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10. 아빠
수인은 마트에서 장을 보다 맥주코너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살까 말까 잠시 망설였지만 곧 500ml 캔 4개를 집어 카트에 넣었다.
시댁에 다녀온 뒤로 수인과 남편이 말을 안 한 지 5일이 지났다. 수인이 시어머니의 말에 공격을 당해도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 때문이냐고 추궁하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보다, 남일처럼 멀뚱히 쳐다만 보는 남편이 죽도록 미웠다.
네가 그러고도 남편이냐고, 네가 아빠 자격이냐 있냐고 퍼부어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할 힘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수인의 냉랭함이 온몸에 퍼져선지 남편도 말을 걸지 않았다. 5일 내내 집안은 침울한 기운만 맴돌았고 그 분위기를 알턱이 없는 준후만 평소처럼 소리 지르고 방방 뛸 뿐이었다.
이제 말을 걸어오지 않을까, 먼저 미안하다고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남편에게는 그런 기미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부부들은 싸우면 치열하게 말다툼을 하거나 고성이 오가고 육탄전을 벌인다지만 수인과 남편은 말을 안 하는 게 싸움의 시작이었다. 침묵과 냉랭함 속에서 그들의 기싸움이 이어졌고 그 고요함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깨는 자가 지는 게임이었다.
누구의 잘못으로 발발한 싸움이건 그 고요함을 견디지 못하는 건 언제나 수인이었고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 말을 받아주며 싸움의 종결을 맞이했다. 한 번은 화해 후 수인이 남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왜 먼저 사과하지 않냐고.
“너무 미안하니까. 너무 미안해서 먼저 말을 거는 것 자체가 염치없게 느껴져.”
남편은 그런 사람이었다. 용기도, 자신감도 없는 사람이지만 누구보다 생각 많고 진심인 사람.
연애 때도 그렇고 결혼 후에도 그렇고 수인과 남편은 맥주 마시는 걸 좋아했다. 편의점에서 세계맥주를 종류별로 사서 마시기도 하고 신혼여행도 독일 옥토버페스트에 맞춰서 떠났다. 둘이 퇴근 후 집 앞에 있는 맥줏집에 가 잔을 기울이며 누가 더 힘들었나 입씨름하는 것도 하루의 낙이었다. 나중에는 둘이 엄청 진지하게 퇴직 후에 맥줏집을 차릴까 하며 고민한 적도 있었다.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면 수인은 얼굴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만약 준후를 낳지 않았다면, 남편과 둘만 있었다면 맥주를 마시며 소소한 고민을 안고 사는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준후를 재우고 거실로 나오니 남편은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수인이 맥주를 들고 쓱 다가가자 남편이 토끼 눈으로 수인을 쳐다보다 곧 얼굴 근육을 씰룩거리며 테이블을 세팅했다. 맥주를 앞에 놓고 서로 나란히 앉긴 했지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수인은 정신없이 바뀌는 TV화면만 쳐다봤다.
“... 미안해.”
목이 잠긴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편은 TV를 보고 있었지만 눈은 저 먼 허공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못 하는 사람이, 그 말을 하면 염치가 없다는 사람이 먼저 말을 꺼낸 게 신기했다. 뭐 때문에 미안하다는 건지, 진심으로 미안하긴 한 건지 수인은 의심스러운 눈길로 남편을 쳐다봤다.
“그때 내가 엄마한테 이야기했어야 하는데. 혼자 감당하게 내버려 둬서 미안해. 내가 참 그때... 용기가 안 나더라. 그걸 내 입 밖으로 꺼내는 게.”
맥주캔을 따면서 남편은 고개를 돌렸지만 수인은 남편의 훌쩍거림을 들을 수 있었다.
수인이 밤마다 울 때도, 의사의 진단을 듣고 오열할 때도 남편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저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수인이 바쁘게 센터를 다니고 다른 치료가 없나 이리저리 알아볼 때도 남편은 알아서 하라는 듯 별 관심이 없었다.
“네가 준후 때문에 고생하는 거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척했어. 난... 난 인정할 수 없었거든. 우리 둘 다 아무 문제 없이 잘 태어났고 잘 컸는데 왜 내 자식이 이렇게 태어났어야 하는지. 왜 우리가 이런 고통을 껴안고 살아야 하는 건지.”
수인은 잠자코 맥주만 홀짝거렸다. 그렇게 맛있던 맥주가 오늘은 아무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 초등학교 때 말이야...”
“초등학교?”
준후 이야기하다 갑자기 웬 자기 어릴 적 이야기인가 싶어 수인은 남편을 뜬금없는 눈으로 쳐다봤다.
“나 초등학교 때 한용근이란 애가 있었어. 걔가 말도 못 하고 화나면 소리 지르고 수업시간에 교실 돌아다니는 애였거든. 걔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말이 ‘하지마’였는데 애들이 계속 자기를 괴롭히니까 엄마한테 그 말을 배웠나 봐. 걔는 화가 나면 온몸에 힘을 주고 부르르 떨면서 ‘하지마’라고 소리쳤거든. 근데 그게 또 재밌으니까 애들은 계속 괴롭히고 한용근은 계속 하지마하며 소리 질렀어. 선생님은 괴롭힌 애들보다 소리 지르는 한용근을 시끄럽다고 혼냈지. 나는 용근이를 괴롭히진 않았지만 가까이 가지도 않았어. 엮이기 싫었거든. 그냥 난 친구들이랑 공차기 바빴어. 가끔 용근이 엄마가 학교에 와서 용근이 뒤치다꺼리하고 애 찾으러 돌아다니는 걸 본 기억이 있는데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지나쳤지.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는데 준후 자폐라는 소리를 듣는데 갑자기 걔가 생각난 거야. 같이 공 찼던 친구들 이름은 다 까먹었는데 말도 안 걸어봤던 그 녀석 이름만은 또렷하게 기억나는 거야.”
수인도 생각해 보면 자신의 교실에서도 그런 아이들이 한 명씩은 있었던 것 같았다. 무시당하거나 놀림거리가 되었던 아이들. 그때는 그 친구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자폐나 ADHD, 지적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용근이가 왜 떠올랐는지 모르지만 어쩌면 내가 걔한테 아무 관심도 없어서, 나랑은 상관없는 친구라고 자만해서 벌을 받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준후도 나중에 용근이처럼 괴롭힘 당하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수인은 잠자코 남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준후가 자폐판정받은 이후로 남편과 이렇게 길게 이야기해 본 적이 처음이었다.
“준후 자폐라는 소리 듣고 어떻게 살아가야 되나 싶더라. 아무리 일찍 치료를 하면 지금보다 낫다고 하지만 이게 완전한 치료도 아니잖아. 감기처럼 약 먹고 뚝딱 낫는 병도 아니고. 지금 치료센터를 다녀도 솔직히 발전이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어. 그냥 미래는 아주 캄캄한데 우리는 거길 그저 더듬거리며 가다가 빠져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우리가 용근이 엄마처럼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싶었는데 난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어. 남들은 특별한 아이라도, 사랑으로 키울 수 있다고 하지만 그건 자기 이야기가 아니니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거야.”
수인은 맥주캔의 둥근 테두리를 손가락으로 계속 문질렀다. 남편도 수인처럼 아파하고 좌절하고 슬퍼하고 있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다만 자신은 그런 슬픔을 밖으로 표출했지만 남편은 슬픔과 좌절을 자신의 안으로 계속 삭히고 있어 몰랐다.
“어제 퇴근하고 아파트 공동출입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는데 저 멀리서 어떤 꼬마애 소리가 들리는 거야. 계속 ‘아빠, 같이 가!’ 하는 거야. 그런데 걔가 내 쪽으로 오면서 소리치는 거야. 뭐지 하면서 기다리니 준후 만한 아이가 내 앞에 서더라고.”
“자기 아빠인 줄 알고 너한테 온 거야?”
“응. 걔가 날 보더니 ‘엇, 우리 아빠가 아니네,’하며 가더라고. 그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하더라. 그렇게 다정하게, 애타게 아빠를 부르는 소리를 처음 들어봤어. 준후는 한 번도 날 그렇게 불러본 적이 없잖아. 그 순간 우리 준후도 날 이렇게 불러주면 얼마나 좋을까...”
남편과 수인의 맥주캔에 물방울이 가득 맺혀 테이블 바닥으로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내가 무슨 생각까지 한 줄 알아?”
“무슨 생각?”
남편은 입술을 핥으며 잠시 망설이더니 말했다.
“뉴스 보면 애가 장애 진단받고 같이 동반자살하는 부모 나오잖아. 예전엔 그 부모가 참 무책임하고 잔인하다 생각했거든? 근데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젠 알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해. 그건 당사자가 되어봐야 알 수 있는 거야.”
“...”
“스위스에 안락사해 주는 곳이 있다 하더라고. 시한부 판정을 받거나 생이 얼마 남지 않는 사람이 신청할 수 있는데 다른 나라는 외국인한테 안락사 허락 안 해주는데 스위스는 외국인이어도 해준대. 그래서... 평생 준후 걱정하며 사느니 그냥 돈 모아서 준후랑 우리 가족 모두 세계여행하며 재밌게 보내다 스위스에 가서 다 같이 한날한시에 죽으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잠깐 했었어. 후후, 웃기지?”
남편은 흐흐, 웃으면서 맥주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수인도 맥주를 마시며 자신들의 꿈꿔왔던 미래와 희망들을 삼켰다.
남편은 아들과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공도 같이 차고 미용실에 같이 가 나란히 앉아 이발도 하고 싶어 했다. 목욕탕에서 같이 등을 밀어주고 엄마가 공부로 아들을 혼내면 같이 엄마 뒷담화를 하며 아들을 위로해 주는 자상한 아빠가 되고 싶어 했다.
우리는 소소한 행복을 꿈꾸는 대신 그저 죽음만 바라는 삶만 원할 수 있는 걸까? 우리에게, 준후에게 행복해질 권리는 없는 것일까?
남편의 진솔한 고백에 화답하는 듯 수인은 남편의 맥주캔을 챙-하고 맞부딪혔다. 오늘따라 맥주가 너무 쓰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