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길이
기대가 절망으로 바뀌고 나의 호의가 배신감으로 돌아오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다면, 더군다나 그 경험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면 활짝 열려있던 마음의 문은 점점 닫히게 된다.
언젠가 타 지역에 갔다가 중요한 약속이 생겨 메이크업샵을 예약했다. 근처 주차가 어려워 약속시간에 1분이라도 늦게 될까 땀으로 멱을 감고 허겁지겁 올라가 보니, 앞타임 예약이 아직 안 끝나서 되려 내가 15분을 더 기다리게 되었다. 지금 이 상황이 나를 제외한 이곳 모두에게는 당연한 일 듯 느껴진다. 같은 업종 종사자로서 매장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두 번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 되어버렸다.
또 한 번은 가장 바쁜 피크타임에, 모르는 번호로 서너 번 연달아 전화가 걸려왔던 적이 있다. 급한 전화 인가 싶어 염색을 바르던 장갑을 벗어던지고 달려가 전화를 받았다. 모카드회사인데 신용카드하나 만들어볼 생각 없냐고 한다. 발신자의 마음을 배려했던 나의 호의가 배신으로 돌아오는 결말을 맞이하게 된 셈이다.
이쯤 되면 업종을 막론하고 세상 모든 것들은 왜 '자기중심적'이 될 수밖에 없는 걸까 고민해 보게 된다. 이런 생각들은 '시간'을 존중받지 못한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피어오른다. 시간은 기브 앤 테이크가 정확하게 비례되는 것이기에, 한 사람이 시간을 제공하면 한 사람은 제공받는 정확한 공식을 가지고 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 시간이라는 것은, 나이가 들어가며 더욱더 뼈저리게 체감하게 되는 것 같다. 반면, 미용사로서 고객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경험들은 없었는지 되짚어보게 된다.
때는 십여 년 전, 4년간의 인턴 생활을 이제 막 졸업하고 헤어디자이너가 된 지 갓 3개월이 되던 때였다.
"1cm만 다듬어달라고 했잖아요"
수치화된 1센티는 정해져 있거늘, 각자가 생각하는 1cm를 두고 미용사와 고객은 썰전을 벌이고 있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지금 머리상태가 썩 나쁘진 않으나 뭔가 지저분한 느낌이라 끝을 조금 다듬으면 낫지 않을까 싶어 방문했을 것이다. 그러나 애지중지 애써 길러간 소중한 내 새끼들을 감흥 없이 훅 잘라내는 미용사의 태도에 화가 날 법도 하다. 한참도 지난 일이지만 그때 그 고객님은 스타일 변화보다는, 예쁜 공간에서의 시원한 샴푸, 좋은 음악, 커피 향만으로도 충분한 만족이 되었으리라. 굳이 1cm만 다듬으러 온 그때 그 고객님은 기분전환을 하기 위한 방문이었음을 이제는 알 수 있다. 고객의 '의도'를 가장 먼저 파악하는 지혜를 장착하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평균은 사라지고 아주 잘하거나 형편없거나의 초양극화가 돼버린 현대사회에서 나는 어떤 곳을 향해가는가.
애써 길러온 머리를 내게 맡겨준 고객님, 긴 머리를 기대하며 오랜 시간 인내해 왔던 시간들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은 '감사한마음'의 부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내게 끔찍하게도 소중한 대상에게는 떨어지는 낙엽에도 상처 입을까 온 신경을 다 쏟아붓기 마련이니까.
수도꼭지만 돌리면 깨끗한 물이 원 없이 쏟아지는 곳이 아닌, 물 한 방울이 나지 않는 가뭄 서린 사막에서 작은 물 웅덩이를 만난 것처럼,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여기는 마음을 잊지 않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