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일찍 일어나 병원 갈 준비를 한다. 어제 만들어 놓았던 반찬과 계란말이를 데우고 엄마 영과 함께 간단히 아침을 먹는다.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대형 재활병원으로 이동한다. 점점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건물에는 재활전문병원이라 적혀있고 한적한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엄마 영의 팔 한쪽을 잡고 부축하고 천천히 걸어간다. 병원 입구 자동문이 열리며 양복을 입은 중년 남성이 앞길을 막는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오늘 병원 입원하기 하기로 했는데…”
“아, 그러면 열 체크 한 번 해주시고, 여기 시간하고 성함 그리고 전화번호 기재해주시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눈앞에 보이는 ‘수납, 접수’로 다가간다. 아빠가 환자의 이름과 여러 가지 개인정보를 작성한다. 텅텅 비어있는 의자에 영을 앉히고 그 옆에 쭈그려 앉는다.
“엄마 병원 엄청 크다. 인터넷을 찾아보니까 여기가 좋은 재활 병원이라 하던데 크긴 하네”
주변을 둘러보며 영도 고개를 끄덕인다.
가져온 짐을 내려놓고 영의 환복을 돕는다. 말을 듣지 않는 오른손을 잡고 천천히 옷을 빼낸다. 오른손을 움직일 때마다 입 소리를 내며 아프다 말하는 엄마 영에게 조금만 참으라 이른다. 가까스로 옷을 다 입으니 한 치수 큰 옷이 영의 체구를 더 작고 야위게 만들었다. 침대로 올라가 자리를 잡는다. 불편한지 뒤척이다 침대를 올려달라는 요청에 주변을 살핀다.
“이거 어떻게 올리는지 모르겠네, 전동이 아닌가?”
한참을 돌아보다 안 되겠다 싶어 간호사를 찾는다.
“이게 조금 구식이라 이쪽에서 손잡이를 빼서 돌리셔야 해요. 오른쪽으로 돌리면 올라가고 왼쪽으로 돌리면 이렇게 내려가요”
조금 당황스럽지만 내색하지 않고 고맙다 인사한다. 아직 수동 침대를 사용하는 병원도 있구나 생각한다. 십 년 전에 보았던 낯익은 생김새와 불편함에 시대가 어느 땐데 너무하다 싶다. 체념한 채 열심히 손잡이를 돌리자 되었다는 듯 영이 침대를 가볍게 친다. 환자의 안전을 위해 항시 침대 난간을 올려놓으라는 문구를 확인하고 난간을 조심스럽게 올린다. 빤히 쳐다보는 영에게 혹시 모르니까 올려놓는 것이다 말하며 안심하라는 듯 웃어 보인다. 한 움큼 챙겨 온 짐을 하나씩 푼다. 짐을 하나하나 꺼내며 어수선하던 마음을 정리한다. 잘해야 한다는 걱정과 불안함에 잠을 설쳤던 어제에 비하면 생각보다 괜찮다 생각하며 옷을 개킨다. 대충 정리된 주변을 살피며 파란색 얇은 가죽 재질로 덮인 간이침대에 앉아 잠시 멍을 때린다. 그렇게 몇 분. 머릿속에 잠시 잊고 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흰 바탕에 병원 이름을 빼곡히 적혀있는 옷과 수동 침대, 철판처럼 차갑고 딱딱한 간이침대가 옛 생각을 하게 한다.
"엄마 여기 어디예요?"
"여기 병원이야, 평소에 오던 곳보다 크지?"
엄마 영의 손을 꼭 붙잡는다.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살짝 움츠러든다. 기분 나쁜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찌른다. 띄엄띄엄 사람들이 보인다. 내 체구와 비슷한 크기에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모두 같은 옷을 입고 무언가 하나씩 끌고 다닌다. 엘리베이터 네 대가 눈앞에 나타난다. 엄마 영이 버튼을 누르자 문이 스르륵 열린다. 하나씩 올라가는 숫자가 3에서 멈춘다. 넓고 긴 복도가 펼쳐지고, 한 줄로 쭉 늘어선 불빛을 따라 걷는다. 오른쪽 구석에 숨어있던 커다란 데스크가 나타나고, 바삐 움직이는 분홍 옷의 사람들이 다가온다.
“엄마 올 때까지 잠깐 여기 앉아 있어”
영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몇 마디 대화가 왔다 간 후 머리를 묶은 간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 나온다.
"안녕? 우리 잠깐 이쪽으로 와 볼까?"
엄마 영의 눈치를 살핀다. 가 보라는 듯 툭툭 치는 영의 손길에 천천히 걸음을 뗀다. 눈앞에 보이는 의자를 엄마 영이 손수 빼준다. 무엇인가를 분주하게 준비하는 간호사를 따라 눈이 바삐 움직인다. 손에 들린 고무줄과 주사기를 보고 앞으로 처할 상황을 짐작한다.
"오늘 주사 맞을 거예요. 조금 따끔할 수 있으니까 다 맞으면 사탕 줄게요"
망설임 없이 손을 내민다. 씩씩하다는 말에 살짝 미소를 띠운다. 고개를 영 쪽을으로 돌려 옷 속으로 파고든다. 손등을 뚫고 바늘이 들어가는 느낌이 난다. 평소보다 아파 흠칫 놀라지만 놀라지 않은 척 최대한 담담히 기다린다.
"주사가 잘 안 돼서 한 번 더 놓을게요"
무언가 손등에서 쑥 빠지는 느낌이 난다. 그리고 방금 느낀 아픔이 다시 되풀이된다.
"미안해요, 이게 잘 안 들어가네… 다시 한번 할게요"
손등에 생긴 두 개의 자국을 꾹 누른다. 다시 한번 손을 책상에 올린 채 영의 품에 안겨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괜찮다는 듯 다독이는 영의 손을 꼭 붙잡는다.
"다 됐어요. 아팠을 텐데 우리 친구 잘 참네"
손등에 꽂혀있는 바늘을 보고 엄마 영을 쳐다본다.
"엄마, 이거 안 뺐어요"
"어, 그거 여기 있는 동안 하고 있어야 된대 “
간호사를 따라 다시 복도로 나온다. 이제 집에 가냐 묻자 엄마 영이 시선을 맞추려 자세를 낮춘다.
”오늘 너무 늦어서 엄마랑 같이 자고 갈 거야 “
살짝 표정을 찡그리지만 엄마 영이 같이 있을 거라는 말에 알겠다 고개를 끄덕인다. 다시 복도 중앙에 놓인 커다란 데스크로 향한다. 엄마 영의 손에 옷가지들이 들려이고, 따라오라는 간호사의 손짓에 또다시 자리를 옮긴다. 몇 걸음 안 가서 멈춰 서고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간호사의 뒤를 쫓는다. 어둑어둑한 방 안에 사람들이 보인다. 하얀 연기가 침대 머리맡에서 뿜어져 나오고, 자그마한 불이 침대에 누운 사람들의 얼굴을 비추고 있다. 엄마 영의 옷자락을 세게 움켜쥔다. 비어있는 침대 한 곳을 가리키며 간호사가 설명한다.
“여기 사용하시면 돼요. 궁금하신 거나 불편하신 거 있으시면 나오셔서 물어보시면 되고, 화장실은 저기 앞에 보이는 곳이에요”
간호사가 떠나고 영이 가방을 내려놓는다. 멀뚱이 서 있는 나를 부르고 침대에 앉힌다.
“오늘 여기서 자면 돼, 옷 갈아입어야 하니까 옷 벗어 엄마가 잡고 있을게”
“여기서요? 사람들 있는데…”
“괜찮아, 구석에서 입으면 돼 엄마가 가려줄게”
내키지는 않지만 차근차근 옷을 벗는다. 조금 헐렁한 옷의 단추를 엄마 영이 잠가준다. 주변을 둘러본다. 하나밖에 없는 침대에 이상함을 느낀다.
“근데 엄마는 어디서 자요?”
영이 침대 밑에서 기다란 무언가를 꺼낸다. 바닥에 딱 달라붙어 바퀴로 요리조리 움직이는 요상한 물건과 마주한다.
“엄마는 이 밑에 여기서 잘 거야”
침대 밑에서 엄마 영이 침대도 아닌 그렇다고 발판도 아닌 이상한 판자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거기서 잘 수 있냐 묻자 영이 걱정하지 말라 답한다.
“오늘 자면 내일은 집 가요?”
영이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고민한다.
“여기 며칠 있어야 할 것 같아, 오늘은 엄마랑 자고 내일 아빠 오신다고 했으니까 아빠랑 있어 알겠지?”
“며칠이 나요? 그리고 아빠요?”
“그건 엄마도 잘 몰라, 내일 아빠 올 때 맛있는 거 사 오라고 할게”
어색한 환경에 잠이 오지 않는다. 가슴팍에 장미 그림이 그려진 후드 집업을 입고 바닥에 붙어 누워있는 엄마 영을 내려다본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 눕혔던 몸을 일으켜 앉아 침대 난간 사이로 손을 넣는다.
“엄마가 토닥토닥해줄게, 얼른 자”
심장 근처 어딘가에 손을 얹고 천천히 다독인다. 무서웠던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지며 하품이 나오기 시작한다. 아직 잠에 들지 않았는데 손을 빼는 영을 바라보자 무안하다는 듯 다시 손을 가슴 위에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