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입원하고 세 번에 밤을 보냈다. 오늘도 어김없이 주변 소음에 눈을 뜬다. 이른 아침부터 분주함이 느껴진다. 평소보다 잦은 간호사들의 방문, 하루에 한 번 짧게 얼굴을 비추고 사라지는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오늘은 계속해서 내 보호자를 찾는다. 어제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하여 배가 꼬르륵거린다. 엄마 영을 붙잡고 배고프다 말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금식이라 안된다는 말 뿐이다. 언제쯤 밥을 먹을 수 있냐 묻자 조금 있다 검사하고 먹자고 한다. 평소와는 다르게 무언가 불안해 보인다. 시간에 맞춰 아침 배식 카트가 요란하게 들어오고, 그 뒤를 따라 간호사가 다시 나타난다.
“지금 가시면 될 것 같아요”
내 침대와 똑같이 생긴 침대 하나 들어오고 간호사가 이쪽으로 옮겨 누워라 말한다. 베고 있던 베개와 이불을 챙기려 하자 안된다는 듯 손을 저으며 이건 놓고 가자 타이른다. 자리를 잡고 눕자 출발한다는 말과 함께 천천히 침대가 움직인다.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 앞에 멈춰 선다. 뒤따라오는 엄마 영을 보며 어디 가는 것이냐 묻지만 대답 없이 내 손을 잡는다. 복도 가장자리에 침대를 고정시킨다. 그냥 잘 누워있으면 된다 말하며 잘 갔다 오라는 엄마 영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어둑어둑한 방에 들어서고 커다란 스탠드의 여러 개의 구멍에서 빛이 쏟아진다. 초록색 옷을 입고 마스크까지 쓴 사람 여럿이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안녕? 네가 도롱이구나. 몇 살이야?”
손을 이용하여 여섯 살이라 대답한다.
“오늘 선생님들하고 잠깐 있다가 금방 엄마한테 갈 거야. 그냥 누워있으면 되는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러면 숫자 1부터 10까지 천천히 한번 세볼까?”
무리 없이 숫자를 세어 나간다. 살짝 졸려오지만 끝까지 세어보려 안간힘을 쓴다. 그렇게 숫자 6에서 7 사이쯤 기억이 멈췄다.
환한 빛과 함께 엄마 영의 얼굴이 보인다. 흐릿하게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눈이 네 개 입이 두 개였다. 엄마 영의 목소리가 들리며 조금씩 주변 소음도 들려온다. 바로 옆에 닌텐도를 들고 게임하는 형과 아빠도 보인다. 분명 해가 쨍한 아침이었는데 창문 밖이 새까매져 있어 커튼을 친 것인가 싶어 한참 동안 밖을 바라본다. 주변을 살피고 턱 밑을 바라보자 가슴팍에 커다란 상처와 함께 스테이플러 심 같은 철사들이 수십 개가 박혀있다. 피딱지가 보이고 붕대 같은 것이 몸 이곳저곳을 감싸고 있다. 마취기운이 사라지자 또렷이 보이는 엄마 영의 얼굴이 많이 부어있다. 괜찮냐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옆에 놓여있는 게임기를 보여주며 아빠가 말한다.
“도롱이 너무 심심한 것 같아서 아빠가 사 왔어. 닌텐도 알지? 이 칩에 게임 30개도 넘게 있더라”
정신이 혼미하여 헛것이 들리나 싶지만 눈앞에 있는 닌텐도를 만져보니 실감이 난다. 열심히 별의 커비를 하고 있는 형이 화면을 내쪽으로 비추며 열심히 버튼을 눌러댄다. 평소 같았으면 게임기는 꿈도 못 꿨을 것인데, 영화도 공부를 위해 무조건 영어로 틀어놓고 보라던 엄마 영이 게임기를 아무 말도 없이 보고만 있다. 그렇게 몇 분 있다 간호사와 의사 무리가 구두 소리를 내며 내 앞에 나타난다.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엄마 영의 표정이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괜찮을 것이라 짐작한다.
정신이 또렷해질수록 상처부위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커져간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니 명치부터 목 밑 가슴팍까지 길게 칼자국이 생겼다. 그 주변에 붕대와 엉겨 붙은 철심들이 보인다. 끔찍하면서도 내 몸에 이런 게 생겨났다는 게 놀라워 살짝 만져본다. 손대지 말라는 엄마 영의 목소리에 재빨리 손을 내린다. 머리 위에 달린 물주머니 말고도 다른 철통 하나가 내 몸과 연결되어 있다. 옆구리에 고무로 되어있는 관이 껴져 있고 이곳으로 무언가가 빠져나가고 있다. 간지럽고 불편하여 빼면 안 되냐 묻지만 엄마 영은 단호하게 안된다 말한다. 수술 이후로 매일 아침 엑스레이를 찍어야 한다. 복도 끝에 있는 엑스레이 촬영실이 너무도 멀게 느껴진다. 평소 같았으면 잽싸게 걸아갔을 거리지만 무거운 철통과 링거대까지 끌고 가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걸을 때마다 느껴지는 통증에 심술이 났다.
“엄마, 못 걸어가겠어요. 휠체어 타고 가면 안 돼요?”
“안돼, 의사 선생님이 이제 걷는 연습 해야 한다고 했어. 얼른 걸어”
가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돌아올 것까지 생각하니 막막하여 쓰라린 옆구리에 손을 가져다 댄다. 통을 들고 옆을 따라오는 엄마를 부여잡고 간신히 한발 한발 조금씩 떼어낸다.
생애 처음으로 갈비뼈가 보이기 시작했다. 입맛이 있어도 먹기 힘든 병원밥이 지금은 곤욕 그 자체다. 조금이라도 먹여보려 하는 엄마 영과 실랑이를 한다. 한 숟갈만 더 먹어보라 말하는 말에 간신히 밀어 넣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음 수저에 밥과 반찬이 올려져 있다. 음식을 입에 물고 더는 못 먹겠다 말하자 먹어야 났는다는 말과 함께 매서운 눈초리가 나를 노려본다.
그렇게 두 밤에서 세 밤 정도가 지나자 이제 옆구리에 있는 통을 뺄 거라 엄마 영이 말한다. 드디어 이 불편한 것을 떼어낸다는 생각에 한시라도 빨리 하자 보챈다. 기신기신 몸을 이끌고 다시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끌려가듯 들어간다. 그리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소리 내며 운다. 옆구리가 떨어져 나갈 듯한 고통에 낮은 신음과 눈물이 하염없이 나왔다.
나중에서야 아빠를 통해 전해 들은 말로는 상흔으로 알 수 없는 분비물과 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다.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기억과 정신없이 들려왔던 이상한 기계음, 석션 소리처럼 무언가를 빨아드리는 소리, 그리고 그 안에서 엄마 영에게 안겨 소리를 질렀던 상황이 단편적으로 기억난다. 병원에서의 모든 일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생생히 기억나지만 중환자실에서의 기억과 옆구리에서 호스를 제거하던 기억은 고통스러웠다는 느낌과 함께 사진처럼 몇 개에 장면만 띄엄띄엄 기억난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 내가 지워버린 것인지 아니면 그때의 내가 감당할 수 없어 끊어버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집에 돌아온 후로도 몇 년간 지속적으로 꿈속에 나와 나를 괴롭혔다. 특히 중환자실에서의 기억은 꿈과 현실이 헷갈린 정도로 복잡하게 꼬여있다. 갑작스럽게 사라진 엄마와 보호자 없이 하루를 보내야 한다고 말했던 간호사. 그 사이에서 무서움에 떨며 엄마 영을 열심히 찾았다. 별다른 말도 없이 갑자기 병실이 옮겨져 있고 갖가지 이상한 검사들을 불안한 상태로 혼자 해야 했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았다. 침대를 잘못 조작하여 몸이 끼어 애타게 도와달라 소리쳤던 모습도 짧게나마 생각난다.
수술을 받고 나서야 내가 어디가 아팠는지 알 수 있었다. 남들보다 혈관이 많이 좁게 태어났다. 성장하면서 좋아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심장에 가져다 댄 청진기에서 잡음이 났었고, 내가 여섯 살이 되던 해에 엄마 영의 뭔지 모를 기분나쁜 직감에 병원을 찾았다 했다. 그렇게 찾아간 의사가 전해 준 말은 대학병원을 가셔야 할 것 같다 였고, 서울로 찾아간 대학병원에서는 혈관이 너무 좁아 이 상태라면 분명 압을 견디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 얘기하며 이와 비슷한 사례를 들먹였고 한다. 그렇게 나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병원에 입원하여 가슴에 20CM 남짓한 흉이 생겼다.
일주일 정도 넘게 병원에서 있자 이제는 조금씩 퇴원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상처 드레싱과 철심을 제거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병원에 방문해야 하지만, 병원을 나갈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날아갈 듯 기뻤다. 내일이나 혹은 내일모레면 퇴원을 해도 괜찮겠다 하는 의사 선생님에 말에 좁은 침대에서 옆돌기를 한다. 상처가 덧날까 싶은 엄마 영의 제제가 바로 들어오지만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다. 마음이 편해서 일까 오랜만에 숙면을 취하고 일어난다. 아침 햇빛을 쬐며 두 손을 모은다.
“제발 오늘 퇴원하게 해 주세요 제발”
아침 회진 시간에 맞춰 간호사들과 의사들을 데리고 온 조금 사납게 생긴 의사 선생님이 오늘 퇴원하자 말한다.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른다. 주변에서는 퇴원 축하한다는 말과 건강하게 지내라는 덕담이 나온다. 조심스럽게 짐을 싸고 옷을 갈아입는다. 병원 밥을 먹고 집에 갈 거냐 묻는 엄마 영에게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다 신신당부한다. 서류 처리하느라 바쁜 아빠를 뒤로하고 엄마 영과 병원 편의점으로 향한다. 간단히 마실 것만 사러 들어왔지만 고소한 참기름 냄새에 홀리 듯 따라간다. 매대에 놓은 김밥을 보고 엄마 영을 부른다.
“엄마 저거 먹고 싶어요”
“저거 몸에 안 좋아”
그녀의 말에도 꿈쩍 않고 서 있자 마지못해 엄마 영이 김밥을 하나 잡는다. 마실 것도 사라는 말에 우유가 놓인 곳으로 간다. 엄마 영의 눈치를 한 번 살피고 흰 우유 옆 초콜릿 우유를 잡는다.
“우유도 그거 먹게?”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한 번 쳐다보고 엄마 영이 계산대로 향한다. 집으로 향하는 차에 올라타 김밥을 열어 먹는다. 살짝 차갑지만 입에서 느껴지는 햄 맛과 고소함에 흥분하여 허겁지겁 밀어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