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사람

손해

by 이현지





쉬는 주말, 통유리창이 드넓은 카페에 앉아 사람들을 둘러본다. 작정하지 않고서는 한 곳에 멈추어 타인을 바라볼 여유가 없는 것이 미용사의 일상이기에, 가끔은 오늘처럼 나 하나쯤이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책임 없는 공간에 찾아가고는 한다.



카페에 가만히 앉아서 둘러보면 내 시선이 닿는 테이블마다 전해지는 분위기가 다름을 느낄 수 있다. 질문과 답변으로 쉴 새 없이 활기가 넘치는 테이블 뒤로, 잡음 하나 내지 않고 묵묵히 각자의 할 일을 하는 노부부의 모습이 인상 깊게 드리운다. 조용히 걸어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자연스레 노트북을 꺼내는 백발의 남자, 상대방에게 메뉴를 물어보지도 않고 주문하러 가는 아내, 이내 음료 두 잔을 가지고 와 뜨개질을 시작하며 각자의 할 일에만 집중한다. 사랑이 식어 애정이 없다고 오해받기 딱 좋은 이 모양새는,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가장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그림이다.



같은 공간에서 얼굴을 마주하며 서로에 대한 시간을 존중하는 것은, 이해로 다져진 두 세계의 충돌을 수 없이 반복해 낸 단단한 사랑의 형태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씩 서로의 눈을 마주치는 여유마저 놓지 않는 그들의 아우라는 각자의 다름을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온 아름다운 결과의 산물이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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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에 찾아오는 손님들 중에서도 꾸준히 심플한 사람들이 있다. 서로의 ‘다름’에 크게 반응하지 않고 머리를 하는 동안 별다른 표현 없이 긍정적인 분위기를 이어간다. 매사에 잔잔한 그 모습이 존경스러울 정도이다. 동그라미, 세모, 네모 등 각자의 모양을 내 모양대로 맞추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타인의 모습을 인정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먼저 양보하고 베푸는 기버의 모습을 닮아있는 것과,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조심스럽게 언급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손해만 보고 사는 호구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만큼, 본인이 피해받는 것 또한 싫어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용실 손님 중에서도 말없이 조용히 계시는 고객님들을 가장 조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말없이 조용히 계시는 고객님들은, 불편한 티를 내는 것조차 본인의 에너지를 써야 하는 것이기에 굳이 표현하지 않고 조용히 등을 돌리고 만다. 당하고만 사는 것 같았던 사람들의 진짜 속내는 의미 없는 사람에게 일말의 에너지조차 쓰지 않기 위해 '배려'라는 무기로 상대를 심판해 왔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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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뭐든 아낌없이 내어주는 오랜 고객님에게, 손해 본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고객님은 양보하고 베푸는 삶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 형태가 꼭 특정 상대에 대한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더라도, 건강이나 중요한 날의 날씨 등 다른 형태로 돌아올 수 있고, 또는 내가 아닌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운이 되어 돌아온다는 인생의 진리를 깨우친 이론이었다. 그러니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과는 다르게, 그들에게 '손해'라는 것은 처음부터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몇 수 앞을 내다보는 큰 그릇을 가지게 되면 쓸데없는 감정낭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들의 지론은 가히 훌륭한 세계였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큰 파장을 일으킨다는 나비효과처럼, 인생의 모든 사건이 돌고 돌아 지금 내 앞에 펼쳐져있다. 인생의 스승들이 한 명씩 거쳐갈 때마다, 내 인생에도 노련함이 생기게 되었다. 당장 눈앞의 서운함 감정에서 벗어나, 내 앞에 당신이 존재하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나눌 수 있음에 행복함을 느끼는 것으로 충분함을 알게 되었다. 매일 만나는 고객님들, 같이 일하는 동료, 나의 가족, 오며 가며 만나게 되는 모든 인연들과의 만남에서 성숙한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된 셈이다.



같은 카페에 앉아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했던 노부부의 아름답고 성숙한 지난 세월들에 경의를 표하며,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 마음이 요동치지 않고서도 타인의 '다름'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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