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하육수 Jul 24. 2024

에코

연재소설

11. 에코


"준후야, 과자 줄까?"

"과자 줄까?"

내가 과자 쪽으로 손을 뻗자 엄마가 다시 과자를 멀리 보내며 말했다. 

"엄마 말 따라 하지 말고 과자 먹고 싶으면 '네' 해야지."

"해야지."

"그만 좀 따라 해."

"따라 해."

엄마는 내가 엄마 말에 대답했는데도 답답한지 한숨을 푹 쉬며 과자를 나에게 주었다. 


요즘 나는 말을 한다. 나에게는 대단한 발전인 것 같은데 엄마는 그리 기쁘지 않은 것 같다. 


어제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였다. 그 시간에 애들이 다 등원하는 시간인지 엘리베이터에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애들 소리에 어른들 수다에 거친 숨소리로 좁은 엘리베이터가 꽉 차있었다. 나는 순간 갑갑하고 불안했다. 그때 갑자기 며칠 전 엄마가 읽어준 동화책 구절이 생각이 났다. 


"깊은 바닷속에 물고기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중얼거리자 아줌마들과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꽂혔고 엄마는 허겁지겁 내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엄마가 막은 손 사이로 나는 계속 중얼거렸고 엄마는 1층에 내리자마자 나를 혼냈다.


"엘리베이터에서 이상한 말 하지마!"


엄마에게는 이상한 소리로 들렸겠지만 이건 나만의 주문이다. 나는 불안할 때 이렇게 내 머릿속에 생각나는 대사를 중얼거리면 좀 나아지던데 엄마는 왜 못하게 막는 걸까?


나의 계속 반복되는 말에 엄마는 또 걱정이 되는지 언어선생님과 엄청 심각하게 상담하는 걸 들었다. 

"준후가 계속 제가 한 말을 반복해서 말해요. 가끔은 예전에 유튜브 영상에서 봤던 대사를 갑자기 중얼거리기도 하구요."

"아, 그건 반향어라고 자폐특징 중 하나입니다. 자기가 방금 들었던 질문을 그대로 따라 하는 '즉각적 반향어'가 있구요, 하나는 어떤 소리를 들은 지 며칠, 몇 달이 지난 뒤에 그 소리를 반복하는 '지연적 반향어'가 있습니다."

"그럼 이건 못 고치나요?"

"반향어는 아주 어린아이가 말을 배울 때도 나타날 수 있는 거라서 긍정적인 신호이긴 하지만 너무 심한 경우는 적절히 대응해 주시는 게 좋아요. 반향어를 할 때는 무시해서 애가 흥미를 더 느끼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다른 장난감이나 다른 곳에 관심을 가지게 해 반향어를 멈추게 할 수도 있구요. 그리고 유튜브 영상은 이제 줄이시는 게 좋을 거예요."

내 유일한 낙인 유튜브를 못 본다고?! 나는 고개를 훽 돌려 선생님을 째려봤지만 나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엄마와 선생님 둘이서 모의작당이 시작됐다. 


그날부터 나는 영상을 볼 수 없었다. 저녁 먹고 엄마가 설거지하는 동안 30분 정도 유튜브로 만화를 보는 게 나의 피로를 씻어주는 즐거움인데 그걸 못하게 하다니. 

"이이이잉. 비가 와. 비가 와."

내가 엄마 옆으로 가서 칭얼거리고 짜증을 내도 엄마는 눈 깜짝하지 않았다. 

"안돼. 이제 너 만화는 당분간 금지야. 그리고 비도 안 오는데 무슨 비 타령이니?"

보다 못한 아빠가 엄마 몰래 살짝 유튜브를 틀어주려다가 엄마에게 들켜 불호령을 맞았다. 

"안된다고 했잖아! 그거 보여주면 애 반향어가 심해진다고오!"

"언어선생님이 반향어 하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며. 준후가 말 한마디하는 게 소원이라더니 막상 말하니까 왜 애 말을 못 하게 해?"

"막상 말을 하니까 너무 이상한 티 많이 나잖아. 사람들이 준후 말 한마디씩 할 때마다 다 쳐다봐. 어휴, 차라리 말 한마디 안 하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몰라."

엄마는 내가 말을 한다는 사실보다는 내가 말을 할 때 사람들한테 어떻게 보이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엘리베이터에서도 손으로 입을 막았구나. 엄마는 내가 부끄러운 모양이다. 




사촌동생인 도윤이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도윤이는 내 예상처럼 역시 내 장난감을 이리저리 꺼내고 있었다. 내가 줄 세워놓은 피규어마저 흐트러뜨리자 내가 이렇게 소리쳤다. 

"엄마가 조용히 하랬지!"

도윤이는 슬쩍 나를 쳐다보고는 다시 자기 하던걸 계속했고 나는 또 "엄마가 조용히 하랬지!"라고 말했다. 옆에서 그걸 지켜보던 고모가 엄마한테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 거냐고 물어봤다. 


"그거 아마 제가 준후 혼낼 때 하는 소리가 생각나서 그런 거 같아요."

"아, 그래?"

고모는 맨날 도윤이한테 지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고모가 도윤이 못하게 막아줄까?"

"막아줄까?"

나는 고모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고모의 마지막 말을 따라 말했다. 


그러자 소파에서 책을 보고 있던 도희누나가 말했다. 

"준후, 에코 같다."

"에코?"

"유치원선생님이 가르쳐줬는데 그리스 신화에 에코라는 요정이 있었대. 그런데 에코가 헤라의 저주에 걸려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못 하고 남이 하는 말의 끝부분을 따라 말한대. 그래서 동굴에 숨어 지내면서 우리가 산에서 소리치면 에코가 그대로 우리말을 따라 말하는 거래."

"우와, 우리 도희! 그런 것도 알고 대단하네!"

고모는 자기 자식이 똑소리 나게 설명하는 게 뿌듯한 모양이었다. 엄마는 잠자코 누나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나는 정말 헤라의 저주를 받은 에코 요정일까? 저주를 받아 이렇게 누나와 도윤이랑 다른, 엄마를 힘들게 만드는 아이인 걸까?


고모네가 우리 집에서 놀다간 뒤 엄마는 갑자기 맥이 탁 풀린 사람처럼 바닥에 철퍼덕 앉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가까이 가보니 엄마는 울고 있었다. 나 챙기는 것도 힘든데 고모네까지 와서 힘들어서 그런가? 아니면 사촌들한테 치이는 내 모습을 보고 속상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누나가 저주 운운한 게 마음에 걸려서?


"비가 와. 비가 와."


예전에 엄마랑 밖에서 놀다가 갑자기 소나기를 맞은 적이 있었다. 옷이며 머리며 비에 다 젖어 엄마가 수건으로 나를 닦아줬는데 그런 엄마의 얼굴에도 빗방울이 많이 맺혀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엄마가 우는 모습 같았다. 그때부터 "비가 와"는 나에게 슬픔을 나타내는 표현이었다. 


엄마는 비가 내리면 우산을 쓰는 거라고 했다. 나는 현관으로 쪼르르 달려가 우산을 챙겨 왔다. 

"엄마, 눈에서 비가 와."

엄마는 손으로 눈물을 닦더니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준후야, 엄마가 우는 게 비 오는 것처럼 보여서 '비가 와'라고 한 거야? 엄마 울지 말라고 우산 갖다 주는 거야?"

엄마는 더 울먹거리더니 나를 꽉 껴안아줬다. 안으면서 엄마는 나에게 계속 미안하다고 말했다. 

뭐가 미안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난 그저 포근한 엄마 품이 좋아 더 푹 안겼다. 



keyword
월, 수, 금 연재
이전 10화 아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