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라떼는"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박완서의 「그 여자네 집」이라는 소설이 실려 있었습니다. 분량도 교과서에 소설 하나가 전부 실린 것 중에는 꽤 많은 편이었고, 내용도 무척 재밌어서 수업 시간에 집중하며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여자네 집. 그 남자네 집. 단어 하나 다른 이 소설 역시 박완서가 쓴 작품이고, 첫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첫사랑이라는 개인적 경험을 통해 전쟁이라는 국가 수준의 아픔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많은 소설입니다.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때도 그러했듯이 이 소설도 제목이 뭔가 첫사랑스러워서 읽기로 했습니다.
장편소설은 대부분 비슷한 경향이 있는데, 이 소설도 초반부는 설명, 빌드업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지루합니다. 솔직히 덮어버릴까 했습니다. 게다가 한국 소설의 특징 중 하나기도 한, 어렵고 생소한 단어가 많이 나온다는 점 때문에 저의 못난 국어 실력을 슬퍼하랴, 사전 찾아보랴 시간이 꽤나 걸리기도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전쟁과는 너무 시간적으로 거리가 먼 시대에 살고 있는 저에게 전후 시대 배경 묘사를 하는 초반부는 감정 이입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본격적으로 주인공이 자신의 옛이야기를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몰입감 있게,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주듯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연애소설이니까요.
이 작품이 재밌는 것은 내용뿐 아니라 작가가 글을 잘 쓴다는 점에도 있습니다. 중간에 표현이 기가 막히다 싶은 구절이 있어 하나 옮겨두려 합니다. 민호(남편)와 결혼하기로 결심한 주인공이 현보(첫사랑)에게 청첩장을 건네는 부분입니다.
"그 남자도 나에게 어떤 마음의 부담도 남기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다. 비로소 나도 돌아앉아 눈물을 보였다. .... 집 사고판 일, 이사, 복학, 거기 따른 시시콜콜한 식구들의 참견 등, 이미 다 아는 사실을 변명처럼 다시 늘어놓는 건 그동안 나하고 소원해진 이유를 스스로 납득하려는 절차처럼 보였다. 그러나 내가 취한 행동은 그전부터 예정된 일이었다. 나의 눈물에 거짓은 없었다. 이별은 슬픈 것이니까. 그러나 졸업식 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그냥 남아 있고 싶어 우는 건 아니다."
이 부분을 읽고 페이지를 넘겼는데 방금 제가 무엇을 본 것인가 싶었습니다. 갑자기 웬 졸업식? 아, 첫사랑과 이별하는 자신의 눈물을 졸업식날 흘리는 눈물에 비유한 것이구나. 문장의 여운을 지키고 싶어 그날은 책 읽는 것을 멈췄습니다.
저는 이 작품에서 새로운 소설 장르를 발견했습니다. 요리 소설입니다. 오직 9장에만 나오긴 하지만, 뛰어난 요리 솜씨를 지닌 시어머니의 요리 과정을 묘사한 부분들을 보며 저도 모르게 배가 고파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물론 주인공은 아무리 맛있어봤자 재료 본연의 한계를 넘을 수 없다며 시니컬한 태도를 보이지만, 정말 상세하게 묘사를 한 것을 보면 그녀도 분명 굉장히 맛있어 했을 것입니다. 생활에 찌들어 살고 싶지 않다는 태도를 가졌기 때문에 최대한 냉소적으로 말한 것이겠지요. 화려한 시어머니의 칼질 소리를 들으며 "도마의 톱밥이 튀는 게 보이는 듯했다"라고 표현하는 것 역시 읽으며 즐거웠습니다.
작년 말에 등장하여 많은 논쟁을 일으켰던 설거지론, 이 소설을 읽으며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50, 60년대가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읽어도 이 책이 그렇게 낯설지 않은 이유입니다. 허영심이 강한 주인공, 가정에 헌신적인 남편을 두고 끊임없이 첫사랑을 떠올리는 주인공, 생활에 찌들어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가정에 대한 희생정신은 찾아보기 힘든 주인공. 심지어 자신의 내적 죄책감을 덜기 위해 남편에게 바람을 피워 보라고 말하는 부분은 역겹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보(첫사랑)와의 하루 여행에서 그 남자와의 동침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고 고백하며, 그로 인해 임신을 하더라도 돌아와 남편과 관계를 맺으면 완전범죄일 것이었다고 말하는 장면은 주인공에 대한 혐오감을 키우기에 충분했습니다.
춘희라는 인물을 통해 작가는 그동안 감춰져 있었던 우리의 불편한 진실을 끄집어 냈습니다. 저는 성매매가 그저 개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선택을 한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춘희는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위해 도덕의 상실을 택할 수밖에 없었고, "엠병"을 입에 달고 사는 그녀를 보며 측은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작품을 끝까지 이끌어온 공로 덕에 미운 정이라도 들법한 주인공보다는 차라리 춘희가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전쟁통에 현보와 보냈던 첫사랑의 시간들을 시에 비유하며, 그것들을 사치라고 말합니다. "그 암울하고 극빈하던 흉흉한 전시를 견디게 한 것은 내핍도 원한도 이념도 아니고 사치였다. 시였다.". 죽음과 가장 가까웠던 순간, 그녀로 하여금 살아남아 있게 한 것이 첫사랑이었기 때문에 평생 가도록 그 시절과 현보를 잊기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 후 다시 만난 현보와의 시간은 벌레들의 시간과 혼동되는 아이러니로 장치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가난한 진짜 사랑 대신 풍족한 가짜 사랑을 택한 자신을 "새 대가리"로 표현합니다. 애초에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노인이 파릇한 첫사랑을 고백하는 소설입니다. 서로를 안기까지 한 평생이 걸린 주인공과 그 남자. 작가는 전쟁이라는 민족의 아픔 때문에 주인공의 첫사랑 역시 비극적으로 그려내고 싶었던 것일까요? "새 대가리"라며 비판적으로 그녀를 설명했지만 그녀에게 일종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저에게 이 소설은 그다지 먼 옛날 할머니 시대의 이야기로만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제가 주인공을 이뻐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소설 속 모습이 요즘 우리의 삶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과거 사람들의 삶에 대한 태도는 앞으로도 어떤 의미에서든 계속될 것입니다. 되풀이되는 부엔디아 가문의 이야기처럼 말입니다.
사족을 붙이자면, "그날 많이 기다렸지"라 말하는 현보의 말은, 그가 시력을 잃었다는 설정 때문인지 몰라도 영화 클래식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고, 그 장면은 저에게 있어 울음벨이기 때문에, 읽으면서 책을 덮고 펑펑 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