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7. 배변훈련
요즘 엄마의 눈빛이 날카롭다. 내가 집안 어디를 돌아다닐 때마다 나를 매의 눈으로 좇아본다. 그러다 내가 커튼 뒤에 숨어 있거나 방구석에 숨어 얼굴에 힘을 빡 주고 있으면 엄마는 부리나케 달려와 소리친다.
“이준후! 응가는 화장실에서 해야지!”
그렇게 엄마가 소리를 지르면 엉덩이 끝으로 매달려있던 응가가 쏙 들어가 버린다. 요즘 엄마의 눈총과 잔소리에 며칠 째 응가를 못하고 있다.
엄마는 요즘 집에 있으면 내 기저귀를 벗기고 팬티를 입힌다. 그리고 계속 유산균이나 요거나, 과일을 내 앞에 떠밀어 먹으라고 한다. 며칠 째 속이 부글거리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니 유혹을 참지 못하고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마치 엄마와 내 모습이 얼마 전에 본 농장동화책에서 본 거랑 비슷하다. 나는 배고픈 것과 싸는 것밖에 모르는 돼지이고 엄마는 돼지에게 계속 먹이를 퍼다 주는 농장주인이다. 그 농장주인과 엄마와 다른 점은 농장주인은 돼지가 포동포동하게 살찌우게 하기 위해 먹이를 주지만 엄마는 내가 싸게 하기 위해 먹을 것을 준다는 것이다. 아마 엄마는 내 응가를 나오게 만들어 변기에 앉혀보려는 속셈인 것 같다.
며칠 전, 놀이치료실에서 수업 중 갑자기 아랫배가 살 아프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에서 간식으로 바나나가 나왔는데 옆에 앉은 친구가 안 먹길래 그 친구 것까지 다 먹어버렸다. 그게 벌써 신호가 온 모양인지 배에서 갑자기 꾸룩! 하는 소리가 나면서 점점 더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결국 기저귀에 응가를 했는데 선생님도 냄새를 맡은 모양인지 얼굴을 찌푸리며 코를 막았다. 그런데 그게 계속계속 나왔다. 내 엉덩이는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불룩해졌고 선생님은 급하게 엄마를 호출했다.
하필 그날 엄마는 여분의 기저귀를 가져오지 않았고 결국 센터 화장실에서 “내가 못살아.”를 남발하며 뒤처리를 했다. 선생님들은 괜찮다고 했지만 엄마는 내 엉덩이를 씻은 세면대를 락스로 청소하며 결의에 찬 눈빛으로 나에게 말했다.
“너 이제부터 변기에 응가해야 돼. 알겠어?”
나는 변기에 앉을 때 딱딱하고 차가운 촉감이 너무 싫다. 온몸에 소름이 쫘악 돋친다. 엄마는 식탁 의자와 똑같다고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가운데가 뻥 뚫려있는 것이다. 변기 안의 커다란 구멍을 보면 괴물의 입이 떠오른다. 그 입속으로 내 엉덩이와 몸뚱이가 쑥 빠져버려 잡아먹힐 것 같다. 엄마는 내가 괴물에게 잡아먹혀도 상관없는지 계속 앉히려고 난리다.
내가 변기에 끌려가는 게 마치 TV에서 본 벌 받는 사람 같다. 엄마가 보는 드라마에서 머리는 산발인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아저씨를 봤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벌벌 떨면서 그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버튼을 누르자 그 아저씨는 으아아악-! 괴성을 지르고 온몸을 부르르 떨며 괴로워했다. 내가 딱 변기에 앉으면 그런 심정이다. 나의 엄청난 공포에도 상관없이 엄마는 내가 변기에 앉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면 다리를 꾹 누르며 억지로 앉힌다. 나도 그 아저씨처럼 벌을 받는 게 틀림없다.
나의 변기 공포증 때문에 우리 집에는 작은 변기들이 엄청나게 많다. 엄마는 내가 변기와 친해질 수 있도록 변기 장난감으로 놀거나 아기 변기에 앉는 시늉을 하면 과자를 주곤 했지만 그때분이었다. 엄마의 고군분투를 보면서 안쓰럽긴 했지만 엄마가 강요하면 할수록 나는 변기가 꼴 보기 싫다. 이렇게 편한 기저귀가 있는데 엄마는 왜 계속 새로운 걸 시도하려는지 알 수 없다.
하긴, 얼마 전에 가린 소변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처음에는 내가 아무 데나 쉬를 갈겨도 엄마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화를 참는 것 같았지만 이를 앙 다물며 “준후야, 쉬했네. 이제 쉬는 변기에서 하는 거야.”하며 세상 부드러운 말로 다독였다. 그렇게 한번, 두 번, 하루, 이틀, 일주일.
나는 내 고추를 가지고 놀거나 거실에 흥건한 소변 물에 첨벙거리며 놀뿐 변기 근처에는 가지 않았다. 한 이 주일이 채 안 됐을 즈음 드디어 엄마의 인내심이 폭발했다. 언제 터지나 마음 졸이고 있었는데(물론 쉬를 할 때는 그런 걱정은 들지 않는다.) 엄마로서는 정말 많이 참은 거였다. 내가 쉬를 하면 엄마는 인상을 팍 구기며 소리를 질렀다.
하루는 내가 소변볼 때쯤 되자 엄마 눈에는 내 배가 투명하게 보여 소변이 가득 찬 것이 다 보이는지 기가 막히게 커다란 통을 내 고추 앞에 갖다 댔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그런 걸 갖다 대면 쉬가 나오지 않았다.
“쉬 할 때가 됐는데 아닌가?”
엄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엄마가 통을 지울 때였다. 나는 그제야 아랫배의 묵직함을 견딜 수 없어 소변을 팡하고 터뜨렸다. 시원하게 거실 바닥에 소변을 갈기는 나를 엄마는 벌레만도 못하다는 듯 노려봤다.
며칠 전에는 엄마가 아침에 일어난 나에게 물을 연달아 잔뜩 먹이고 둘이 같이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는 벌서는 것처럼 화장실 한가운데 서 있고 엄마는 그 앞에 쪼그려 앉아 나를 지켜봤다. 그러더니 엄마가 갑자기 내 겨드랑이와 배를 막 간지럽히는 거였다. 화장실에서 놀고 싶은 건가 하며 나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러다 나를 간지럽히던 엄마의 손이 멈추더니 갑자기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지면서 빨리 오줌 싸라고 소리를 질렀다. 잘 놀다가 밑도 끝도 없이 화를 내는 엄마가 이상하게 보였다. 엄마와 나는 그렇게 1시간 정도 화장실에서 대치를 했다. 결국 보다 못한 아빠가 애 방광 터져 잡겠다는 말에 엄마는 긴 한숨을 내쉬며 기저귀를 채웠고 나는 곧바로 폭포수 같은 소리를 내며 기저귀에 소변을 눴다.
그냥 이대로 기저귀에 계속 싸면 안 되는 걸까 왜 엄마 아빠는 내 대소변에 저리 아등바등거리는 걸까. 아마 다른 아이들은 이제 기저귀를 안 차는데 나만 차서 그런 것 같다.
“너 어른 되어서도 기저귀 찰래? 제발 좀 떼자.”
이렇게 애원하는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난 별로 기저귀를 떼고 싶은 마음이 없다. 불편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불편한 건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는 엄마다. 엄마의 기준은 내가 아니라 항상 다른 아이들이다.
그러던 저번 주 일요일, 엄마가 또 나에게 물을 잔뜩 먹이고 같이 화장실로 들어갔다. 엄마는 또 내 앞에서 내가 소변 보나 안보나 감시하다가 문득 가스 불에 뭘 얹어놨는지 부리나케 부엌으로 달려갔다. 나는 이때다 싶었다.
쏴아아아아-
나는 시원하게 화장실 바닥에 소변을 눴다.
“이준후, 물 틀고 장난치지 말라했..... 준후야! 너 화장실에서 쉬했어?!”
엄마는 내 소변을 마치 황금 물줄기라도 본 것처럼 물개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준후야, 엄마가 앞에서 지켜보고 있어서 쉬를 못한 거야? 엄마가 계속 감시하니까 참고 있었던 거야?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너 싸나 안 싸나 지켜보고 있었구나. 얼마나 답답했니.”
엄마는 나를 껴안고 울먹거렸다. 나는 엄마 말이 맞다고 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그냥 멀뚱히 있었다.
그 뒤로 나는 쉬가 마려우면 화장실로 달려가 화장실 바닥에 오줌을 눴다. 아무도 없으니 마음 편하게 볼 수 있었다. 쉬하고 나오면 엄마는 거기에 물을 뿌려 치웠다. 그렇게 화장실에 익숙해지자 엄마는 내가 소변볼 때 조금씩 나와 변기와의 사이를 좁히도록 하다 결국 변기에 소변보는 걸 성공했다. 그날 엄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뽀로로 주스를 사주며 계속 잘했다고 칭찬해 줬다.
쉬 가리는 것도 이렇게 힘든 여정이었는데 응가는 얼마나 더 힘들까. 앞이 까마득하다. 하지만 이번에 엄마의 비장한 표정을 보아하니 엄마도 이번엔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 소변에서 성공한 것처럼 대변도 성공해서 엄마한테 칭찬받아야지.
오늘 하루만 기저귀에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