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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지 Oct 30. 2022

그녀와의 블루스

 우연찮게 엄마 영과 단둘이 시간을 보낼 기회가 찾아왔다. 강원도로 출장을 가는 아빠를 따라 엄마 영과 즉흥적인 여행을 떠났다. 일을 하느라 바쁜 아빠는 바다 전경이 괜찮은 한 해변에 엄마 영과 나를 내려주었다. 해변을 돌아다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바다를 감상하고 있자 무언가 어색함과 낯선 분위기에 엄마 영을 부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단 둘이 여행을 한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집에서 둘이 밥을 먹고 티타임을 가지며 이야기하는 시간은 많았어도 여행 기억은 전혀 없었다. 토끼눈을 뜨고 이런 상황이 너무 억울하다 전달하자 그럴 리가 없다며 나를 질타하는 눈빛을 쏜다.

“그럼, 엄마가 기억나는 거 있어요? 나는 둘이 여행 다닌 기억은 없어요”

곰곰이 생각하던 엄마 영이 그럴 리가 없다며 생각을 다시 잘 더듬어 본다.

“아냐 그때 부산 같이 갔었잖아… 아 그건 너네 형이지…”

“거 봐요 없잖아요… 좀 서운하네”

 그녀가 알겠다는 듯 맛있는 거 사주겠다는 말로 상황을 무마한다. 점심시간에 맞춰 눈앞에 보이는 수제버거집으로 향한다. 바다가 보이는 창가 자리에 영과 함께 마주 보고 앉는다. 돈 걱정하지 말고 먹고 싶은 거 시키라는 말과 함께 제일 비싸고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버거 사진 위로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그거면 충분하냐 묻는 말에는 당연히 세트로 먹을 거다 말하자 그녀가 진동벨을 누른다. 몇 분 안돼서 음식이 나오고 이를 정신없이 흡입한다. 그렇게 한참 동안 햄버거를 입에 욱여넣고 있을 때 옆 테이블을 보던 엄마 영이 입을 연다.

“저기 봐 여자애가 엄청 지랄 맞나 봐 남자애가 완전 기네 기어”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자 커플로 추정되는 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버거를 하나하나 잘라 마주 앉은 사람에게 건네고, 정작 본인은 음식을 먹지 못하고 계속해서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휴지가 필요하다 했는지 의자 미는 소리와 함께 일어나 양손에 냅킨을 잔뜩 가져오고, 몇 분 있다 다시 일어나 식기류를 챙겨 온다. 그리고 다시 몇 분 있다가 밑반찬을 그릇을 챙겨 일어난다. 피클과 할라피뇨를 챙겨 돌아오는 길에는 자신의 겉옷을 벗어 덮어준다.

“너는 저런 애 만나지 마, 저렇게 삽질하면 너 엄마한테 죽어”

그녀에 말에 히쭉히쭉 웃으며 감자튀김을 입에 물고 말한다.

“모르는 일이죠, 너무 좋으면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못났다는 듯 나를 째려보는 그녀를 향해 능청스럽게 말하자 엄마 영이 얕은 한숨을 내뱉는다.

“그래, 삽질도 해봐야 삽질인 줄 알지”     

 햄버거를 계산하며 나오는 그녀의 한 줄 평은 생각보다 괜찮다였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들어왔는데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 말한다. 그녀의 말에 동조하듯 배를 두들긴다. 눈앞에 보이는 커피숍을 가리키는 엄마 영의 뒤를 따른다. 바다가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와 케이크를 주문한다. 진동벨이 울리자 엄마 영이 간결하고 정확한 손짓 두 번으로 음료를 가져오라 시킨다. 쟁반에 한가득 놓여있는 커피와 케이크를 가져와 내려놓는다. 커피에 살짝 입술을 가져다 댄 엄마 영의 얼굴이 구겨진다.

“에이 커피는 맛이 없구먼”

그녀의 반응에 커피를 빼앗아 살짝 마셔본다. 맹숭맹숭한 커피맛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엄마 영 쪽으로 커피를 돌린다. 창밖에 파도치는 겨울바다를 한참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린다.

“그래서 학교는 어떻게 할 거야?”

“음… 지금은 아무런 계획도 없고, 그냥 다닐까 해요. 근데 돈은 괜찮아요? 독일도 여행 한 번 가는데 칠팔백 들었잖아요…”

“네가 다니고 싶으면 다녀, 그리고 대학은 네가 돈 벌어서 가”

그녀의 말에 살짝 당황한듯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땡그랗게 뜬다.

“대학도 보내줘? 이게 대학 대신이야”

“그럼 빌려주세요, 대학 나와서 갚을게요”

그녀가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다 말하며 웃는 얼굴과 약간의 비아냥거리는 듯한 말투로 한마디 던진다.

“근데 대학 갈 수 있을까? 공부도 못하는데”

순간 발끈하지만 달리 반박할 말이 없어 시선을 피한다. 화제를 바꾸려는 듯 독일 여행 이야기를 해보라 말에 천천히 입을 뗀다.

“독일에서는 엄청 바빴고… 그리고 처음으로 그것도 외국까지 가서 그렇게 오랫동안 있어보니까 어색하면서도 재미있었어요. 뭐 책으로만 공부하다가 실제로 가서 배우면 확실히 이해가 잘 되는 것도 있고, 우리나라랑 완전히 다른 문화도 있었고…”

“예를 들면?”

“거기는 유모차 아니면 개 혹은 둘 다 데리고 나와서 담배를 펴요. 보통은 반려동물이나 아기 건강에 안 좋다고 안 하는데, 여기는 그게 익숙한 듯이 다 그러더라고요. 그리고 피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안 피는 사람이 피해야 하는 분위기랄까? 비흡연자들도 담배 냄새가 불편하다는 의사표현을 눈치 안 보고 엄청 크게 해요. 막 손 휘저으면서 담배 피우는 사람 들으라고 뭐라고 소리치더라고요”
 그녀가 턱을 괴고 계속해보라는 손짓을 한다.

“그리고 음식이 힘들었어요. 제가 그렇게까지 빵을 싫어하는지 처음 알았아요. 아침에 진짜 빵이 너무 안 들어가서 한 조각 다 먹으면 진짜 많이 먹은 거였어요. 그리고 웃기게도 독일 가서 제일 많이 먹은 음식이 동남아 음식이에요. 역시 쌀국수나 매콤한 국물요리가 입에 제일 잘 맞더라고요”

엄마 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또 다른 이야기는 없냐 묻자 앞에 놓인 망고 스무디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말을 이어간다. 

“공부는 잘 준비해 간 대로 했어요. 예상했던 대로 일정이 엄청 빡샜고, 난민이나 분단 문제, 환경 이런 것에 대한 문제의식은 확실히 독일이 더 깊은 것 같아요. 거기는 녹색당이 집권한 적도 있어서 정책도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그리고 트램도 엄청 잘 되어있고. 그리고 프라이부르크에서는 트램을 걸어서 5분인가? 6분인가 하는 시간 안에 탈 수 있도록 만들었데요. 그래야 사람들에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는 말이 논리에 맞으니까. 그리고 자전거 타고 다니는 사람도 많고, 독일 사람들은 이런 사회 분위기를 자신들이 일궈낸 자랑스러운 업적처럼 생각한대요”

바다를 전경으로 독일에 대해 한참을 얘기한다. 처음 다녀온 유럽여행인 만큼 공부에 대한 이야기보단 새로운 문화와 낯선 환경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도로를 이용해서 국경을 넘는 건 확실히 새롭더라고요. 버스 탈 때는 국경에서 경찰이 신분조회를 하고, 지하철에서는 아무런 절차 없이 스위스에서 바로 독일로 넘어갔어요. 머리로만 알고 있었지 실제로 경험하니까 또 다른 새로움이 있더라고요”

“그니까 그러면 사진 좀 찍어오지”

“사진 많이 찍어왔는데… 자 봐요”

핸드폰에 수북이 쌓인 사진들을 하나하나 넘기며 보여준다.

“아니, 사진에 네가 없잖아. 그냥 풍경만 잔뜩 찍어오면 어떡해. 이런 건 인터넷 치면 다 나오는 건데”

그녀가 답답하다는 듯 쳐다보며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 말한다. 비싼 돈 주고 독일까지 보냈는데 풍경사진만 잔뜩 찍어오는 바보가 어디 있냐 말하며 커피를 들이켠다.

“저는 제 얼굴이 좀 그래서 사진에 나오면 보기 싫어요…”

독일 얘기로 시작했던 대화가 점차 학교생활 이야기로 바뀌었다. 만들었던 영상부터 친한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던 영이 질문을 던진다.

“일 년 동안 뭘 배운 것 같아? 아니다 글로 써서 줄래?”

글이라는 말에 지겹다는 듯 정색하며 거부한다. 일 년이라는 시간을 정리하려 하니 어디부터 시작해야 될지 몰라 잠시 고민하다 어렵게 입을 뗀다.

“사실 처음에는 적응하기 엄청 힘들었어요. 뭐 종교적으로도 그렇고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엄청 모순적이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무언가를 말하면 그거에 대한 이유를 대답을 못하겠더라고요. 나한테는 너무 익숙해져 있는 행동이나 말인데, 왜 내가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모르겠는 게 좀 답답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좀 혼란스러웠는데 독일 갔다 오고 많이 고민하면서 이제는 그 안에서 나름의 제 생각을 만들어 가려고 하는 것 같아요. 뭐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생명이란 게 참 소중한 것 같고… 그걸 존중하는 방법을 배우는 건 너무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 해요. 농사 지을 때도 보면 씨앗 심을 때가 제일 바쁘거든요. 땅을 갈아엎고 작물이 잘 클 수 있게 흙에 좋은 영양분을 넣어주고 씨앗이 들어갈 자리까지 일일이 다 만들어야 하니까. 그리고 꼭 씨앗을 뿌릴 때는 장갑을 꼭 벗고 해요. 장갑을 끼면 씨앗이 다칠 수도 있고, 작은 씨앗들은 장갑을 끼고 다루면 떨어뜨렸을 때 감이 잘 안 오니까 맨손으로 차근차근 뿌려요.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런 태도들이 제가 부딪치고 있는 많은 고민들에 어느 정도 답을 주더라고요”

그녀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런 이야기 친구들이랑도 해?”

“어느 정도는요. 그런데 이렇게 깊게는 잘 안 해요”

엄마 영이 꼰 다리를 흔들며 말한다.

“거기 학교 선생님들은 전문가일 거야. 그 사람들이 다 계획하고 이 정도는 배워야 한다고 정한 시간이 2년 정도인 거고, 그니까 그냥 잘 다녀”

그녀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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