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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육수 Jul 17. 2024

누구의 탓일까

연재소설


8. 누구의 탓일까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도로를 푹푹찌게 만들었지만 수인의 푹푹 나오는 한숨이 한여름의 열기보다 더 뜨거웠다. 


“왜 그래?”

보다 못한 남편이 핸들을 쥔 채 전방과 수인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오늘 왠지 어머님, 아버님께서 준후 어떻냐고 캐물어 보실 것 같은데.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냥 뭐 대충...”


남편은 말끝을 흐리더니 입을 꾹 다물고 운전에만 집중했다. 남편에게 답이 나오길 기대한 건 아니지만 이번에도 어물쩍 넘기는 모습에 수인은 짜증이 확 일었다. 남편의 이런 태도 때문에  무슨 일이 생기면 시부모님은 항상 수인에게 물어보고 닦달했다. 결혼식이며 집을 살 때나 경조사 때, 무슨 이벤트가 생겼을 때 시원치 않은 답변을 하는 남편 대신 수인이 말씀드리면 그제야 시부모님은 그렇냐고 수긍하셨다. 


이번에도 자기는 쏙 빠지려는 남편에게 한마디 날리려고 입을 열었다가 준후가 엄마를 찾는 소리에 입을 다물어버렸다. 뒷좌석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좋아하던 준후는 배가 고픈지 과자봉지를 가리키며 찡찡거렸다. 준후에게 과자봉지를 뜯어주며 수인은 시부모님의 질문에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시부모님도 준후가 이상함을 감지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기다리면 잘 크겠지 싶었지만 한 살 터울의 조카와 달라도 너무 달라 시부모님은 준후를 볼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하셨다. 조카는 준후보다 어리지만 제법 어려운 말도 잘하고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안겨 애교를 많이 부린다. 평소 TV를 잘 안 보여주는 시누이 대신 손자 말이라면 껌뻑 죽는 할머니에게 조르르 달려가 TV 보여 달라고 하는 영악함도 있다. 그 나이에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걸 조카는 보여주지만 준후는 보여줄 수 없었다. 쉴 새 없이 조잘대는 조카 옆에서 준후는 입 뻥긋하지 않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본채 만채 했다. 


“아이고, 우리 이쁜 내 새끼.”

하며 할아버지가 반갑게 다가가도 준후는 할아버지의 품을 벗어나 커튼 뒤에 숨기 바빴고 시아버지는 허공에 떠있는 자신의 손길이 무안한 지 헛기침을 하며 “쟤는 왜 저러지.”하며 혼자 중얼거리셨다. 그런 광경을 바라보는 수인도 무안해 준후를 억지로 할아버지 앞에 억지로 끌고 오며 할아버지 안아 드리라고 일갈하는 풍경이 항상 연출되어 왔다. 


시어머니는 전화할 때마다 망설이 듯하면서 뒤에 항상 수인에게 물어봤다. 

“준후는 요즘 말 좀 하니? 괜찮은 거 맞지?”


뭐가 괜찮냐고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수인은 그저 매번 괜찮다고 말씀드렸고 수인의 이 두루뭉술한 대답이 시어머니를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저번에 서울의 대학병원 진료 예약도 시누이의 지인을 통해 한 것이니 시부모님 귀에도 분명히 들어갔을 것이다. 이젠 숨기려야 숨길 수 없다. 


3시간을 달려온 시댁에서는 문 밖에서부터 고소한 음식 향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현관에 들어서자 복도에서 우다다다- 발소리가 들리더니 조카 도윤이가 달려왔다. 

“안녕하세요 외삼촌, 외숙모!”

도윤이의 우렁찬 목소리 때문인지 익숙지 않은 공간 때문인지 준후가 또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수인이 부엌으로 가니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벌써 잡채며 갈비찜이며 그득그득해놓으셨다. 


“이제 오니?”

아들과 손자에게는 눈길을 주면서 며느리는 쳐다보지 않던 시어머니가 툭 말씀하셨다. 시어머니는 말 그대로 그냥 이제 오냐는 뜻으로 한 말씀일 수 있지만 수인에게는 문자 그대로 들리지 않았다. 해가 중천인데 새벽같이 안 달려오고 이제 오냐는 말을 네 글자로 압축해서 말씀하신 것 같았다. 


“준후가 새벽에 잠을 설쳐서요, 준비가 좀 늦었네요.”

수인은 자신의 말이 구차한 변명처럼 들렸지만 사실이긴 했다. 요즘 새벽마다 준후는 발작처럼 일어나 소리 지르고 온몸을 뒤집어가며 울어 수인도 며칠째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오늘 새벽에도 그 난리를 쳐서 남편도 결국 잠을 설쳤다. 해가 부옇게 뜰 무렵 준후는 울다 지쳐 잠들었고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남편도 눈 좀 붙여야 했기 때문에 출발시간이 늦어졌다. 


입 안에 커다랗게 헌 상처를 혀로 핥으며 수인은 두 팔을 걷어 음식들이며 케이크를 거실에 있는 상으로 옮겼다. 케이크의 주인공인 시아버지는 오랜만에 다 같이 모여 왁자지껄한 집안 분위기가 즐거우신 모양인지 연신 허허거리며 웃으셨다. 이 좋은 분위기에서 도저히 준후 이야기를 꺼낼 자신이 없어진 수인은 오늘은 제발 준후에 대해 묻지 않길 바라며 마음을 졸였다. 도윤이는 오랜만에 보는 사촌 형 준후가 반가운지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형아, 나랑 같이 로봇 만들자.” 하며 방으로 데리고 갔다. 


정신없이 생신상을 차리고 밥을 먹는 사이 준후는 오랜만에 사람들이 많은 게 어색한지 커튼 뒤로 숨어 버렸다. 

“그래, 저번에 갔던 대학병원에서는 준후에 대해 뭐라 하더니?”

상을 물리다 말고 시어머니가 그런 준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생갔났다는 듯 물었다. 

“아, 그게...”

수인은 난처해하며 남편을 쳐다봤지만 남편은 못 들은 건지 아님 못 들은 척하는 건지 화장실로 휙 가버렸다. 


“준후 때문에 병원 여러 군데 들렀다고 하던데. 거기서 애가 뭐 때문에 늦는지 얘기했을 거 아니니.”

대충 얼버무리고 설거지를 하려던 수인을 제지하고 시어머니는 식탁에 앉아 수인을 빤히 쳐다봤다. 이번에는 반드시 정확한 답변을 듣고야 말겠다는 고집스러운 눈매가 수인을 압박했다. 이렇게 기분 좋은 가족 행사에 굳이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아 이번에도 그냥 별것 아니라고 말씀드리려다 수인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겠나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부모님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만 계속 시부모님이 넘겨짚고 왜 속시원히 말을 안 하냐고 괴롭힘을 당하느니 차라리 지금 매를 맞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준후의 사정을 이해하셔서 나중에 준후를 돌볼 때도 도움을 주실 지도 모른다는 생각들이 복잡한 실타래처럼 엉키며 수인은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준후.... 자폐래요.”

“뭐?”


시어머니는 눈을 꿈뻑꿈뻑하며 수인을 쳐다봤다.

“다시 한번 말해봐. 응? 내가 잘못 들은 거지? 응?”

시어머니는 옆에 있는 시누이를 툭툭 치면서 자신이 잘못 들은 거 맞냐고, 내 귀가 이상한 거냐고 계속 확인했다. 거실에서 들리던 시아버지와 아주버님의 대화도 어느 순간 뚝 멈춰있었다. 교통사고 현장을 보여주며 건조한 목소리로 사건경위를 설명하는 TV속 아나운서의 목소리만이 수인의 귀에 들려올 뿐이었다. 


“아이고!”

시어머니는 딱히 부정하지 않는 수인을 바라보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는 식탁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셨다. 곧바로 시아버지의 깊은 한숨이 거실 가득 채워졌고 잔칫날의 공기가 한순간에 무겁게 변하는 걸 수인은 피부로 느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우리 집안에 왜 이런 일이 생긴 거니, 도대체.”

시어머니는 울먹거리셨다. 시어머니는 준후를 많이 예뻐했다. 내 딸이 낳은 자식도 예쁘지만 친손주가 더 정이 간다는 말을 시어머니는 수인에게 살짝 귀띔한 적이 있었다. 자신의 품에서 벗어나려는 친손주를 애틋하게 바라보고 옥수수를 좋아하는 준후를 위해 매년 강원도산 옥수수를 100개씩 사 손수 쪄서 택배로 보내주셨다. 남편이나 자식들에게는 무뚝뚝하지만 준후에게는 “아이고, 우리 예쁜 똥강아지.” 하며 준후가 뭐 할 때마다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손자가 자폐 진단을 받은 게 믿기지 않았을 것이다. 


“도대체 왜 저렇게 태어난 거니. 너희 둘 다 멀쩡한데 준후가 왜 그러는 거냐고!”

시어머니는 수인의 등을 때리면서 울부짖었다. 시어머니의 무너진 모습에 수인도 억장이 무너졌다. 수인이 수없이 고민했던 것들을 어머님도 똑같이 쏟아내고 계셨다. 


“준후 낳을 때 네가 난산해서 그런 거 아니니? 그때 14시간 꼬박 걸려서 낳았잖아. 의사가 제왕절개 하자 해도 네가 한사코 자연분만 고집해서 그런 거 아니니? 아니면, 네가 갑자기 직장을 다녀서 그런 건가? 아님, 너희 집안에 혹시...”

“엄마! 올케한테 그게 무슨 말이야!”

듣다 못한 시누이가 시어머니를 말렸지만 이미 화살은 수인의 가슴에, 온몸에 꽂혔다. 부모의 탓이 아니라고 하지만 수인은 계속 자신을 갉아먹으며 죄책감을 가졌었다. 준후가 저리 된 게 자신 때문인 것 같아 마음한구석이 멍들어 있었는데 그 멍든 곳을 시어머니는 칼로 후벼 팠다. 


시어머니 당신도 어떻게든 이유를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원망의 대상을 찾고 싶었을 것이다. 수인도 시어머니처럼 누군가 붙잡고 묻고 늘어지고 때리고 소리치고 싶었다. 왜 나에게, 내 자식에게 이런 일이 생겼냐고. 의사는 의학적으로는 유전적 요인이나 환경적, 신경발달적 요인 등이라고 하지만 결론은 알 수 없다는 답답한 답변만 늘어놓았다. 이런 애매모호한 것의 끝에는 모성애가 있었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자식이 잘못되면 무조건 엄마 탓이 되었다. 


분명 준후의 몸속에 남편의 핏줄도 있는데 왜 자식 문제 생길 때만 엄마 탓을 하는 걸까. 어머님 핏줄도 의심해 봐야 되지 않냐고 독하게 따지고 싶었지만 독하게 따져 들 힘도, 용기도 나지 않았다. 정말 내 탓인 것만 같아 한없이 눈물만 흘렸다. 가족들 중 수인을 위로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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