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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육수 Jul 03. 2024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연재소설

3.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배가 고프다. 내가 배고프다고 흐응흐응-하며 신호를 주니 엄마는 시선을 자동차 앞유리로 향한 채 익숙하게 가방에서 빵을 꺼내 뒷자리의 나에게 건넨다.


오늘도 치즈빵이다. 내일도 치즈빵일 것이다. 나는 다른 빵은 먹지 않고 무조건 치즈빵만 먹는다. 엄마도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굳이 다른 종류의 빵을 권하지 않는다. 빵을 우적우적 씹으면서 붉게 어스름이 깔린 창문 바깥을 쳐다봤다.


여러 병원에 다녀온 뒤 나의 일상은 바뀌었다.


5시쯤 엄마가 어린이집으로 나를 데리러 온다. 다른 친구들은 하원하면 집에 가거나 놀이터, 태권도 학원으로 가지만 나는 다른 곳으로 간다.


엄마는 내가 쉬는 게 싫은지 일주일을 센터스케줄로 꽉 채웠다. 월, 수, 금은 언어치료센터, 화, 목은 감각통합치료센터에 가야 한다. 그 외에도 특수체육, 놀이치료실, 미술수업도 가야 하고 일주일에 두 번은 차를 타고 멀리 있는 ABA센터도 다녀와야 한다. 주말에는 승마까지 한다.


촘촘한 하루 스케줄과 이동시간으로 이렇게 센터를 돌고 나면 어느새 바깥은 깜깜해지고 저녁밥 먹고 씻으면 어느새 잘 시간이 된다. 운전하는 엄마의 모습은 피곤해 보인다.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주고 운전에만 집중한다. 나랑 말할 힘도 없어 보인다. 아니면 이야기를 해도 내가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나를 센터에 데려다주면 엄마는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 것처럼 홀가분한 한숨을 쉬며 대기실 소파에 앉아 수업이 끝날 때까지 나를 기다린다. 엄마는 이렇게 센터를 많이 다녀야 내가 다른 아이들처럼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보다. 며칠 전에 자다 깨서 보니 엄마가 ‘그룹치료’라는 또 다른 치료센터를 알아보고 있는 것 같아 기겁한 적이 있다.


엄마의 이런 바람과 달리 나는 솔직히 지금 하는 게 뭐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방에 들어가라 해서 들어가면 벽면 책장에 여러 가지 장난감이 있고 옆에는 선생님과 내가 앉을 수 있는 책상이 있다. 처음에는 신기한 장난감들이 많아 재밌었지만 몇 번 오니 익숙해졌고 선생님들도 매번 비슷한 레퍼토리로 수업했다.


언어치료센터도 여러 곳을 다녀봤는데 나랑 놀면서 옆에서 계속 떠드는 선생님이 있었고, 그림카드를 보여주면서 나에게 말을 따라 하게 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새로 생긴 언어치료센터도 가봤는데 내가 공룡을 좋아하는 걸 보고 “티. 라. 노. 사. 우. 르. 스, 프. 테. 라. 노. 돈.”이렇게 발음연습을 시키는 곳도 있었다.

 

치료시간은 총 50분인데 그중 40분이 나와 선생님 수업시간이고 10분은 엄마와 선생님의 상담시간이다. 그 40분을 온전히 나에게 쏟아붓는 선생님이 대부분이지만 몇 선생님은 몇 분 수업하다가 폰 보거나 자기 할 일 하는 사람도 봤다.


하루는 몸이 평소와는 달랐다. 뭐라 표현할 수 없었지만 피곤하고 몸에 열이 살짝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암튼 그때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런 내 상태를 알턱이 없는 엄마는 치료실에 나를 넣었고 결국 나는 치료시간 내내 울고 소리를 지르며 짜증을 냈다. 40분 내내 내가 저 상태였으니 수업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선생님은 "준후가 오늘 이상해요"라는 말만 반복했고 엄마는 그런 나를 힐끗힐끗 노려보면서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엄마는 “이게 돈이 얼만데!” 라며 신경질을 냈고 나는 내 컨디션도 안 좋은데 엄마는 내가 어떤지는 물어보지도 않고(물론 답을 할 순 없지만) 화만 내는 게 서러워 또 울었다. 그 밤에 나는 열이 39도까지 올랐고 목이 부어 한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내일은 주말이니 어린이집은 안 가지만 대신 승마와 놀이치료하러 가야 한다. 또 학습지도 해야 한다. 엄마, 아빠도 회사 다니며 "바쁘다, 바빠"란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나도 바쁘다, 바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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