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6. 이왕이면 천재로 태어나지
수인은 준후를 재우고 유튜브를 켜 스크롤을 내리다가 문득 손가락을 멈췄다.
‘뇌의 선물, 서번트 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난 천재들’
영상을 클릭하니 자폐 진단을 받았지만 절대음감을 가진 피아니스트, 한번 보면 사진처럼 머릿속에 선명하게 저장하는 암기 천재, 어릴 때부터 수학에만 몰두해 8살에 미적분을 공부하는 아이 등이 나왔다. 그런 자식을 가진 부모는 인터뷰를 하면서 처음에는 자폐진단을 받아 절망했지만 우연히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고 키워줬다며 자랑스러운 얼굴을 뽐냈다. 댓글에는 대단하다, 경이롭다 등 감탄에서부터 저렇게 아이를 키워낸 부모들이 대단하다는 글도 있었고 저런 천재로 태어난 게 부럽다고 한 사람도 있었다. 수인은 영상을 보다가 중간에 확 끄면서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선물은 개뿔...”
선물이 아니라 재앙이다. 자폐가 선물이라는 이야기는 자기 자식이 자폐라 아니라서 저런 단어를 쓸 수 있는 거다. 이런 아이들은 방송에서나 볼 수 있는 케이스이지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수인의 짜증 섞인 말소리가 들렸는지 곤히 자던 준후가 얼굴을 찌푸리며 이불 안에서 꿈틀댔다. 수인은 그런 준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생각했다.
‘이왕이면 천재로 태어나지.’
수인도 준후가 진단을 받기 전까지 자신이 아는 자폐는 사람이나 세상 일에는 관심이 없지만 어느 한 가지에 몰입해 한 분야에 대단한 능력을 가질 수 있는 질환 아닌 질환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자폐이지만 동시에 천재라고 찬양을 받았다. 오히려 자폐로 인해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도 했다.
수인은 준후가 자폐 진단을 받았을 때 절망하면서도 한편으로 이 아이는 어떤 분야에 재능이 있을까란 막연한 기대를 품은 것도 사실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준후가 자폐라 하면
“그럼 애는 뭐 잘해?”
란 말이 튀어나왔다. 아마 드라마나 매체의 영향으로 사람들의 머리에 ‘자폐=천재, 괴짜’란 공식이 들어서 있는 것 같다. 수인의 친정부모님도 준후를 붙잡고 펑펑 울면서도 어쩌면 얘도 뭐 하나 잘할 수 있다며 수인을 위로해 줬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미디어를 통한 이미지가 얼마나 큰 편견인지 깨달았다. 수인은 자폐 안에서도 등급이 나뉘는 걸 알았다. 고기능/저기능/중증/경증 자폐. 똑같은 자폐 진단을 받아도 쟤가 자폐 맞아?라고 의심할 정도로 정상 발달로 보이는 아이가 있었고 사회성은 결여되었지만 문자나 기호에 특화되어 한글이나 수학을 빨리 깨치는 아이가 있었고 일찍이 음악에 두각을 드러내 국제 대회를 석권하는 등 어떤 한 분야에 특출 난 아이도 있었다. 그리고 누가 봐도 ‘아, 쟤는 이상한 아이구나.’라고 티가 나는 아이가 있었다. 이렇게 나타나는 증상이 다양하다 보니 자폐 스펙트럼이란 단어로 뭉뚱그려 진단한다.
정육점의 고기 등급처럼 고운 선홍빛깔에 우아한 마블링이 그려져 있는 먹음직스러운 투뿔에서부터 기름기가 거의 없고 씹으면 질겅거릴 것 같은 3등급까지 이 아이들도 고기등급처럼 매기는 것 같았다. 준후는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천재소리를 듣는 투뿔일까 아니면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취급도 안 하는 3등급 또는 등급 외일까. 어떻게 판정될지 수인은 궁금했다.
한 번은 수인이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거실에서 준후의 소리가 들렸다. 평소 “삐융, 삐융- 아바바바.”같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데 그날은 달그락거리는 그릇 사이로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하나, 두울, 세엣, 넷.”
깜짝 놀라 물을 끄고 뒤돌아보니 줄 세운 피규어를 하나하나 짚으며 준후가 숫자를 세고 있었다. 수인이 몇 번 준후에게 숫자 세는 걸 알려주긴 했지만 이렇게 금방 익힐 줄은 몰랐다. 수인은 준후의 모습을 당장 영상으로 찍어 남편에게 전송했고 남편은 그날 퇴근 때 비싼 수학 교구들을 한 아름 가득 사서 들어왔다.
“이런 거 인터넷으로 사면 쌀 텐데...”
남편에게 핀잔을 주면서도 눈으로는 열심히 책과 교구들을 훑어봤다. IQ가 높아지는 수학놀이라는 책의 제목처럼 보기만 해도 왠지 머리가 팽글팽글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준후가 이걸 본다면 수학 천재처럼 금방 다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결혼 전부터 방치해 둔 전자 피아노 앞에 준후가 앉아 단풍잎 같은 두 손으로 건반을 땅땅 치는 모습을 보고 음악에 소질이 있나 싶었고 물놀이하는 걸 너무 좋아해 다음에 수영선수로 키워야 하나 남편과 심각하게 이야기 나눈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수인의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의사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천재요? 그런 건 아주 극소수입니다. 대부분의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아이들은 다른 장애도 같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아요. 지적장애와 ADHD, 뇌전증 등 여러 복합문제를 가진 아이들이 대부분이죠. 준후의 경우도 지적장애를 동반한 자폐 스펙트럼입니다.”
의사는 객관적인 검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며 검사결과지를 보여줬다. 알 수 없는 영어들과 숫자들, 그래프가 난무한 검사지를 보며 눈앞이 어질어질했지만 비전문가인 수인이 봐도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헛된 희망마저 갖지 못하게 짓밟아버리는 의사 앞에서 수인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준후가 자폐 진단을 받은 것도 충격이었지만 아이가 지적장애까지 있다는 사실이 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수인은 자신이 무너져 내린 것도 어쩌면 아이가 자폐지만 천재가 될 수 있는 명분마저 없어져버려 그런 것은 아닌가 싶었다.
사실은 준후가 천재가 되지 못한다는 걸 조금씩 감지하고 있었다. 그때 남편이 사 온 수학 교구는 수인과 한두 번 하다가 흥미를 잃었는지 준후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피아노 개인레슨을 시켜봤지만 열정적으로 할 수 있다던 선생님도 두 손 두 발 들어버렸다. 뛰다가 넘어지기 일쑤고 움직임도 둔하여 수영 선수는커녕 수영 자체도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돌고래와 지능검사를 한다면 돌고래가 더 앞서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다.
정상발달에 가까운 고기능 자폐가 되거나 아님 한 분야를 미친 듯이 잘하는 뛰어난 인재가 되어야 그래도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텐데 준후는 이도저도 아닌, 세상의 낙오자가 될게 뻔했다. 같은 자폐라도 누군가는 재능이 있다면 축복받은 자폐라고 칭송받았지만 재능이 없다면 그는 그저 짐짝으로 외면받았다. 준후가 세상과 단절해도 상관없으니 재능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왕이면 천재로 태어나지 왜 저 꼴로 태어났을까.’
아이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불쑥 떠올리는 자신이 역겨우면서도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