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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지 Oct 30. 2022

폭풍전야

 무더운 여름 8,  여섯 번째  늦은 오전. 오랜만에 집에 누이가 왔다. “ 왔다 떠드는 누이를 엄마 영이 웃으며 반긴다. 누이의 배고프다는 말과 동시에 점심 메뉴를 정한다. 양식을 먹고 싶다는 말에 얼마  영화 모임을 했던 식당이 화두에 오른다. 너희가 좋으면  가도 좋다 하자 누이도 브런치가 좋다 한다.

 미적거리던 몸을 일으켜 옷을 갈아입는다. 하늘하늘한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엄마 영이 나온다. 빈손으로 쫄래쫄래 걸어오는  명을 끌고 운전대를 잡는다. 15 정도 지나자 눈앞에 식당이 보인다.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판을 연다. 사정없이 메뉴를 넘기던 누이가 입을 뗀다.

“엄마 여기 너무 비싼데?”

“야, 이 정도는 사줄 수 있어 먹고 싶은 거 다 먹어, 다 시켜줄게. 이런 거 먹으려고 돈 버는 거야.”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각자 원하는 메뉴를 잔뜩 고른다. 음료는 어떤 것으로 하시겠냐 묻는 말에 잠시 고민하다 2인당 하나씩 나눠 먹기로 한다. 주문이 끝나고 각자 핸드폰을 보는 형제들을 엄마 영이 번갈아가며 한참 돌아본다.

“세 명 이서 이렇게 쪼르륵 앉아 있니까 진짜 오진다. 옛날에 너희 할아버지가 그랬었는데, 그때는 엄청 듣기 싫어했었거든. 근데 이제야 그 말이 뭔지 알겠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돈 걱정 없이 이렇게 맛있는 거 사 줄 수 있어서 엄마는 행복해”

갑자기  낯간지러운 말을 하냐 물으며 시선을 피한다. 활짝  영의 얼굴을 보며 별로 한 것도 없이 뿌듯함을 느낀다. 기분이 좋은지 영의 입이   없이 움직인다. 요즘  도롱이랑 영화 모임을 하고 있다 말한다. 일주일에  번씩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영화   이야기한다고 하자 누이가 흥미를 보인다. 자기가 껴도 괜찮냐는 말에 영이 진심이냐 묻는다. 끼면 맛있는  먹고 수다 떠는 것이라 말하자 누이가 그럼 좋다 한다. 생각보다 적극적인 누이의 태도에 무슨 일인가 싶은지 영이 벙찐 표정으로 빤히 쳐다본다. 평소 같으면 잘했네 하며 대충 넘어갈 누인데,  잘못 먹었나 싶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엄마 영과 몰래 대화를 나눈다.

“너희 누나가 이제 화가 많이 풀렸나 봐. 아빠 보기 싫어서라도 집에 안 오는데, 갑자기 우리를 보고 싶다고 하질 않나, 모임을 하겠다 하질 않나...”

영에 말에 능청스럽게 이제 풀릴 때도 되었다 말하며 웃어넘긴다. 버팅기 결국 본인만 손해지 않겠냐, 이제 일주일에  번은 누이를   있겠다 말하자 영이 환하게 웃는다.


 다시 영어 공부 준비를 시작한다. 다다음 주면 있을 시험에 며칠 쉬지도 못하고 문제집을 핀다. 지우개 자국과 함께 충분히 너덜너덜해진 문제집을 바라본다. 빨간색 줄이 그어져 있는 문제들은 답지를 보지 않아도 정답을 확신할  있을 만큼 익숙해져 있다. 많이 푸는 것보다 틀린 문제를 통해 내가 어떤 유형에 약한지 집요하게 파고들라 인터넷  선생님은 말한다. 자신의 약점을 인지하고 개선하는  가장 빠르게 고득점을 만드는 법이다 설명한다. 턱을 괴고 오답 노트를 하나씩 넘긴다. 영상 속 말만 들으면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닌  같고, 아직 공부량이 부족한 것인가 생각한다. 빨리 목표하는 점수에 도달해서 영을 놀라게  주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권도 넘게 쌓인 문제집들을 보며 지난 시간을 회상한다. 아는  없어 무작정 읽고  읽었던 시간을 생각하면,  번쯤은 대견하다독여줘도 괜찮을  같다 스스로를 위로한다. 책에 고스란히 남겨있는 공부의 흔적들을 다시 훑는다. 말로만 하지 말고 결과로 가져오라는 영의 말이  올리며,  결과와 함께 내가 밟아왔던 과정도 보여주겠다 다짐한다.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온 시험을 준비한다. 최고의  상태를 위해 5 전부터 시험 시간에 맞춰 생활 방식을 바꾼다. 시험 시간이 보통은 아침이어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를 연습한다.  문제가 아쉽기에 비몽사몽 하는 정신을 깨우는 것도 높은 점수를 위한 하나의 기술이 되었다. 평소 같으면 컴퓨터 책상에 앉아있을 시간이지만 오늘은 침대에 눕는다. 잠이 오지 않더라도 핸드폰을 보거나 침대에서 일어나는 일은 없도록 한다. 벌써 몰려오는 시험에 대한 부담감에 마음을 비운다. ‘안되면  하면 되지. 기회는 많으니까’라는 말을 반복하며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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