번에도 20분 동안 문 앞에서 서성인다. 왔다 갔다 하는 간호사들이 무슨 용무로 이렇게 오래 서 있냐 물으면 멋쩍게 웃으며 환자 보호자고 생활용품 전달하려 기다린다 말한다. 헐레벌떡 뛰어오는 간호사가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물건을 들고 사라진다.
병원 입구에 서 있는 차에 올라탄다. 늦은 시간 병원은 한적하다 못해 싸늘하다.
“잘 마무리했어? 엄마는 잘 들어갔고?”
고개를 끄덕이자 조용히 차가 출발한다. 때 맞춰 울리는 전화기에는 ‘누이’라 쓰여있다.
“어디야?”
“방금 병원 나와서 집으로 가고 있어”
“엄마는? 잘 내려갔어?”
“그냥... 간호사들이 침대에 태워서 데리고 갔어”
“너는 괜찮아?”
애써 막고 있던 감정이 뻥 하고 터지고 이를 토해내듯 쏟아낸다.
“엄마가 아파서 그런 거였어, 하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몸이 아픈 거였어. 그리고 엄마 손에 바늘 자국하고 멍이 엄청 많아... 엄마가 그만하고 싶대. 원래 아픈 사람이 가는 게 병원이긴 하지만 병원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아프면 정말 너무 힘든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없고 그냥 지켜보기만 하려니까 미치겠어”
말을 더듬으며 가쁜 숨을 내쉬는 나에게 아빠가 휴지를 찾아 건네준다.
“엄마, 밥 엄청 잘 먹더라. 한 그릇 다 먹었어. 배고팠다고 하더라고. 진짜 꿈만 같았는데, 다시 이러는 게 어딨어 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여야 하고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끌려가는 듯한 이 상황이 너무도 싫었다. 내 무력함에 부딪히는 것도 이제는 진절머리가 나기 시작했고, 간신히 마주한 엄마 영과의 시간도 고작 4~5시간 남짓이었다. 다시 내 손에 들려있는 엄마 영의 핸드폰을 보며 소리 내어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