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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육수 Jul 15. 2024

배변훈련

연재소설

7. 배변훈련


요즘 엄마의 눈빛이 날카롭다. 내가 집안 어디를 돌아다닐 때마다 나를 매의 눈으로 좇아본다. 그러다 내가 커튼 뒤에 숨어 있거나 방구석에 숨어 얼굴에 힘을 빡 주고 있으면 엄마는 부리나케 달려와 소리친다. 


“이준후! 응가는 화장실에서 해야지!”


그렇게 엄마가 소리를 지르면 엉덩이 끝으로 매달려있던 응가가 쏙 들어가 버린다. 요즘 엄마의 눈총과 잔소리에 며칠 째 응가를 못하고 있다. 


엄마는 요즘 집에 있으면 내 기저귀를 벗기고 팬티를 입힌다. 그리고 계속 유산균이나 요거나, 과일을 내 앞에 떠밀어 먹으라고 한다. 며칠 째 속이 부글거리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니 유혹을 참지 못하고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마치 엄마와 내 모습이 얼마 전에 본 농장동화책에서 본 거랑 비슷하다. 나는 배고픈 것과 싸는 것밖에 모르는 돼지이고 엄마는 돼지에게 계속 먹이를 퍼다 주는 농장주인이다. 그 농장주인과 엄마와 다른 점은 농장주인은 돼지가 포동포동하게 살찌우게 하기 위해 먹이를 주지만 엄마는 내가 싸게 하기 위해 먹을 것을 준다는 것이다. 아마 엄마는 내 응가를 나오게 만들어 변기에 앉혀보려는 속셈인 것 같다. 


며칠 전, 놀이치료실에서 수업 중 갑자기 아랫배가 살 아프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에서 간식으로 바나나가 나왔는데 옆에 앉은 친구가 안 먹길래 그 친구 것까지 다 먹어버렸다. 그게 벌써 신호가 온 모양인지 배에서 갑자기 꾸룩! 하는 소리가 나면서 점점 더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결국 기저귀에 응가를 했는데 선생님도 냄새를 맡은 모양인지 얼굴을 찌푸리며 코를 막았다. 그런데 그게 계속계속 나왔다. 내 엉덩이는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불룩해졌고 선생님은 급하게 엄마를 호출했다. 


하필 그날 엄마는 여분의 기저귀를 가져오지 않았고 결국 센터 화장실에서 “내가 못살아.”를 남발하며 뒤처리를 했다. 선생님들은 괜찮다고 했지만 엄마는 내 엉덩이를 씻은 세면대를 락스로 청소하며 결의에 찬 눈빛으로 나에게 말했다. 

“너 이제부터 변기에 응가해야 돼. 알겠어?”


나는 변기에 앉을 때 딱딱하고 차가운 촉감이 너무 싫다. 온몸에 소름이 쫘악 돋친다. 엄마는 식탁 의자와 똑같다고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가운데가 뻥 뚫려있는 것이다. 변기 안의 커다란 구멍을 보면 괴물의 입이 떠오른다. 그 입속으로 내 엉덩이와 몸뚱이가 쑥 빠져버려 잡아먹힐 것 같다. 엄마는 내가 괴물에게 잡아먹혀도 상관없는지 계속 앉히려고 난리다. 


내가 변기에 끌려가는 게 마치 TV에서 본 벌 받는 사람 같다. 엄마가 보는 드라마에서 머리는 산발인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아저씨를 봤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벌벌 떨면서 그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버튼을 누르자 그 아저씨는 으아아악-! 괴성을 지르고 온몸을 부르르 떨며 괴로워했다. 내가 딱 변기에 앉으면 그런 심정이다. 나의 엄청난 공포에도 상관없이 엄마는 내가 변기에 앉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면 다리를 꾹 누르며 억지로 앉힌다. 나도 그 아저씨처럼 벌을 받는 게 틀림없다. 


나의 변기 공포증 때문에 우리 집에는 작은 변기들이 엄청나게 많다. 엄마는 내가 변기와 친해질 수 있도록 변기 장난감으로 놀거나 아기 변기에 앉는 시늉을 하면 과자를 주곤 했지만 그때분이었다. 엄마의 고군분투를 보면서 안쓰럽긴 했지만 엄마가 강요하면 할수록 나는 변기가 꼴 보기 싫다. 이렇게 편한 기저귀가 있는데 엄마는 왜 계속 새로운 걸 시도하려는지 알 수 없다. 


하긴, 얼마 전에 가린 소변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처음에는 내가 아무 데나 쉬를 갈겨도 엄마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화를 참는 것 같았지만 이를 앙 다물며 “준후야, 쉬했네. 이제 쉬는 변기에서 하는 거야.”하며 세상 부드러운 말로 다독였다. 그렇게 한번, 두 번, 하루, 이틀, 일주일. 


나는 내 고추를 가지고 놀거나 거실에 흥건한 소변 물에 첨벙거리며 놀뿐 변기 근처에는 가지 않았다. 한 이 주일이 채 안 됐을 즈음 드디어 엄마의 인내심이 폭발했다. 언제 터지나 마음 졸이고 있었는데(물론 쉬를 할 때는 그런 걱정은 들지 않는다.) 엄마로서는 정말 많이 참은 거였다. 내가 쉬를 하면 엄마는 인상을 팍 구기며 소리를 질렀다. 


하루는 내가 소변볼 때쯤 되자 엄마 눈에는 내 배가 투명하게 보여 소변이 가득 찬 것이 다 보이는지 기가 막히게 커다란 통을 내 고추 앞에 갖다 댔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그런 걸 갖다 대면 쉬가 나오지 않았다. 

“쉬 할 때가 됐는데 아닌가?”

엄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엄마가 통을 지울 때였다. 나는 그제야 아랫배의 묵직함을 견딜 수 없어 소변을 팡하고 터뜨렸다. 시원하게 거실 바닥에 소변을 갈기는 나를 엄마는 벌레만도 못하다는 듯 노려봤다. 


며칠 전에는 엄마가 아침에 일어난 나에게 물을 연달아 잔뜩 먹이고 둘이 같이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는 벌서는 것처럼 화장실 한가운데 서 있고 엄마는 그 앞에 쪼그려 앉아 나를 지켜봤다. 그러더니 엄마가 갑자기 내 겨드랑이와 배를 막 간지럽히는 거였다. 화장실에서 놀고 싶은 건가 하며 나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러다 나를 간지럽히던 엄마의 손이 멈추더니 갑자기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지면서 빨리 오줌 싸라고 소리를 질렀다. 잘 놀다가 밑도 끝도 없이 화를 내는 엄마가 이상하게 보였다. 엄마와 나는 그렇게 1시간 정도 화장실에서 대치를 했다. 결국 보다 못한 아빠가 애 방광 터져 잡겠다는 말에 엄마는 긴 한숨을 내쉬며 기저귀를 채웠고 나는 곧바로 폭포수 같은 소리를 내며 기저귀에 소변을 눴다. 


그냥 이대로 기저귀에 계속 싸면 안 되는 걸까 왜 엄마 아빠는 내 대소변에 저리 아등바등거리는 걸까. 아마 다른 아이들은 이제 기저귀를 안 차는데 나만 차서 그런 것 같다. 

“너 어른 되어서도 기저귀 찰래? 제발 좀 떼자.”

이렇게 애원하는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난 별로 기저귀를 떼고 싶은 마음이 없다. 불편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불편한 건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는 엄마다. 엄마의 기준은 내가 아니라 항상 다른 아이들이다. 


그러던 저번 주 일요일, 엄마가 또 나에게 물을 잔뜩 먹이고 같이 화장실로 들어갔다. 엄마는 또 내 앞에서 내가 소변 보나 안보나 감시하다가 문득 가스 불에 뭘 얹어놨는지 부리나케 부엌으로 달려갔다. 나는 이때다 싶었다. 


쏴아아아아-

나는 시원하게 화장실 바닥에 소변을 눴다. 


“이준후, 물 틀고 장난치지 말라했..... 준후야! 너 화장실에서 쉬했어?!”

엄마는 내 소변을 마치 황금 물줄기라도 본 것처럼 물개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준후야, 엄마가 앞에서 지켜보고 있어서 쉬를 못한 거야? 엄마가 계속 감시하니까 참고 있었던 거야?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너 싸나 안 싸나 지켜보고 있었구나. 얼마나 답답했니.”

엄마는 나를 껴안고 울먹거렸다. 나는 엄마 말이 맞다고 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그냥 멀뚱히 있었다. 


그 뒤로 나는 쉬가 마려우면 화장실로 달려가 화장실 바닥에 오줌을 눴다. 아무도 없으니 마음 편하게 볼 수 있었다. 쉬하고 나오면 엄마는 거기에 물을 뿌려 치웠다. 그렇게 화장실에 익숙해지자 엄마는 내가 소변볼 때 조금씩 나와 변기와의 사이를 좁히도록 하다 결국 변기에 소변보는 걸 성공했다. 그날 엄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뽀로로 주스를 사주며 계속 잘했다고 칭찬해 줬다. 


쉬 가리는 것도 이렇게 힘든 여정이었는데 응가는 얼마나 더 힘들까. 앞이 까마득하다. 하지만 이번에 엄마의 비장한 표정을 보아하니 엄마도 이번엔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 소변에서 성공한 것처럼 대변도 성공해서 엄마한테 칭찬받아야지. 


오늘 하루만 기저귀에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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