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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육수 Jul 12. 2024

이왕이면 천재로 태어나지

연재소설


6. 이왕이면 천재로 태어나지


수인은 준후를 재우고 유튜브 앱을 열다가 알고리즘에 뜬 썸네일을 봤다. 


‘뇌의 선물, 서번트 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난 천재들’


영상을 재생하니 자폐 진단을 받았지만 절대음감을 가진 피아니스트, 한번 보면 사진처럼 머릿속에 저장하는 암기천재, 어릴 때부터 수학에 재능이 있어 8살인데 미적분을 공부하는 아이 등이 나왔다. 수인은 영상을 보다 중간에 확 꺼버렸다. 이런 아이들은 방송에서나 있는 이야기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다. 


수인도 준후가 진단을 받기 전까지 자신이 아는 자폐는 사람이나 세상일에는 관심이 없지만 어느 한 가지에 몰두해 한 분야에 대단한 능력이 있는 질환 아닌 질환이라고 막연하게나마 생각했다. 그들은 자폐이지만 동시에 천재라고 찬양을 받았다. 오히려 자폐로 인해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준후가 자폐 진단을 받은 뒤 수인은 자폐 안에서도 등급이 나뉘는 걸 알았다. 

고기능 자폐, 저기능 자폐, 중증 자폐, 경증 자폐. 

똑같은 자폐 진단을 받아도 어떤 아이는 쟤가 자폐 맞아?라고 의심이 들 정도로 정상 발달하는 아이가 있고 말이나 움직임은 둔하지만 한글이나 수학을 빨리 깨치거나 음악에 두각을 드러내는 등 어떤 한 분야에 특출 난 아이도 있다. 그리고 누가 봐도 쟤는 어디 아프구나라고 티가 나는 아이가 있다. 이렇게 증상이 다양하다 보니 자폐스펙트럼이란 단어로 뭉뚱그려 진단한다. 


수인은 준후가 자폐스펙트럼 진단을 받았을 때 절망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아이는 어떤 분야에 재능이 있을까란 생각을 어렴풋하게 했다. 다른 사람들도 준후가 자폐라고 하면 


“그럼 얘는 뭐 잘해?”


란 말이 튀어나왔다. 아마 드라마나 매체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자폐=천재, 괴짜’란 공식이 성립된 것 같았다. 수인의 친정부모님도 준후를 붙잡고 펑펑 울면서도 얘도 어느 분야에서는 뛰어날 수 있다며 수인을 위로했다. 


한 번은 자석 숫자를 가지고 열심히 줄 세우길래 수학을 일찍 깨우치려나 싶었다. 결혼 전부터 방치해 둔 전자피아노 앞에 준후가 앉아 두 손으로 건반을 땅땅거리는 모습을 보고 음악에 소질이 있나 싶었다. 물놀이하는 걸 너무 좋아해 다음에 수영선수로 키워야 되나 남편과 심각하게 얘기 나눈 적도 있다. 


하지만 이런 수인의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의사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천재요? 그런 건 아주 극소수입니다. 대부분의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아이들은 다른 장애도 같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적장애와 ADHD, 뇌전증 등 여러 복합 문제를 가진 아이들이 대부분이죠. 준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인은 준후가 자폐진단을 받은 것도 충격이었지만 아이가 지적장애에 ADHD까지 동반되었다는 사실이 더 충격이고 공포였다. 수인은 자신이 무너져 내린 것도 어쩌면 아이가 자폐지만 천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마저 없어져버려 그런 것은 아닌가 싶었다. 


정상발달에 가까운 고기능 자폐가 되거나 아님 분야의 뛰어난 인재가 되어야 하는데 준후가 지금 하는 행동으로 봐선 이도저도 아니게 클 것 같다. 수인은 조바심이 났다. 


'이왕이면 천재로 태어나지 왜 저 꼴로 태어났을까.'


이런 생각을 불쑥불쑥 떠올리는 자기 자신이 역겨우면서도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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