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5. 나의 도파민
나는 센터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테이블 위에 일렬로 가지런히 놓아둔 동물 피규어들이 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달려갔다. 가까이 가서 보니 사자와 토끼가 삐딱하게 세워져 있고 호랑이와 여우의 순서가 바뀌어 있었다. 아마 엄마가 또 청소하다 건드린 모양이다. 조심 좀 해주지 생각하며 내가 다시 가지런히 놓아두니 엄마가 옆에서 소리쳤다.
“집에 돌아오면 손부터 씻어야지!”
하지만 나에게는 이 일이 먼저다. 눈앞의 피규어들이 일사불란하게 정면을 바라봐야 되고 사자-토끼-호랑이-여우-소-양-강아지 순서대로 놓여야 마음이 놓인다.
세상은 모두 삐뚤빼뚤하다. 엄마가 정리한 그릇들도 삐뚤빼뚤, 옷장에 걸려있는 옷들도 삐뚤빼뚤, 마트 진열장에 놓인 장난감들도 삐뚤빼뚤하다. 심지어 곧게 그려져 있는 횡단보도도 자세히 보면 삐뚤빼뚤하게 그려져 있다. 나는 삐뚤빼뚤한 걸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당장이라도 손을 뻗어 가지런히 놓아두고 싶다. 하지만 그런 건 내 손에 닿지도 않고 함부로 만진다고 엄마에게 혼이 난다. 내가 만질 수 있는 건 내 물건들 뿐이다. 내 장난감들만이라도 가지런히 똑바로 놓아져야 안심할 수 있다.
내가 그 작업(?)에 몰두하느라 엄마가 가까이 다가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엄마는 갑자기 나의 소중한 동물 피규어들을 팔로 확 밀치면서 바닥에 떨어뜨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나는 너무 놀라 입만 떡 벌릴 뿐이었다. 동그란 눈으로 엄마를 쳐다보니 엄마는 또 먹잇감을 찾는 무서운 상어의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엄마가 소리치며 혼내는 것도 무섭지만 이렇게 아무 말없이 나를 쳐다보는 게 더 무섭다. 하지만 오늘은 나도 참을 수 없다. 감히 내 소중한 컬렉션을 망가뜨리다니.
“아아아악!”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자 엄마는 이에 질세라 발을 쿵쿵 울려대며 부엌으로 달려가더니 곧장 쓰레기봉투를 들고 왔다. 그러고는 내 피규어들을 쓰레기봉투에 마구 쑤셔 넣었다.
“엄마가 손부터 먼저 씻으라 했지! 그리고 장난감을 제대로 갖고 놀아야지 계속 줄 세우기만 하면 어떡해!”
엄마와 나는 누가 누가 목소리가 더 크나 내기하는 것처럼 서로에게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어서 자기를 구해달라는 애처로운 동물들의 눈빛들이 불투명한 쓰레기봉투 사이로 비쳤다. 나는 엄마 손에서 봉투를 뺏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내 힘으론 어림도 없었다.
마침 도어락 소리가 들리더니 아빠가 현관으로 들어왔다. 아빠는 우릴 보고 또 시작이냐는 듯 한숨을 푹 쉬었다.
“그렇게 버려도 다른 장난감으로 또 줄 세울 텐데. 그냥 내버려 둬.”
엄마는 나한테 사준 장난감을 갖고 놀라고 하면서도 막상 내가 내 방식대로 재밌게 놀고 있으면 너무 몰두하면 안 된다며 장난감을 숨겨버리거나 버린다. 저번에는 퍼즐 맞추는 게 재밌어서 퍼즐을 열심히 맞췄더니 어느 순간 퍼즐이 없어져 버렸다. 블록을 계속 높이 쌓아 올렸더니 엄마는 블록도 치워버렸다. 할머니가 사주신 레고조각들을 조립하는 대신 내 눈앞에서 떨어뜨리고 있으면 엄마는 왜 이상하게 갖고 노냐며 화를 냈다. 나에게는 이게 놀이이지만 엄마는 집착이라고 했다. 나는 이게 재미나지만 엄마는 그건 정답이 아니라고 했다. 놀이에도 답이 있는 걸까? 재미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엄마는 내가 다른 아이들처럼 공놀이를 하거나 병원놀이를 하거나 로봇을 조립하면서 놀길 바란다. 그래서 억지로 공을 주고받거나 모형 주사기로 여기저기 찔러대지만 사실 그런 건 별로 재미가 없다. 엄마는 이런 게 놀이라고 가르쳐주지만 나에겐 그저 또 하나의 공부일 뿐이다. 엄마가 같이 놀자고 하는 소리를 들으면 시작도 하기 전에 피곤하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에게 부대끼고 센터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힘들었던 걸 그나마 집에서 내 방식대로 놀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겠다는데 엄마는 왜 그걸 방해하는 걸까? 엄마, 아빠도 폰 들여다보며 히히덕대며 웃고 나 재우고 나면 맥주 마시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푼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럼 내 즐거움도 인정해 줘야지 왜 계속 내 행복을 빼앗아가는 걸까? 엄마는 내 감정은 알아주지도 않고 그저 잘못된 행동이라고만 치부한다.
어수선한 집안 분위기를 풀고자 아빠는 늦은 저녁을 먹고 다 같이 산책 가자고 했다. 나는 밖에 나가기 귀찮았지만 막상 나가니 초여름의 물큰한 바람이 내 몸을 감싸 기분이 좋아졌다. 낮동안 뜨겁게 달궈진 공기가 선선한 바람으로 식혀지고 있었다. 바람은 내 얼굴과 몸을 스치며 다운된 내 기운을 다시 업시켜 줬다.
바람이 나를 관통할 때마다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아진다. 몸속 어딘가 작은 알맹이들이 퐁퐁 터지면서 기분 좋은 에너지가 내 몸 가득 퍼지는 게 느껴진다. 바람에 나무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도 나를 흥분하게 만든다.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면 마치 반갑게 인사하는 것 같다. 나뭇잎이 바람과 부딪히며 내는 솨아아아-하는 소리는 세상 소음에 시달렸던 내 귀를 씻어준다.
아까 엄마 때문에 화가 났던 감정들이 바람과 함께 날아가버린 것 같았다. 내가 길 한가운데서 바람을 맞으며 팔짝팔짝 뛰며 웃고 있으니 지나가던 아줌마가 이상하게 쳐다봤다. 엄마는 나한테 이상한 행동 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다가 결국 서둘러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도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 숨을 크게 들이쉬며 기분이 좋듯이, 재밌는 것이 있으면 즐거워하듯이 나도 그렇다. 다만 무엇에 즐거워하는지,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조금 다를 뿐이다. 어런이집에서 다 같이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다른 아이들은 어떤 장면에서 다 같이 깔깔거리고 웃는데 나는 도통 뭐가 웃기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공연장 한 구석에 설치되어 있는 꽃 그림들이 왠지 우스꽝스러워 숨 넘어갈 듯 웃었는데 그때 웃는 건 나 혼자 뿐이었다. 아이들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쳐다봤고 나는 결국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공연장 밖으로 나와야 했다.
모두가 즐거워해야 하는 걸 즐거워해야 하고 모두가 하는 놀이를 똑같은 방식대로 놀아야 하는 법이 따로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지내야 한다면 나는 너무 슬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