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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지 Oct 30. 2022

외줄 타기

  엄마 영의 부러진 안경을 들고 집을 나선다. 쓰러지기 삼 일 전 안경테에 나사가 빠져 나에게 고쳐가지고 오라고 했던 부탁이 떠올랐다. 그녀가 다시 이 안경을 썼으면 하는 바람으로 안경점을 찾는다. 영이 일어나면 ‘내가 엄마가 부탁한 거 해왔다’ 말하며 쓰여줄 순간을 생각한다. 엄마 영의 눈은 어느새부턴가 노안이 와 가까운 것들을 조금씩 흩뜨려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 영은 ‘엄마 안 보여’를 외침과 동시에 손을 까닥거리며 안경을 가져오라 부탁하였다. 가끔은 자신의 노안에 놀라며, 벌써 눈이 안 좋아졌다 한탄하였다. 그런 그녀를 보며 빨리 병원 가보라는 말 왜 안 들었냐 따져 묻곤 했었고, 그럴 때마다 엄마 영은 네가 뭘 모른다는 듯한 눈빛으로 “노안은 그냥 가지고 살아야 하는 거야. 나이 먹은 걸 어쩌냐” 하며 받아쳤다.

 눈이 성치 않아 사는 안경, 이왕 사야 하는  기분이라도 좋게 조금 튀는 색으로 사고 싶어 했다. 그렇게   개의 안경을 구매하였 영의 선택은 파란색 하나, 붉은색 하나였다. 멀리 있는   때는  끝에 걸쳐 놓으며 항상 손이 닿는 곳에 안경을 두었다. 그랬던 그녀의 안경이 식탁에 덩그러니 놓여 있으니 괜히 울적해진다. 하루빨리  주인에게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에 안경집에 넣어 가져  준비를 한다.

 팬데믹 상황이 아니었으면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중환자실 면회가 가능했을 것인데, 현실은 아침, 저녁으로 간호사나 의사와 통화하는 게 전부다. 구체적인 환자의 상태는 주치의에게만 전해 들을 수 있기에 아침 회진시간이 유일하게 그녀의 상황을 정확하게 들을 수 있는 시간이다. 주말에는 급한 일이 있지 않는 이상 연락이 없다. 소식이 없는 게 현재로선 최선이긴 하지만 뭔지 모를 먹먹함이 가시지 않는다. 집안 곳곳에 남겨져 있는 그녀의 물건들을 보며 고개를 젓는다.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더 무너질까 두려움이 커진다.


 주말이 지나고 온 연락은 ‘이제 약을 조금씩 줄여가면서 그녀를 깨워 보겠다’였다. 눈을 질끈 감고 제발 그녀가 일어나길 간절히 빈다. 공허한 마음을 달래려 다시 인터넷을 뒤진다. 그리고 마주한 뇌혈관 질환 소식들에 생각이 깊어진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미동 없이 오래 누워있으면 욕창이 생긴다 였다. 나중에는 이게 문제가 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생각지 못한 골머리를 앓는다 하여 걱정이 앞선다. 잘 관리해주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어 전화로 잘 부탁드린다는 말만 계속 늘어놓는다.

 뇌혈관은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고 급격히 악화될 수도 있다 말한다.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분야라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 뇌라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기적을 경험하여 죽다 살아난 사람의 후기도 꽤 많아 그녀가 일어날 거란 믿음에 힘을 실어준다. 뇌출혈은 재발 위험이 있어 계속 긴장해야 하고, 재활 시간도 비교적 오래 걸린다. 다친 부분의 기능을 주변 뇌세포에서 도와주긴 하지만, 이 크기 또한 사람마다 다 다르기에 얼마나 회복될지 장담할 수 없다 한다. 그래서인가 재활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포기하고 우울증에 걸리는 환자의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앞으로 마주할 미래가 두렵다. 내가 감당할 수 없으면 어쩌나 싶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읽으니 잡생각과 필요 없는 걱정이 늘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나를 기억하지 못할까 걱정된다. 함께 했던 시간이 오로지 혼자만의 추억거리가 된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해진다. 제발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이겨낼 수 있기를, 또 그럴 기회가 오길 간절히 기도한다.


 며칠 후 그녀가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자꾸 잠을 자려 하지만, 눈도 뜨고 손가락도 움직인다 말한다. 정신이 돌아온 거냐 묻는 말에 이번에도 두루뭉술하게 대답한다. 전화를 끊고 가족 네 명 모두 생각에 잠긴다. 그녀가 조금씩 기운을 차리는 것 같아 천만다행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어 실감 나진 않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 순진하게 믿기로 한다. 의사들이 말했던 시기보다도 비교적 빨리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약간 놓인다. 눈 뜨는 것조차 장담할 수 없다 말했던 의사를 생각하면 지금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은 것이라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녀의 사진을 보며 다시 함께할 날들에 대한 희망을 조금씩 키워간다.

 여느 때와 같이 잡생각들과 불필요한 걱정들이 머릿속을 뒤집어 놓는다. 필요 없는 걱정까지 사서 해왔던 성격인지라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불안함 솟구친다. 한참을 방 책상에 앉아있었다. 일어나서 한일이라곤 밥 먹고 한숨 쉰 것 밖에 없는데 벌써 하늘이 벌겋게 물들어 있다. 붉은 하늘을 보며 감탄했을 영을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다시 불편해진다. 잘 있는 것인지 언제쯤 중환자실에서 내려올지, 영의 모습은 어떠한가 궁금하고 또 걱정된다. 그냥 죽치고 시간을 보내도 괜찮은지 의심되기도 한다. 기다리면 호전되는 것일까. 쓰러지고 얼굴 한 번 못 보고 지냈다 생각하니 짜증이 나는 내 마음도 이해가 간다. 빨리 내일이 되어 좋은 소식이 들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침대에 눕는다. 눈을 감고 애써 잠들려 발버둥 치며 최대한 마음을 얌전하게 먹는다. 암막 커튼까지 치고 차분히 양을 한 마리씩 세어 내려간다. 그리고 어디선가 익숙한 벨소리가 들린다.

“네, 여보세요?”

“네, 김0영 환자 보호자 되세요? 다름이 아니라 김0영 환자분 내일 일반병실로 내려보내자고 하셔서 연락드렸어요. 혹시 누가 간병인은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아 지금 말씀드려야 되나요?”

“아, 그럴 필요는 없는데. 간병인분 코로나 검사받으셔야 해서 내일 아침까지는 알려 주셔야 해요”

“그러면 내일 아침에 정해서 말씀드릴게요”

거실과 방을 잇는 좁은 복도에 모여 가족회의가 열였다. 누가 병원에 들어갈지 서로 논의한다. 각자의 사정을 고려해 본 결과 두 명을 추려졌고 눈치 보던 누이가 입을 연다.

“내가 들어가도 돼? 나 엄마 보고 싶고 간병도 하고 싶어”

별다른 이견 없이 누이가 병원으로 들어가기로 정해졌다. 처음에는 간병인이 해야 할 일이 많을 거라 동성인 누이가 엄마 영한테도 더 좋을 수 있겠다는 조언에 모두 동의하였다. 중환자실에서 내려와 일반병실에 있어도 될 정도면 많이 호전된 것이겠지 생각한다. 다행이다 싶으면서 한편으로 신경이 쓰인다. 쓸데없는 잡생각과 걱정이 현실이 되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밤을 길게 만든다.

 아침에 일어나 누이의 짐 챙기는 것을 도운다. 간병할 때 필요할만한 물건을 차근차근 챙겨놓는다. 물티슈, 휴지, 칫솔, 세면용품 등. 일주일 정도 병원에서 영과 함께 지낼 것을 고려하니 짐이 점점 불어난다. 베개부터 담요까지 일단 다 챙긴다. 표정이 굳은 누이에게 다가간다. 자신이 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말하며 간병을 처음 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한다. 그럼에도 영의 돌봄 노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좋다고 말하는 누이에 손을 조심히 잡아본다. 내가 경험했던 병원 이야기를 하며 손과 발이 평소보다 조금 바쁘면 다 할 수 있는 일이라 안심시킨다. 병원에서의 시간이 무료할 것을 생각해 놀거리도 많이 챙긴다. 노트북부터 책, 아이패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들을 한 움큼 준비한다. 누이가 자신의 물건을 챙기는 동안 영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모은다. 그녀의 핸드폰과 이어폰, 충전기, 돋보기, 피부질환 연고. 영의 방을 누비며 그녀가 필요로 할 만한 것들을 가방 속에 넣는다. 건조할 수 있으니 로션이나 수분크림을 틈틈이 잘 발라주라 이르며 부위별로 챙긴다.

 오후 5시쯤 코로나 검사 양성 결과 문자가 누이에게 도착하고 떠날 준비를 한다. 가방을 어깨에 들쳐 메고 양손으로 종이백을 잡는다. “다 들 수 있겠어?”라 묻는 말엔 문제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짐을 차 트렁크에 옮긴다. 오늘따라 차가 더 묵직하게 느껴진다. 매일 영의 손길이 닿던 것이 열흘 넘게 방치되어 있어서일까 차 안 냉기가 괜히 더 차갑게 느껴진다.

 도로가 차들로 꽉꽉 차 있다. 언제쯤 도착할 수 있냐 묻는 병원의 전화가 세 통쯤 걸려 온 후에 간신히 병원 입구에 다다랐다. 문 앞을 지키는 보안직원과 두 번 정도 기싸움을 벌인다. 마음 같아서는 병원에 들어가서 그녀의 얼굴 한 번 보고 나오고 싶지만. 마스크와 페이스 가드까지 한 직원들의 눈총에 문 앞에서 누이의 뒷모습만 바라본다. 혹시 몰라 잠시 자리를 지킨다. 병원에 남아있어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확신이 생기고, 왔던 길로 다시 향한다. 엄마 만나면 영상통화 꼭 해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고 했음을 상기하며, 돌아가는 차 안에서 전화기를 꼭 붙잡는다. 집에 도착하여 대충 씻고 방으로 들어간다. 언제 울릴지 모르는 전화를 눈에 보이는 곳에 올려놓고 앉아 멍 때린다. 한 시간 두 시간 빠르게 시간이 흐른다. 생각보다 늦게 오는 연락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발을 구른다. 엄마랑 할 얘기가 많아서 누이가 깜빡한 것이길 바라며 집을 천천히 돌아다닌다. 그렇게 다시 한 시간쯤 지나자 전화가 울린다. 선명히 적혀있는 ‘엄니’라는 문구에 놀라 전화를 받는다.

“엄마? 엄마예요?”

 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진정하라 말하는 그녀의 말투가 생각보다 밝아 안심한다. 엄마 만났다고 말하며 바꿔줄까 묻는 그녀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부탁한다.

“엄마? 엄마 저 지동이에요”

힘없고 쉰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 지동아 보고 싶어”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다리에 힘이 풀린다. 그녀가 나를 기억해주어서 너무 고맙고 미안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죄송하는 말만 반복한다. 전화를 바꿔 받은 누이가 그녀의 말을 전달한다.

“엄마가 미안해하지 말래. 뭐가 미안하녜”

진심으로 바라고 듣고 싶었던 말 한마디에 소리 내어 통곡한다. 감사함과 죄책감이 섞여 폭발한다. 열흘 넘게 괴롭혔던 걱정들이 씻기듯 내려간다.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졌음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영상통화로 바꿔 줄 수 있냐 묻는 말에 누이가 영에게 묻는다.

“엄마 영상 통화할까?”

 자신의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주기 싫은 것인지 망설이며 싫다 말한다. 뭐 어떻냐 엄마 얼굴 한 번만 보고 싶다 생떼 부리자 영상통화로 전화가 다시 걸려온다. 안경을 쓰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나타난다. 머리에 붕대를 둘둘 감고 있는 영을 보니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약간 수척해진 모습과 초점 없는 눈동자에 눈을 맞춘다.

“엄마가 안경 고쳐줘서 고맙대”

다시 한번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엄마, 다 기억나요? 제가 고쳐서 가지고 왔어요. 엄마가 고쳐달라고 부탁했었잖아요”

이번에는 분명히 기쁨에 눈물이었다. 그녀가 나를 기억하고 있고, 나와 함께했던 일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눈물을 훔치고 약간 멍해 보이는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살핀다. 벌겋게 달아오른 내 얼굴을 보고 그녀가 미소를 띤다. 그리고 작고 얕은 소리가 들린다.

“엄마가 너 못생겼대”

변함없는 영의 모습에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다. 그녀의 말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다 엄마 닮아서 못생긴 것이다 반박한다. 앞으로 이 못난 얼굴 계속 보면서 살아야 할 거다 말하며, 엄마가 다시 내 얼굴 가지고 뭐라고 해줘서 너무 좋다 울먹인다. 옆에 있는 형과 아빠가 나를 밀어내고 한 마디씩 거든다. 보고 싶었다. 다행이다. 아내 잃어버릴 뻔했다 등. 형식적이지만 떨리는 목소리가 그들의 마음을 더욱 선명히 전달한다. 촉촉해진 눈가와는 다르게 생각보다 안정적인 엄마 영의 어투가 인상적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곤하다는 듯 손을 흔들며 전화를 끊으라는 말과 함께 화면이 꺼진다. 누이에게 엄마 잘 부탁하고 고맙다 전하며 통화를 끊는다. 이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전하려 핸드폰을 다시 잡는다. 함께 마음 써 주던 친구, 사촌들에게 번호를 찾아 통화기록을 뒤진다.

“엄마… 살았어, 엄마가 막 웃으면서 안경 고쳐준 것도 고맙다고 막 그랬어”

 꺽꺽대는 내 목소리에 또 무슨 일이 생겼나 긴장했다 성을 내곤 정말 다행이라 답한다. 그녀와의 시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앰뷸런스를 빨리 부른 것도 그녀가 정신을 잃지 않고 병원에 간 것 모두 호재인 것 같아 하늘이 도왔나 싶다. 그녀의 강인함에 다시 울컥한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 다 되어서 밥을 먹는다. 최근 열흘 동안 먹은 밥 중 그 어느 때보다 잘 넘어간다. 잘 먹고 잘 버텨서 영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입맛을 돋운다.

 이제는 병원의 전화를 기다릴 필요도 없고, 그녀의 상태를 묻는 것이 수월 해졌다. 누이에게 전화 걸어 엄마 잘 있냐, 밥은 먹었냐 물을 수 있는 게 하나의 행복이 되었다. 엄마 영의 마음이 내켜야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이마저도 매번 새롭다. 잘 주무시고 사랑한다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짐에 감사함을 느낀다. 가끔씩은 그녀에게 애정표현을 요구하기도 한다. 귀찮다는 듯 넘어가는 게 대부분이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내 마음을 전한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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