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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중국어 쌤의 발작버튼

by 작은 브러시

4학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5학년이 시작되었다.

반배정의 결과는 처참했지만... (K양과 같은 반 + 한국 애/ 친한 애 ×) 그나마 담임쌤이 참 다정하고 유쾌하신 분이셔서 괜찮았다.

그래도 생각해 보니 첫날부터 친구를 사귄 건 행운이었던 것 같다. 첫날에 담임쌤이 같은 반에 친한 친구 없냐 물으시면서 점심시간에 같은 반 핀란드 여자애랑 같이 놀라하셨다.

(그 애는 이제부터 S 양이라 부르겠다. ) S양은 처음에는 무표정이었지만 같이 놀다 보니 꽤나 재밌는 친구란 걸 알게 됐다. 그렇게 난 5학년에 조금씩 적응해 갔다.


하여튼 간 오늘 할 이야기는 사실 따로 있다.

다른 과목 쌤들은 모두 바뀌었지만 중국어 쌤은 똑같았다. 가장 좋아하던 선생님이셔서 난 정말 반가웠다. 중국어 쌤은 평상시 나에게 참 친절하셨다. 그런 친절한 선생님을 고래고래 소리 지르게 한 게 과연 누군지는 그동안 내 글을 봐오신 분이라면 짐작할 것이다.

그렇다, 또다시 K양이었다.

4학년 때도 물론 중국어 시간에 태도가 그리 좋진 않았다. 하지만 그때는 맛보기 수준이었고 진짜 전쟁은 다음 해가 되며 시작되었다.


전쟁 시작의 의미로 처음 화살을 내리꽂은 건 K양이었다.

수업시간에 이상한 무언가(?)를 만들며 딴짓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자꾸 중국어 쌤의 말을 자르며 수업을 방해했다.

K양이 화살을 쏠 수록 중국어 쌤의 혈압은 계속해서 솟아올랐다. 쌤도 물론 가만있지만은 않았다. 칼로 화살을 베어내고 금세 활을 획득하셨지만,... 안타깝게도 화살은 아직 K양의 손에 있었다.


K양의 공격은 나날이 지날수록 강해졌다. K양은 종종 화장실 수법을 써먹곤 했다. 여기서 '화장실 수법'(이름은 내가 지었지만)이란, 중국어를 싫어하는 아이들, 그러니까 안타깝게도 거의 모든 아이들이 K양을 따라 쓰곤 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1. 쉬는 시간이 아닌 수업 도중에 갑자기 손을 들고 화장실에 갈 것을 요청한다.

2. 이때 쌤은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짜로(사실 가짜로겠지만) 급하고 나올 것 같단 것을 온몸을 동원해 표현한다.

3. 이것도 안될 시 쌤을 집중적으로 방해한다.

예)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펄쩍펄쩍 뛰어다니기


억지인 것 같아 보여도 정말 위 같은 행동들은 일상적으로 나왔다. 문제는 그게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중국어가 지루하다 생각하는 애들은 점점 K양의 동지가 되어 칼을 들었다. 쌤은 할 수 없이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그 상황에 지칠 때로 지친 이후로는 누군가 손을 들면 "Just go, quick!" 하고 힘없이 손짓을 해 내보내셨다.

물론 빠르게 돌아오지 않으리란 걸 아셨지만 말이다.


이렇게 쓰니까 너무 짠하신 것 같다. (ㅜㅜ) 그래도 난 중국어가 재밌었는데 말이다. 교사라는 직업이 참 힘든 직업인 건 같단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그래도 나는 솔직히 항상이라 하긴 힘들지만, 거의 최선을 다해 들었던 것 같다. 그때 교실 분위기가 교실 분위기가 아니던 상황이어서... 쩝.


정말 이것보다 더 할 수 있을까 했는데, 더한 날이 있었다.

그날은 유독 반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날따라 K양은 유난히 자리를 들락날락했고,

많은 아이들이 화장실에 가서 돌아오지도 않는데 반에 남아있던 애들은 떠들기나 하는 상황이었다.

쌤이 조용히 하라 소리를 쳐도 애들은 무시했고 K양이 더욱 대놓고 딴짓을 하자 쌤이 마지막 경고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런데 K양이 한 말이 파국을 불러일으킬 줄 누가 알았겠나.

" Why? Why I have to stop? Haha!"

한국어로 짧게 번역하자면 이렇다.

어. 쩌. 라. 고. 요.

쾅.

이럴 수가. 오 마이갓.

그건 중국어 쌤의 한계치였다.

쌤은 다 포기한다 선언하듯이 노트북을 접어버리셨고 눈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충혈되셨다.

T양의 원수였고 나의 원수였지만 이젠 중국어 쌤의 원수까지 돼버린 순간이었다.

우리는 쌤과 K양 사이에 숨 막히는 대치를 숨죽여 관전할 수밖에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담임쌤이 들어오시자 우리 반은 전체로 혼이 났고, 더 심하게 말을 안 들었던 애들은 밖으로 불려 나가 크게 혼났다. 하지만 그 꾸중이 K양에게는 통하지 않았나 보다. 그 뒤로도 늘 쌤이 조금이라도 방심할 때면 덫을 두곤 했다.


정말이지 중국어 선생님이 불쌍한 이유는 따로 있다. 4편에서 K양이 강약약강이라 언급했던 이유가 이 때문이기도 하다.

K양은 중국어가 끝나고 다른 수업에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훨씬 얌전하고 공손해진다. 한 번은 수줍어 보이는 말투에 어이가 없어 실소가 터졌다.

한마디로 중국어 때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오직 중국어 쌤한테만 반항하고 소리 지르고 난리였던 것이다.


정말 내가 다 속상했다. 매일이 스트레스 실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다정히 웃어주시던 쌤께 감사하단 말씀을 하고 싶다.


우리가 닮고 싶은 사람이 아닌 절대 닮고 싶지 않은 사람을 하나 정하고 살아봐도 충분히 잘 살고 있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는 K양이 그런 존재다. 무시하고 얕보고 차별하며 살지만 않아도 꽤 좋은 삶을 살았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화 예고:

아아... 이런.

너무 당황스러웠다.

내가 욕을 썼다고???

한국어 욕도 생전 안써본 내가 영어 욕을 국제학교에서 썼다고 한다. 억울해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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