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보다 소중한 건 삶의 태도다.
근접발달기는 어른의 도움을 받으면서 학습과제를 완수할 수 있는 범위를 말한다. 아이는 편안한 상태에서 지식을 갖춘 성인의 도움을 받으며 학습에 임할 때 가장 높은 성취도를 보인다. -최희수<내면 여행> 중에서-
'평범한 일상은 어떻게 글이 되는가' 책을 읽던 중, 아이와의 일상을 담은 글 속에 나와있는 비고츠키의 근접 발달 이론에 대해 찾아 봤다. 요즘 나의 관심사 중에 하나가 학습이라 이 단어가 날 확 잡아 끌었다.
'왜 아이들은 똑같은 교실 환경에서 똑같이 수업하지만 잘 이해하는 친구가 있고, 잘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가 있을까?' 라는 직업적 고민과 함께 '왜 우리집 둘째는 설명해도 잘 이해를 못할까?' 라는 개인적 고민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노트북을 켰다.
네*버 검색창에는 대학 때 교육학과 아동학 수업을 들으며 배웠던 이론적 설명들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근접발달 영역(ZPD)은 아이마다 다르다. 근접발달 영역은 아동이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으나 성인이나 뛰어난 동료의 도움을 받아 학습하면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을 말하는데, 실제적 발달 수준은 다른 사람 도움 없이 혼자 할 수 있는 수준이고, 잠재적 발달 수준은 성인이나 뛰어난 동료의 도움을 받아 학습하는 수준이다.
이 두 수준 사이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범위가 넓으면 넓을수록 도움이 많이 필요하고, 범위가 좁으면 약간의 도움만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설명이었다.
우리 집 둘째 아이는 근접발달 영역이 넓~어서 도움이 많이 필요한 아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학교만 보내면 알아서 공부를 잘 할 줄 알았던 둘째아이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근무하는 학교로 데리고 다니면서 같은 학교 동료라는 걸 불편해 할까봐, 담임 선생님께 전화 한 통 안하고 교실 근처도 안 갔었는데 왠일인가 싶었다.
"선생님, **이 공부 좀 시켜서 보내주세요. 많이 힘들어 하네요."
"아, 정말요? 알아서 잘 할 줄 알았는데 잘 못 하나봐요. 집에서 공부 시킬께요."
계속 고학년 담임만 하던 난, 초등학교 1학년이 무슨 공부할 게 있나 싶어 그냥 학교만 보냈었는데, 갑작스런 연락에 집에 가서 아이의 학습 상태를 점검했다. 덧셈, 뺄셈을 할 줄 알긴 헸는데 계산 오류가 많았다. 그 때서야 수학 문제집을 한 권 사서 풀리기 시작했다. 엄청 하기 싫어하는 걸 억지로 데려다가 공부시키곤 했었다. 워낙 착하고 조용했던 아이라 시키는대로 하긴 했지만, 참 힘들어했다.
그 때는 내가 미리 학습을 안 시켜서 잘 못 따라가는 줄 알았다. 서술형 문제는 읽기도 싫어하고, 읽어도 무슨 말인지 잘 이해를 못해 내가 한 번 더 설명해 주곤 했었다. 수학 개념도 한번 설명해선 잘 이해를 못하고, 여러 번 반복해야 기억을 떠올렸던 것 때문에 많이도 윽박질렀었다. 아이가 주눅도 들고, 때론 울음을 터뜨려 공부가 중단되기도 했었다.
몇 년 그렇게 가르치다보니 교실 안에서 학습을 어려워하는 아이와 오버랩 되었다. 그 아이들을 남겨서 가르칠 때는 오늘 설명하고 나면 내일 잊어버린다는 걸 인정하고, 같은 걸 알 때까지 설명해 줬었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 아이도 가르치기 시작했다. 물론 한 번씩 욱~하고 올라오긴 했지만 예전만큼 화내거나 소리지르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서 자신이 공부를 잘 못하는 것 같다, 기억력이 나쁘다는 얘기를 가끔씩 했다. 워낙 사교성이 좋아 친구들과 잘 지내면서 별로 스트레스 안 받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다.
얼마 전에 중학교 1학년 학생들 대상으로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 검사(?)같은 걸 했다며 결과표를 가져왔는데, 대부분의 점수가 상.중.하 중에서 '하'였다. 학습 전략 방법들을 잘 활용하고 있는지, 이해력과 기억력은 얼마나 좋은지 등을 점검하는 거였는데, 유일하게 '상'으로 나온 것은 '공부 환경'이었다.
아이는 비장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난 듣는 게 잘 안 되는 것 같아. 듣고 있으면 계속 딴 생각을 하게 되고, 집중이 잘 안돼. 오늘 결과지 보면서 컨설팅 같은 거 해줬는데, 나 같은 아이들은 예습을 잘 해오는 게 중요하대."
비고츠키의 근접발달 이론에서도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모든 학습은 언어로 이루어져 있기에 언어가 잘 발달한 아이는 그만큼 학습도 쉽게 이루어진다는 거였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교실 안에서도 교사의 말을 잘 듣는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한다. 잘 듣는다는 건, 선생님의 설명이 이해가 된다는 뜻이다. 선생님의 학습 언어에 대한 배경 지식과 이해가 동반되어야 새로운 지식도 습득이 가능하게 된다.
아마 그 때부터 더 열심히 예습을 해 가려고 했던 것 같다. 잘 하고 싶은 마음은 큰데, 능력이 잘 안 따라주니 안타깝긴 하다. 그래도 아직은 엉덩이 힘으로 이겨낼 수 있을거라며 끊임없이 격려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수학 시간에 풀 학습지를 미리 풀어보고 간다길래 평소보다 일찍 깨워줬더니, 열심히 풀다가 며칠 전에 했던 개념을 또 잊어버리고 혼자 끙끙대고 있었다. 또다시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걸 알지만, 나도 모르게 곱게 말이 나가지 않았다.
"며칠 전에 했었잖아. 기억 안나?"
핀잔섞인 목소리에 짜증을 내긴 했지만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컸는지 끝까지 풀어보고 등교하는 아이가 대견하고 고마웠다.
언어 능력이 조금 부족하고, 이해력과 기억력이 조금 부족하면 어떠랴.
학습 능력보다 더 소중한 건, 삶의 태도다. '어떤 태도로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하느냐'가, '결과가 어떻냐'보다 훨씬 중요하다. '나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겠다' 다짐하며 오늘도 도서관으로 출근(?)했다.
아이를 통해 내가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