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한 전화

컴플레인

by 이현지



1:1 예약제 컨셉으로 자리하고 있는 미용실에도 유난히 바쁜 날이 있다. 가족단위의 예약이 많거나 컷 예약으로만 가득 차있는 날이 그렇다. 이런 날, 일반 사람들이 바리깡이라고 부르는 '클리퍼'를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오래 사용하게 되면 물건의 본체가 점점 뜨거워지게 된다. 날과 날 사이의 금속 단면들이 마찰이 되며 점점 소음이 커지고, 심할 경우에는 머리카락이 한가닥씩 뜯기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방전되기 전까지는 스스로 페이드아웃 할 수조차 없는 작은 로봇이 휴게시간을 달라고 온몸으로 소리치는 중이다.



손님들 또한, 회사나 외부환경으로부터 과부하된 머리를 이끌고 간신히 찾아오는 곳 중 하나가 미용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용모를 단정하게 하면서 자유시간을 즐길 수 있으니, 시간적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혜자스러운 공간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 걸지 않는 미용실만 찾아다닌다고 하는 걸 보면 머리 하면서 편하게 쉬고 싶은 마음이야 말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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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님 좀 바꿔주시겠어요?


얼마 전 머리하고 가신 고객님의 전화였다. 보통 다녀가신 날로부터 일주일 내로 전화가 오면 '아차!' 싶은 것이 헤어디자이너의 마음이다. 아니나 다를까 머리 손질이 어려워서 다시 봐줬으면 좋겠다고 한다. 미용실 원장은 그저 불편한 연락을 주시기까지의 망설였을 고객의 마음에 공감과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이후 서둘러 재방문 일자를 체크해 드릴 뿐 변명은 하지 않는다.



보통 컴플레인으로 다시 방문해 주시는 경우를 살펴보면, 거창한 대공사를 해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저 작은 소통의 부재로 인한 한 끗 차이문제들이 대부분일 뿐이었다. 예를 들면, 덥수룩한 목 뒷머리가 답답한 어머님, 미용실에서처럼 머리가 예쁘게 손질되지 않는 당황스러움, 잘못된 관리법으로 인한 부스스함 등을 대표로 들 수 있겠다. 덥수룩함은 원하시는 대로 덜어주면 되고, 손질법은 다시 한번 고객의 눈높이에서 꼼꼼하게 설명해 드린다. 부스스함은 영양을 넣어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과정을 몸소 경험해드리게 하면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용사들은 머리를 다시 봐달라는 전화에 거북스러운 마음을 먼저 표출하게 된다. 설상 미리 설명했던 기억이 있더라도 일단은 하고 싶은 말을 뒤로 넣어두고 어렵게 전화한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주어야 한다. 컴플레인에 대한 가장 좋은 해석은, 앞으로도 당신을 계속 만나고 싶기 때문에 나와 결이 맞는 디자이너임을 증명해 달라는 마음을 알아채는 것이다. 보이는 문제에 화가 난 고객님의 모습 뒤에 가려진, 정착할 곳 없이 외로웠던 고객의 지난 상처들과 한번 더 믿어보고 싶은 순수한 마음을 먼저 이해해 주어야 1 티어의 프로라고 할 수 있겠다.



미용실 컴플레인은 이 업계에 종사하는 동안 미용사와 평생 함께 걸어가야 할 '동반자'나 다름없기에, 불편한 마음에 허우적대는 감정적인 대처보다는 빠르게 인정하고 적응하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 또한 미용사의 실력을 떠나 손님의 니즈와 연결되지 않으면 컴플레인으로 연결되는 것이 현실이기에, AS 연락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반성해야 하는 것은 어떤 소통이 간과되었는지 되돌아보며 성장해 나아가면 그뿐이다. 이외의 감정적인 요동이나 불편한 마음으로 인해 시간낭비를 하지 않아야 이 일을 행복하게 오래 해 나아갈 수 있다.



내가 아마추어 초급디자이너시절이었을 땐, 이런 전화에 몇 날며칠 잠을 못 이루고는 했다. 경험이 많지 않은 그때의 나는 기술적인 '해결책'만을 찾으려는 좁은 시야에 갇혀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고객의 재방문의사에 어려운 연락을 주게 된 것에 대한 유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나를 믿어보고자 했던 마음에 감사함을 느끼는 노련한 자태를 보상받게 되었다.



날이 선 목소리 뒤로 기댈 곳 없는 당신의 두려운 마음을 이제는 알고 있다. 아무리 화를 내고 할 말이 많아도 결국은 나를 믿고 싶었던 어린아이의 얼굴이 드러난다. 불편한 마음으로 혼자 수십 번 고민했을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자 감사함만이 남게 된다.



이제는 오랜 시간 함께 했던 고객님들의 컴플레인 상황에서, 그들은 나에게 돈과 시간을 지불하고도 되려 나에게 미안해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나 또한 당신의 금 같은 시간을 다시 한번 내어주시는 것에 감사함을 표하며 서로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판매자와 소비자 간의 이상하고 따듯한 순간이 펼쳐지게 된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생기기까지 부단히 존중하고자 노력한 시간들이었기에 가능한 모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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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자가 되어갈수록, 스스로가 뜨거운 클리퍼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데 많은 노력을 가하게 된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하루하루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감정이 올라온 누군가를 대면했을 때 한 사람은 시원한 냉기를 머금은 환기구가 되어주어야 소음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비워져 있어야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가 생기게 되며, 이는 내 스스로에게도 감정적인 소모나 시간낭비를 하지 않게 되는 가장 큰 노하우이기도 하다.




직원으로 근무했던 시절에는 내 일만 잘해도 보상이 따라오는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직책이 생긴다는 것은 본질을 이해하며 넓은 시야를 갖추는 연습을 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이 작은 공간에서 하루하루 타인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간다. 매일같이 여백의 조각들이 모여 불완전한 원석이 모양을 갖춰져 감을 느낀다. 나를 잠 못 들게 했던 밤새 고민하게 했던 모든 상황들을 사랑하고 애정한다. 예측할 수 없는 형태의 이별로 언젠가 이곳의 연이 다하는 날, 만났던 모두를 통해 나는 더 깊은 지혜를 가지게 될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스쳐가는 모든 이들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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