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바라기 Nov 02. 2023

아이를 통해 내가 배운다

능력보다 소중한 건 삶의 태도다.

근접발달기는 어른의 도움을 받으면서 학습과제를 완수할 수 있는 범위를 말한다. 아이는 편안한 상태에서 지식을 갖춘 성인의 도움을 받으며 학습에 임할 때 가장 높은 성취도를 보인다.      -최희수<내면 여행> 중에서-


'평범한 일상은 어떻게 글이 되는가' 책을 읽던 중, 아이와의 일상을 담은 글 속에 나와있는 비고츠키의 근접 발달 이론에 대해 찾아 봤다. 요즘 나의 관심사 중에 하나가 학습이라 이 단어가 날 확 잡아 끌었다.


  '왜 아이들은 똑같은 교실 환경에서 똑같이 수업하지만 잘 이해하는 친구가 있고, 잘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가 있을까?' 라는 직업적 고민과 함께 '왜 우리집 둘째는 설명해도 잘 이해를 못할까?' 라는 개인적 고민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노트북을 켰다.


  네*버 검색창에는 대학 때 교육학과 아동학 수업을 들으며 배웠던 이론적 설명들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근접발달 영역(ZPD)은 아이마다 다르다. 근접발달 영역은 아동이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으나 성인이나 뛰어난 동료의 도움을 받아 학습하면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을 말하는데, 실제적 발달 수준은 다른 사람 도움 없이 혼자 할 수 있는 수준이고, 잠재적 발달 수준은 성인이나 뛰어난 동료의 도움을 받아 학습하는 수준이다. 
이 두 수준 사이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범위가 넓으면 넓을수록 도움이 많이 필요하고, 범위가 좁으면 약간의 도움만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설명이었다.


  우리 집 둘째 아이는 근접발달 영역이 넓~어서 도움이 많이 필요한 아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학교만 보내면 알아서 공부를 잘 할 줄 알았던 둘째아이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근무하는 학교로 데리고 다니면서 같은 학교 동료라는 걸 불편해 할까봐, 담임 선생님께 전화 한 통 안하고 교실 근처도 안 갔었는데 왠일인가 싶었다. 


"선생님, **이 공부 좀 시켜서 보내주세요. 많이 힘들어 하네요."

"아, 정말요? 알아서 잘 할 줄 알았는데 잘 못 하나봐요. 집에서 공부 시킬께요."


  계속 고학년 담임만 하던 난, 초등학교 1학년이 무슨 공부할 게 있나 싶어 그냥 학교만 보냈었는데, 갑작스런 연락에 집에 가서 아이의 학습 상태를 점검했다. 덧셈, 뺄셈을 할 줄 알긴 헸는데 계산 오류가 많았다. 그 때서야 수학 문제집을 한 권 사서 풀리기 시작했다. 엄청 하기 싫어하는 걸 억지로 데려다가 공부시키곤 했었다. 워낙 착하고 조용했던 아이라 시키는대로 하긴 했지만, 참 힘들어했다. 


  그 때는 내가 미리 학습을 안 시켜서 잘 못 따라가는 줄 알았다. 서술형 문제는 읽기도 싫어하고, 읽어도 무슨 말인지 잘 이해를 못해 내가 한 번 더 설명해 주곤 했었다. 수학 개념도 한번 설명해선 잘 이해를 못하고, 여러 번 반복해야 기억을 떠올렸던 것 때문에 많이도 윽박질렀었다. 아이가 주눅도 들고, 때론 울음을 터뜨려 공부가 중단되기도 했었다.


  몇 년 그렇게 가르치다보니 교실 안에서 학습을 어려워하는 아이와 오버랩 되었다. 그 아이들을 남겨서 가르칠 때는 오늘 설명하고 나면 내일 잊어버린다는 걸 인정하고, 같은 걸 알 때까지 설명해 줬었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 아이도 가르치기 시작했다. 물론 한 번씩 욱~하고 올라오긴 했지만 예전만큼 화내거나 소리지르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서 자신이 공부를 잘 못하는 것 같다, 기억력이 나쁘다는 얘기를 가끔씩 했다. 워낙 사교성이 좋아 친구들과 잘 지내면서 별로 스트레스 안 받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다.


 얼마 전에 중학교 1학년 학생들 대상으로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 검사(?)같은 걸 했다며 결과표를 가져왔는데, 대부분의 점수가 상.중.하 중에서 '하'였다. 학습 전략 방법들을 잘 활용하고 있는지, 이해력과 기억력은 얼마나 좋은지 등을 점검하는 거였는데, 유일하게 '상'으로 나온 것은 '공부 환경'이었다.


  아이는 비장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난 듣는 게 잘 안 되는 것 같아. 듣고 있으면 계속 딴 생각을 하게 되고, 집중이 잘 안돼. 오늘 결과지 보면서 컨설팅 같은 거 해줬는데, 나 같은 아이들은 예습을 잘 해오는 게 중요하대."


  비고츠키의 근접발달 이론에서도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모든 학습은 언어로 이루어져 있기에 언어가 잘 발달한 아이는 그만큼 학습도 쉽게 이루어진다는 거였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교실 안에서도 교사의 말을 잘 듣는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한다. 잘 듣는다는 건, 선생님의 설명이 이해가 된다는 뜻이다. 선생님의 학습 언어에 대한 배경 지식과 이해가 동반되어야 새로운 지식도 습득이 가능하게 된다.


  아마 그 때부터 더 열심히 예습을 해 가려고 했던 것 같다. 잘 하고 싶은 마음은 큰데, 능력이 잘 안 따라주니 안타깝긴 하다. 그래도 아직은 엉덩이 힘으로 이겨낼 수 있을거라며 끊임없이 격려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수학 시간에 풀 학습지를 미리 풀어보고 간다길래 평소보다 일찍 깨워줬더니, 열심히 풀다가 며칠 전에 했던 개념을 또 잊어버리고 혼자 끙끙대고 있었다. 또다시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걸 알지만, 나도 모르게 곱게 말이 나가지 않았다.


"며칠 전에 했었잖아. 기억 안나?" 


핀잔섞인 목소리에 짜증을 내긴 했지만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컸는지 끝까지 풀어보고 등교하는 아이가 대견하고 고마웠다. 


  언어 능력이 조금 부족하고, 이해력과 기억력이 조금 부족하면 어떠랴.

  학습 능력보다 더 소중한 건, 삶의 태도다. '어떤 태도로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하느냐'가, '결과가 어떻냐'보다 훨씬 중요하다. '나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겠다' 다짐하며 오늘도 도서관으로 출근(?)했다. 

아이를 통해 내가 배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