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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육수 Jul 19. 2024

사촌

연재소설

9. 사촌


밥상을 치우다 말고 엄마가 울고 있었다. 커튼 뒤에 숨어 있던 나는 엄마의 눈물에 또 왜 저러나 싶다. 다른 가족들을 보니 엄마를 원망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 같다.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았는데...


왜 내 얘기를 할 때마다 엄마는 저렇게 우는 걸까. 왜 내 얘기를 할 때마다 다른 사람들은 엄마에게 뭐라고 하는 걸까.


“형아, 우리 큰방 가서 놀자.”

눈치 빠른 도윤이는 어른들의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거실에서 놀다 말고 나를 할머니방에 끌고 갔다. 방에는 벌써 도희 누나가 돌침대에 자리를 꿰차고 누워 있었다.


도희누나, 도윤이는 고모의 아이들로 각각 나보다 한 살 위, 한 살 아래 사촌들이다. 도희 누나는 남동생들이랑 놀이 수준이 안 맞다나 뭐라나 하면서 자기 혼자 유튜브 보거나 집에서 가져온 동화책을 보곤 했다. 도윤이는 동생이지만 나보다 말도 많고 뛰기도 엄청 잘 뛴다. 사람을 좋아해서 할머니, 할아버지는 물론 우리 엄마, 아빠를 보면 안기고 달려들며 좋아한다. 나에게도 헤드락을 걸거나 나를 넘어 뜨리는 등 애정표현을 과격하게 할 때도 있어 나는 도윤이와 같이 있으면 슬금슬금 피한다.


원래 도윤이는 나처럼 어린이집에 다녔는데 최근에 누나가 다니는 학교의 병설유치원으로 옮긴 모양이다. 나한테 계속

"형아는 계속 어린이집 다니지? 나는 이제 병설 유치원 다닌다아~!"

하며 뻐기는데 왜 뻐기는지 알 수 없다. 그러든가 말든가.


방에 들어와도 딱히 할 게 없던 나는 우리 집에서 가져온 ‘준후 상자’를 꺼냈다. 이건 엄마가 붙여준 이름인데 내가 좋아하는 공룡 피규어, 미니 자동차, 종이접기 등이 들어 있는 상자다. 이건 엄마, 아빠도 절대 건드릴 수 없는 내 소중한 보물이다. 내가 상자를 꺼내자 도윤이가 호기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우와, 이거 뭐야? 신기한 거 많다! 나도 갖고 놀래!!”


도윤이가 불쑥 손을 집어넣어 내 상자에 있는 공룡들을 꺼냈다. 감히 내 보물들을 건드려?

“아아아악!”

나는 화가 나서 소리를 꽥 질렀다. 하지만 누나의 핍박으로 단련돼서 그런지 도윤이는 놀라거나 타격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상자 안에 있는 것들을 마구 털어내고 있었다. 나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소리를 질렀고 계속 화가 나서 내 머리며 배를 때렸다. 도윤이는 그런 내 모습이 재밌다는 듯이 깔깔 웃으면서 공룡을 내 눈앞에 들이밀었다가 뒤로 빼며 나를 놀렸다.


“헤헤, 이거 뺏어봐라!”


아이들 소리에 놀란 어른들이 방으로 들어왔고 눈이 퉁퉁 부은 엄마와 고모가 우리를 중재에 나섰다.


“형꺼 뺏으면 안 돼.”

“동생한테 한번 빌려주자. 같이 놀아야지.”


엄마와 고모는 각자의 아이에게 다그쳤지만 오히려 도윤이는 화내는 내 모습을 따라 하며 즐거워했고 옆에 가만히 있던 도희 누나도 갑자기


"장난감은 같이 사이좋게 갖고 놀아야 되는데 준후 혼자 갖고 놀려고 했어요! 준후는 욕심쟁이예요!"

라며 자기 동생을 두둔하는 것이다.


서로 공룡 장난감을 가지려는 혈투에서 목소리가 작은 나는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최종 승자인 도윤이가 의기양양하게 장난감을 손에 쥐었고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태로 도윤이를 원망의 눈빛으로 쳐다봤다.


엄마는 입으로는 사이좋게 놀라고 했지만 눈으로는 ‘네 것은 네가 챙겨야지! 뺏어봐!’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엄마의 표정은 나를 혼란스럽게만 만든다.


사촌들과 만나면 나는 늘 뒤로 밀린다. 할머니가 쟁반에 과자를 가득 담아 같이 나눠먹으라고 하면 사촌들은 서로 많이 먹으려고 두 손으로 한 움큼 자기의 몫을 앞에 챙기고 팔로 막았다. 나는 결국 남은 과자부스러기만 주워 먹을 뿐이다.


어른들은 행동이 예측되어 있고 나에게 맞춰주지만 아이들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행동들을 불쑥불쑥 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당황스럽고 다가오는 게 무섭다. 내가 아는 공식대로 아이들은, 세상은 반응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일상대로 말하고 움직이고 노는 것일 테지만 나에게는 그게 이해하기 어렵다.


엄마는 서로 어울리면서 아이들과 노는 법, 싸우는 법, 함께 지내는 법을 알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세상 어떤 것보다 어렵게 느껴진다. 그래서 혼자인 게 편하다.


어린이집에서 무인도에 대해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는 섬. 그곳에 가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게 불을 켜거나 모래사장에 커다랗게 SOS를 그리라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섬에 갇히고 싶다. 나만의 세상에서 살고 싶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사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게.


하지만 엄마는 평생 혼자 살 수 없다며 나를 계속 세상 밖으로 내보내려 한다. 그런 엄마의 눈빛도 나를 못 미덥다는 듯 불안하게 떨리긴 마찬가지다.


“형아 이거 돌려줄 테니까 화 풀어. “

밤이 되어 집에 갈 때 도윤이가 자기가 뺏은 공룡을 나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베실베실 웃으며 나에게 미안해하는 녀석을 보면 나쁜 애는 아닌 것 같다. 그냥 얘도 나랑 놀고 싶어 할 뿐인데. 아직 내가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고 사람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


“형, 다음에 형 집에 놀러 갈게!”

우리 집에 놀러 오면 내 물건과 공간과 마음을 헤집을게 뻔한데.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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