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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육수 Jul 10. 2024

나의 도파민

연재소설


5. 나의 도파민


나는 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테이블 위에 일렬로 가지런히 놓아둔 동물 피규어들이 잘 있는지 확인했다. 가까이 보니 사자와 토끼가 삐딱하게 세워져 있고 호랑이와 여우의 순서가 바뀌었다. 아마 엄마가 또 청소한다고 치웠다가 엄마 마음대로 올려둔 것 같다. 내가 다시 가지런히 놓아두니 엄마가 옆에서 소리친다.


“집에 오면 손 씻어야지!”


하지만 나에게는 그저 웅웅 거리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눈앞의 피규어들이 일사불란하게 정면을 바라봐야 되고 사자-토끼-호랑이-소-양-여우 순서대로 놓여야 마음이 놓인다. 내가 그 작업(?)에 몰두한다고 엄마가 가까이 다가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엄마는 갑자기 나의 소중한 동물 피규어들을 팔로 확 치면서 바닥에 떨어뜨렸다. 내가 깜짝 놀라 엄마를 쳐다보니 엄마는 또 매서운 눈을 하고 나를 쏘아봤다. 엄마가 소리치며 혼낼 때보다 이렇게 아무 말 없이 나를 노려보는 게 더 무섭다. 하지만 오늘은 나도 참을 수 없다. 감히 내 소중한 컬렉션을 망가뜨리다니.

“아아아악!”


내가 소리를 지르자 엄마는 갑자기 발을 쾅쾅대며 부엌으로 가더니 쓰레기봉투를 가져왔다. 그러고는 내 장난감들을 쓰레기봉투에 마구 쑤셔 넣었다.

 

“도대체 왜 이러니? 장난감을 제대로 갖고 놀아야지 계속 줄 세우기만 하면 어떡해!”


마침 현관문이 열리고 아빠가 이 광경을 목격했다. 아빠는 또 시작이라는 듯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그렇게 버려도 또 할 텐데 그냥 준후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둬.”


엄마는 나한테 사준 장난감을 갖고 놀라고 하면서도 막상 내가 재미있는 걸 찾아 몰두하면 거기에 너무 빠지면 안 된다며 장난감을 숨겨버리거나 버린다.


저번에는 퍼즐 맞추는 게 재밌어서 그걸 열심히 했더니 어느 순간 퍼즐이 사라져 버렸다. 블록을 계속 높이 쌓아 올렸더니 엄마는 블록도 치워버렸다.


엄마는 내가 다른 아이들처럼 공놀이, 보드게임을 하거나 로봇을 조립하면서 놀아라고 하지만 나는 그게 재미가 없다. 공부만큼 싫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에게 부대끼고 센터 돌아다니면서 힘들었던 걸 그나마 집에서 내 방식대로 놀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겠다는데 엄마는 왜 그걸 방해하는 걸까?


엄마, 아빠도 폰 들여다보며 웃고 나 재우고 나면 맥주 마시는 게 낙이라는 거 알고 있다. 그럼 내 즐거움도 알아줘야지 왜 계속 내 행복을 빼앗는 걸까? 엄마는 내 감정은 알아주지도 않고 그저 잘못된 행동이라고만 치부한다.


어수선한 집안 분위기를 풀고자 아빠는 늦은 저녁을 먹고 다 같이 놀이터에 가자 했다. 나는 밖에 나가기 귀찮았지만 막상 나가니 초여름의 물큰한 바람이 내 몸을 감싸 기분이 좋아졌다. 낮동안 뜨겁게 달궈진 공기가 선선한 바람으로 식혀지고 있었다.


바람은 내 얼굴과 몸을 스치며 다운된 내 기운을 다시 업시켜 줬다. 바람이 나를 관통할 때마다 나는 기분이 좋아진다. 몸속 어딘가 작은 알맹이들이 퐁퐁 터지면서 기분 좋은 에너지가 내 몸 가득 퍼지는 게 느껴진다.


바람에 나무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도 나를 흥분하게 만든다.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면 마치 나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것 같다. 나뭇잎이 바람과 부딪히며 내는 솨아아아- 하는 소리는 소음에 시달렸던 내 귀를 씻어준다. 이게 바로 행복 아닌가.


내가 길 한가운데에서 바람을 맞으며 팔짝팔짝 뛰며 웃고 있으니 지나가던 아줌마가 이상하게 쳐다봤다. 엄마는 또 이상한 행동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으름장을 놨다.


하는 것마다 구박이니 서러워 내가 빽- 하며 우니 왜 이리 또 우냐면서 결국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다른 사람들도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 숨을 크게 들이쉬며 기분이 좋듯이, 재밌는 것이 있으면 즐거워하듯이, 슬픈 생각이 들면 울음이 터지듯이 나도 그렇다.


나도 느낄 거 다 느끼고 기쁘고 슬프고 화나고 짜증 난다는 감정이란 게 있다. 다만 그게 다른 사람과 느끼는 정도가 다르고 표현이 좀 과하다는 것뿐이지.


엄마는 이런 내 기분을 왜 알아주지 못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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