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13. 꼬리
엄마가 사준 동물도감 책을 보다가 나는 그걸 발견하고는 소리를 질렀다.
“꼬, 꼬리! 꼬오, 꼬리!!”
나는 흥분하는 거나 좋아하는 것이 나오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더듬거리며 소리치는데 요즘 꼬리를 보면 그렇다.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는 꼬리다. 동물의 꼬리는 동물의 생김새만큼이나 제각각이다. 여우의 꼬리는 폭신하고 부드러워 엄마가 감는 목도리처럼 생겼고 비버의 꼬리는 커다랗고 납작한 빨래 방망이 같다. 다람쥐의 꼬리는 자신의 몸을 휘감을 만큼 길고 크지만 돼지 꼬리는 자신의 덩치에 맞지 않게 작고 돌돌 감겨 있어 귀엽다. 꼬리를 흔들며 걷는 모습이나 벌레를 쫓아낼 때, 새끼가 엄마의 꼬리를 따라 졸졸 쫓아다니는 게 정말 귀엽고 나를 흥분하게 만든다. 며칠 전에는 길을 가던 개의 꼬리를 잡으려다 물릴 뻔한 적도 있었다.
나는 내 엉덩이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내 꼬리는 무슨 모양일까 하며 살펴보니 세상에, 꼬리가 없는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아직 어려서 꼬리가 안 났나 보다 싶었는데 엄마, 아빠, 지나가는 어른들을 봐도 꼬리는 달려있지 않다. 사람에게 꼬리가 없는 것을 보고 대단히 실망했다. 꼬리가 있으면 균형잡기도 편하고 꼬리로 갖고 놀 수 있을 텐데 왜 없는 걸까? 엉덩이를 더듬거리며 만져보니 엉덩이 골 바로 위쪽에 약간 튀어나온 게 느껴졌다. 아마 이게 자라다만 꼬리인가 보다. 샤워를 할 때나 옷을 갈아입을 때 그 꼬리를 만지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다.
한 번은 이불속에서 꼬리를 만지며 놀고 있는데 엄마가 갑자기 이불을 휙 걷어버렸다.
“너 이게 무슨 짓이야!”
엄마는 내가 팬티 안에 손을 넣으며 히히덕거리는게 수상했나 보다. 가끔 수건이나 긴 끈으로 바지에 넣어 꼬리를 만들어 노는데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꼬리를 흔들면 내가 거대한 꼬리를 가진 공룡이 된 기분이다. 물론 이걸 엄마한테 걸리면 엄마는 이상한 행동 좀 그만하라고 윽박지르긴 하지만 말이다.
오늘은 엄마, 아빠와 다 같이 쇼핑하러 갔다. 좀 있을 추석에 입을 옷도 볼 겸 내가 좋아하는 드라이브도 할 겸해서 외곽에 있는 아웃렛에 간 것이다. 엄청난 인파 속에 나는 또 머리가 어지러워 눈을 꽉 감았고 엄마, 아빠는 그런 나를 끌고 여기저기 구경하러 다녔다.
가판대에 철 지난 수영복을 싸게 파는 것을 보고 문득 어제 일이 떠올랐다. 엄마는 며칠 전 만난 수영강사에게 전화해서 강습을 취소하겠다고 통화하는 걸 들었다. 다행이다. 내가 봐도 그 아저씨는 기분 나빴다. 그 희번덕거리는 눈은 마치 나를 사람이 아닌 돈으로 보는 것 같았다. 엄마도 그걸 눈치챈걸 수도 있다.
수영복의 화려한 패턴에 시선을 뺏긴 나는 엄마 손에 이끌려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옷을 고르는 사이 아빠는 내 손을 잡으며 눈은 열심히 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아빠 손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아빠 힘이 세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나는 몸을 베베 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어떤 여자가 탈의실에서 나왔다. 갈아입은 옷을 보며 전신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는데 그 아줌마의 엉덩이에 꼬리가 달린 것이 보였다.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며 꼭 나한테 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 같았다. 아빠의 손에 힘이 살짝 풀리는 순간 나는 잽싸게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꼬리를 덥석 잡았다.
“꺄아아악!”
북적거리던 가게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지고 모두의 시선은 곧 그 아줌마와 나에게로 꽂혔다. 거울 속의 나는 그 아줌마의 엉덩이에 손을 대고 있었다. 내 손에는 바지에 달린 옷 꼬리가 있었는데 그걸 잡으면서 아줌마의 불룩한 엉덩이를 같이 만져버린 것이다. 아줌마는 뒤돌아서서 나를 확 밀치고는 기분 나쁘다는 듯이 쳐다봤다.
“얘가 어딜 만져!”
아줌마의 앙칼진 목소리에 엄마, 아빠는 부리나케 달려왔다. 엄마, 아빠는 나를 몰아세우는 아줌마의 반응에 어안이 벙벙하다 흥분한 아줌마의 말을 조각 맞추며 그제야 사태를 파악했다. 엄마, 아빠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버렸다.
“아니, 애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예요! 요새 애들 빠르다 빠르다 그러더니 벌써부터 여자 엉덩이나 만지고. 기가 막혀서.”
“죄송합니다. 저희 애가 그런 판단을 제대로 못하는 아이라...”
엄마, 아빠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울지도 않고 아줌마 꼬리표를 보며 실실 웃는 내 모습을 보고 아줌마는 더 펄펄 열을 냈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우리 주변을 빙 둘러싸 나와 부모님을 쳐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고 힘들어졌다. 사람들의 시선과 아줌마의 높은 데시벨이 나를 점점 불안하게 만들었다. 내가 뭔가 잘못한 거 같긴 한데 뭘 잘못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이 상황이 빨리 끝나길 바랄 뿐이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내 배를 손으로 막 두드렸다.
“이나니오 아비아야야야!”
엄마, 아빠에게 불같이 화내던 아줌마는 내 행동을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저런 아이면 더더욱 이런 곳에 안 데리고 나왔어야죠! 아픈 애라고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아요? 진짜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주위를 빙 둘러싼 사람들도 입은 꾹 다물고 있었지만 눈빛으로는 다들 아줌마의 말에 동조하는 것 같았다. 나 같은 아이는 이런 곳에 오면 안 되는구나.
짝-
순간 번쩍하는 빛이 눈앞에 나타났다가 곧 캄캄해져 가게가 정전이 된 줄 알았다. 90도로 꺾인 고개를 다시 바로 돌리니 엄마가 한 손을 천장 높이 치켜들고 있었고 좀 있으니 내 왼쪽 얼굴이 뜨겁고 얼얼해졌다. 엄마는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엄마의 돌발 행동에 아줌마도 당황했는지 끊임없이 쏟아낼 것 같던 입을 꾹 다물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교육을 잘못 시킨 탓입니다. 제 탓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그렇다고 애를 그렇게 때릴 필요까지는... 흠흠, 암튼 알겠어요. 얘가 이리 어리니까 이렇게 넘어가지 안 그랬으면 바로 경찰 불렀을 거예요. 다음부턴 조심하세요.”
부모님은 연신 죄송하다고, 피해보상이라도 해드리겠다며 사죄했지만 아줌마는 됐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엄마한테 크게 혼날 줄 알고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의외로 엄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밖만 물끄러미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그날 밤, 잠이 들었다가 얼핏 깨보니 엄마가 옆에 있었다. 엄마가 또 손을 드는 걸보고 또 때리는 건가 싶어 눈을 질끈 감았을 때였다.
“미안, 미안해.”
아까 매서운 감촉이 아닌 부드러운 엄마의 손길이 내 왼쪽 얼굴을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눈을 빼꼼히 떠보니 엄마의 얼굴에는 또 빗방울이 잔뜩 묻어 있었다.
엄마가 엉덩이는 몇 번 때린 적은 있어도 얼굴을 때린 적은 처음이라 나도 너무 놀랐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이 장면을 내가 할아버지가 될 때도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다. 충격도 충격이지만 나는 보았기 때문이다. 때리기 전 엄마의 얼굴을.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커갈수록 세상사람들과 접촉하는 순간들이 많아지면서 조심해야 할 것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화장실을 갈 때 미리 바지를 내리면 안 되고 어린이집에서 낮잠 잘 때도 고추를 만지며 놀면 안 되고 친구들의 얼굴을 함부로 만져서도 안된다. 온통 안 되는 것들이 많아 어떨 땐 그냥 내 맘대로 하고 싶지만 엄마는 절대 그래선 안된다고 했다. 그러면 내가 이 세상에 받아들여질 수 없단다. 이번에 꼬리사건으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는 좋다고, 재밌다고 하는 행동들이 다른 사람은 싫어할 수도 있구나.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는 규칙이 있고 그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엄마, 아빠가 많이 힘들어한다는 걸.
다음부터 꼬리 잡기는 집에서만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스르르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