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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딱 좋은 날

by 커피마시는브라운

4월 20일 일요일 기다리던 마라톤 대회날이였다.

전날 개인적으로 많이 걸을 수밖에 없는 일정이 있어서 컨디션이 좋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다. 일어나자마자 창밖을 한 번 보고 핸드폰을 켜서 날씨를 확인해봤다. 요즘 변덕스러운 날씨 소식에 비가 올까 걱정했지만 흐리지만 비는 오지 않는 날씨였다. 달리기에 이보다 완벽한 날이 있을까?


밥을 먹으면 왠지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사과를 깍아서 반쪽을 챙겨 먹었다. 번호표와 기록밴드를 챙기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챙겨입었다. 이번에 마라톤대회를 처음으로 나간다고 러닝메이트였던 언니가 선물해주신 양말도 챙겨서 신었다. 러닝니삭스라고 하는데 처음으로 신어보았다. 발목을 꽉 잡아주는 느낌이 일반 양말과 달랐다. 도톰하고 따뜻한 양말의 감촉이 좋았다. 마치 양말을 선물로 준 언니의 마음과 닮아있었다. 도톰하고 따뜻한 마음.


오늘은 신랑이 특별히 데려다주기로 했다. 작은 아이는 어제 잠들기전까지는 엄마가 잘할 수 있도록 응원을 함께 가준다고 했었다. 하지만 새벽에 깨우니 더 자면 안되냐며 침대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그럼 더 자고 있어. 엄마 잘 다녀올께."


자고 있는 아이에게 인사를 해주고 신랑과 함께 집을 나섰다. 이번 대회장인 은행나무길은 우리 가족끼리 자주 산책을 가는 곳이다. 또 나의 러닝메이트였던 언니와도 함께 달렸던 곳이였다.


행사장을 1키로 남겨놓자 길은 온통 주차장으로 변해있었다. 7000명이 참여하는 마라톤 대회로 은행나무길 일대 도로는 마비가 되어 있었다. 신랑이 아니였다면 주차를 하느라 애를 먹었을지 모른다. 신랑이 근처에 내려주어서 나는 행사장까지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마라톤 주차장 차.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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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이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러닝을 즐기고 있다는게 신기하다. 어린 아이들과 5키로 마라톤에 참가한 가족들도 있었고 짧은 레깅스에 멋진 모자와 선글라스를 낀 사람도 있었다. 짧은 반바지에 어깨가 파인 러닝 전용 티셔츠를 입고 마치 프로선수의 위용을 뽐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곳 사람들의 패션을 구경하는 것도 나에게는 하나의 재미였다.


몸에 번호표를 붙이고 기록용칩을 신발에 부착했다. 살짝 긴장되면서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10km 꼭 1시간 안에 뛰고 싶은데...'


하지만 욕심은 금물이였다. 욕심을 부리면서 운동을 하다보면 내 페이스를 잃어버리게 되고 부상을 당할 위험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냥 지금 이 순간 대회에 참가할 수 있음에 달릴 수 있음에 감사하기로 했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면서 몸의 근육들을 풀어본다. 어제 3만 5천보를 걸어서 그런지 다리가 생각보다 부어있었다.


달리기 전 마음 속으로 미리 다짐해본다.


1. 처음은 무조건 천천히 뛴다.(남의 페이스를 따라가지 않는다.나만의 페이스로 뛴다.)

2. 몸의 반응에 귀를 기울여준다.(내 몸의 소리를 듣자. 몸이 힘들다고 하면 속도를 줄이자.)

3. 걷지 않고 끝까지 뛴다.(힘들다고 중간에 걸어버리면 다시 못 뛸 확률이 높다. 그러니 처음부터 무리하지 말자.)

4.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남의 시선,평가에 신경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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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몸을 풀고 나니 이제 마라톤에 참가해야 할 시간이였다. 풀코스와 하프코스가 8시 30분에 출발을 하고 10km는 8시 40분에 출발을 시작했다. 사실 사람이 엄청 많아서 출발을 하는지도 잘 모른다. 주변사람들이 뛰기 시작하니 나도 뛰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조금 앞으로 가니 출발선이 나왔다. 내가 출발선을 넘은 시간은 8시 50분이 넘은 시간이였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기록용 칩을 차면 출발선을 나서는 순간부터 돌아올때까지 기록을 측정해준다고 한다. 그러니 조금 늦게 출발한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10키로를 초등학생 아이들과 참여한 가족도 상당히 많았다. 아이들과 손을 잡고 함께 뛰는 모습, 아이들을 격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였다. 가족들끼리 평생 이야기 할 수 있는 추억거리가 되리라는 생각에 괜시리 부러워지기도 했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도 많았는데 70대가 훌쩍 넘어보이는 모습임에도 열정적으로 뛰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가라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그 분들은 건강하게 도전하시는 모습만으로도 이미 멋진 인생을 살고 계셨다. 나도 나중에 그렇게 나이들고 싶었다.


3키로가 넘어가면서 힘이 들기 시작했다. 아마 반대편으로 이미 5키로를 반환해서 돌아가는 선두그룹이 보이면서부터였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달리는 그들을 보면서 경이로운 마음도 들었지만 내가 언제 반환점에 도달할 수 있는지 생각하면서 살짝 기운이 빠졌다. 또 순간적으로 다른 사람과 날 비교하고 있었다. 다시 호흡을 가다듬어보고 내 페이스를 살펴보았다.


'나는 나만의 속도로 가는거야.'


나는 내 한발 한발에 집중하려고 했다. 조금 더 가자 5키로 반환 지점이 나왔다. 5키로 반환점을 지나고 나니 갑자기 힘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달렸다. 8키로쯤 왔을때 속도를 조금 올려보았다. 마지막 남은 2키로는 전력을 다하고 싶었기 때문이였다. 하지만 속도를 올리자 숨이 바로 가빠오기 시작했다. 나는 헥헥 거리기 시작했다. 더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원래의 속도로 돌아갔다. 그렇게 나는 결승선에 다다를 수 있었다.


결승선에 도착하고 대략 10분쯤 지나면 내 기록을 인터넷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다행히 결과는 '10km 58분 20초'가 나왔다. 나는 또 한 번 내가 적은 일 하나를 이루었다. 다시 새로운 목표를 세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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