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2. 아이가 이상하다
□ 특정의 장난감이나 물건을 일렬로 정렬한다.
□ 반복하여 손뼉을 치거나 손가락을 돌린다.
□ 사물의 부분(단추, 신체부위)을 빤히 쳐다본다.
□ 다른 사람에게 애정이나 관심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수인은 검사지를 체크하면서 저도 모르게 한숨이 푹 나왔다. 수도 없이 한 검사지만 할 때마다 수인을 고개를 떨구게 할 만큼 좌절감을 느낀다. 검사지에는 상동행동, 의사소통, 사회적 상호작용 등 항목이 나눠져 있고 각 항목에 해당하는 세부 검사문항이 죽 나열되어 있다. 문항을 읽고 준후가 어디에 해당되는지 표시하는데 전부 ‘자주 발견함’에 해당되었다. 자신이 전문가가 아니어도 어떤 처참한 결과가 나올지 뻔히 보였다. 어쩌다 이지경까지 된 걸까.
아이가 이상하다고 처음 느낀 건 만 두 살이 지나서였다. 말이 늦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한 살 터울의 조카는 못하는 말이 없을 정도로 재잘거렸지만 준후는 그저 입만 뻥긋거렸다. 준후보다 어린 꼬맹이들도 혀 짧은 소리로 "안녕하떼요"하며 인사했지만 준후는 그저 멀뚱히 서있을 뿐이었다. 어린이집 선생님도 준후가 또래보다 말이 좀 늦는 것 같다고 조심스레 이야기했지만 남자아이들은 원래 다 늦다고들 말해 수인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말을 하라고 재촉하면 스트레스받아 말이 늘지 않는다는 육아 전문가의 말이 생각나 언젠가 트이겠지 하며 기다려보기로 했다.
기저귀도 떼지 않았다. 배변훈련을 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어린이집에서 기저귀를 찬 아이는 준후 밖에 없었다. 더운 여름날 벌겋게 짓무른 아이의 엉덩이를 보며 떼긴 떼야할 텐데 생각은 했지만 이것도 언젠가 떼지 않을까 싶어 더 이상 보채지 않았다. 선생님에게 기저귀를 갖다 주는 손이 민망하긴 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수인은 그때쯤 복직 준비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점점 자신을 잃어가는 것 같았다. 화장 안 하고는 밖에 절대 돌아다니지 않는다는 철칙은 오래전부터 깨졌고 세수도 안 하고 퀭한 눈으로 아기띠와 한 몸이 되어 마트며 놀이터를 돌아다녔다. 가끔 회사 동기 단톡방에 결혼 안 하거나 자녀가 없는 친구들이 차장, 팀장으로 승진했다는 메시지가 뜨면 안절부절못했다. 손가락으로는 축하한다고 보내면서도 이러다 나만 혼자 뒤처지는 게 아닌가 불안했다. 회사 다닐 때는 밀려오는 업무에 괜한 걸로 트집 잡는 상사에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었는데 막상 육아의 세계에서 다시 그때를 회상해 보니 그리 나쁜 기억은 아니었다. 육아는 안 좋은 시간들도 그립게 만들어주는 강력한 신체적, 정신적 노동이었다.
수인은 자신의 품에 잠든 준후를 바라보며 ‘예쁜 흡혈귀’라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소중하고 예쁜 내 자식이지만 내 피와 에너지를 빨아먹는 흡혈귀 같은 내 자식. 탱탱했던 가슴은 준후가 하도 빨아 바람 빠진 풍선처럼 너덜 해졌고 엄마의 젖으로 배가 차지 않는지 시도 때도 없이 울어재꼈다. 재울 때 안아주고 30분 이상 돌아다녀야 겨우 잠들었고 잠든 준후를 바닥에 내려놓기만 하면 등에 바닥 감지기가 있는지 눈을 번쩍 떴다.
제일 괴로운 것은 수면이었다. 이렇게 힘들게 재워도 수인은 마음 편히 잘 수 없었다. 아이는 1, 2시간 간격으로 일어나 수인을 괴롭혔다. 아무리 조용히 있어도 준후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깨 엄마를 찾아 울부짖었다. 사람이 잠을 못 자면 얼마나 피폐해질 수 있는지 수인은 자신을 보며 몸소 알 수 있었다.
하루는 재운 지 30분 만에 준후가 또 일어나 빽- 울었다. 젖병을 들이밀어도, 젖꼭지를 줘봐도, 안아줘도 아이는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계속 칭얼댔다.
"도대체 엄마 보고 어쩌라고!"
수인은 순간 화가 치밀어올라 소리를 질렀고 아이는 그런 엄마의 모습에 놀라 더 고래고래 악다구니를 쳤다. 아이도 미웠지만 내일 회사에 일찍 나가봐야 한다며 이 난리에도 다른 방에 코 골며 자고 있는 남편도 미워죽을 지경이었다. 회사에 급한 일도 없는데 자기 편하게 자려고 거짓말하는 것 같았다. 버둥거리는 준후를 거칠게 안은 수인은 곧바로 남편이 있는 방으로 돌진해 아이를 남편의 곁에 던지다시피 팽개쳤다.
"네 자식 네가 재워!"
정신없이 깬 남편과 준후를 뒤로한 채 수인은 안방 문을 쾅 닫아버렸다. 방문 너머 준후의 서러운 울음소리가 쉬 그치지 않았다. 준후는 수인의 품이 아니면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귓속을 파고드는 준후의 울음소리가 수인을 애타게 찾는 것 같았다. 수인은 베개를 푹 눌러써 두 귀를 막고 눈을 질끈 감았다. 나도 제발 잠 좀 편하게 자자! 제발!! 고문 중에 제일 괴로운 고문이 잠 못 자게 하는 고문이라더니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자식을 아주 원수로 만드는 고문 같았다.
수인은 준후를 키우면서 나에게 정말 모성이라는 게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마저 메말라 나중에는 모성애마저 없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낮동안 아이에게 모진 말, 갖은 신경질을 다 내놓고 모두를 삼킬 것 같은 어둠이 찾아오면 내가 왜 그랬을까, 아이에게 사소한 거에도 뭘 그리 짜증을 냈을까 하며 자책하는 날이 많았다. 이젠 아이에게 잘해줘야지 하면서 그다음 날 어김없이 화내는 날의 연속이었다.
회사에서 육아휴직 더 연장할 거냐는 인사과 직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인은 복직할 거라고 서둘러 말했다. 빈자리가 있는 어린이집에 준후를 서둘러 입소시켰다. 평소 엄마 반경 10m 이상을 벗어난 적이 없던 준후는 엄마가 자신을 혼자 놔두고 가버리자 어린이집이 떠나가라 울며불며 엄마를 찾았다. 처음에는 아이가 적응 못하면 그럴 수 있다며 여유를 부리던 선생님들도 계속되는 준후의 울음폭발에 서서히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수인이 준후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할 때 안 들어가고 버둥대는 아이를 겨우 어린이집에 집어넣을 때면 미안하고 안타까워 마음이 무거웠지만 발걸음은 마음과 반대로 재빨리 준후 반경에서 벗어나려 재촉하고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가 컴퓨터를 켜고 회의를 하고 탕비실에서 직원들과 수다를 떠는 동안 어느새 준후에 대한 걱정은 사라졌다. 애 있는 직원들이 어디 아파트가 학군이 좋다는 둥, 애 반찬은 어디 반찬가게가 낫다는 둥 아이 이야기를 하면 수인은 슬쩍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회사에 와서까지 아이 걱정을 사서 하고 싶지 않았다. 집에 가면 어차피 육아 시작, 아이 걱정 시작인데 하며 수인은 회사에 있는 만큼은 자신의 커리어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일이 없는 날에도 일부러 야근을 해 남편에게 준후 밥 좀 챙겨 먹이라고 할 때도 있었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렇게 즐거운 회사에서 퇴근하고 어린이집에 준후 데리러 갈 때면 가슴이 왠지 두근거렸다. 미간에 내천자를 새긴 선생님이 준후 손을 잡고 현관에 오면 오늘은 선생님이 또 무슨 말을 하시려나 선생님 입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어머님, 오늘 천사점토로 만들기 시간을 했는데요 준후가 점토 만지는 걸 엄청 싫어하고 짜증을 내서 결국 다른 방에서 놀았어요. 혹시 점토놀이 같은 거 집에서 해본 적 없나요?"
선생님은 말을 돌려서 말했지만 결국 집에서 이런 것도 안 하고 뭐 했냐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수인은 집에 가면 밥 차리고 씻기고 재우기 바쁜데 그런 거 할 시간이 어딨 냐고, 그러 걸 경험하라고 어린이집에 보내는 거지 하며 입술을 삐죽거리면서도 네, 알겠습니다. 집에서도 한번 해볼게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날이 갈수록 어린이집 선생님은 수인을 볼 때마다 준후에 대해 안 좋은 말만 늘어놓았다.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해요. 말도 안 하고 소리만 질러대요. 활동시간에 참여 안 하고 교실만 빙글빙글 돌아요. 편식이 심해요. 갑자기 교실밖으로 뛰쳐나가요. 혼자 대소변 못 가려요.
선생님은 준후의 발달이 많이 느리다고 걱정스럽게 이야기했지만 수인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언젠가는 하겠지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선생님들이 손이 많이 가는 준후가 귀찮아서 저런 말을 늘어놓나 싶을 때도 있었다.
"언젠가는 하겠죠."
걱정 가득한 선생님의 얼굴에 수인이 한마디 툭 내뱉고는 준후를 서둘러 집에 돌아왔다.
수인은 '언젠가는'이라는 마법의 단어로 준후를 외면하고 자신을 안심시키고 있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한건 영유아 건강검진이었다. 체격도 크고 건강해 언제나 그래프 꼭대기에 있어 문화센터 엄마들에게 상위 1%라고 은근히 자랑하고 다녔는데 개월수가 늘어날수록 대근육, 소근육 부분에서 점점 못하는 부분이 많아졌다. 문항을 보면서 수인은 깜짝 놀라곤 했다.
'아니, 이 개월수에 이런 게 가능하다고?'
영유아 검진에 정상인 아이들의 기준으로는 크고 작은 것도 구분할 줄도 알고 동화책을 보며 아는 단어도 몇 개 말할 줄 알아야 하고 자신을 봐달라고 어른들의 관심을 끌 줄도 알아야 되고 혼자서 신발도 벗을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이다. 준후는 전혀 할 수 없는 것들만 줄줄이 있어 처음에는 검진표가 다른 개월차수 것인데 잘 못준 것 아닌가 의심될 정도였다. 소아과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큰 병원에서 검사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의사는 정확하게 진단은 내리지 않았지만 의사가 뭘 얘기하려고 하는지 수인은 얼핏 짐작할 수 있었다. 뱃속 저 깊숙한 곳에 숨겨놨지만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 것. 나랑은 상관없는 그것. 그 단어를 꺼내면 정말 현실이 될 것 같아 애써 외면한 것을 수인은 떨리는 손으로 검색창에 입력했다.
‘자폐’
그 뒤로 여러 병원에 전화해 진료예약을 했다. 정신과에서 검사해야 되나 싶었지만 이 어린애가 무슨 정신과인가 싶어 처음엔 재활의학과에서 검사를 받았다. 어쩌면 무서워서 그랬었던 것 같다. 여러 병원을 다녔고 이번에는 지인의 지인을 통해 유명한 소아정신과도 어렵게 예약을 잡았다.
수인은 이번이 마지막 병원이다 생각하며 검사 마지막 문항을 쳐다봤다.
□ 다른 사람(부모, 형제, 친구)이 아파해도 관심이 없다.
문득 내가 아프면, 내가 죽어도 준후가 눈물을 흘리고 슬퍼해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글퍼졌다. 준후는 자신의 욕구를 채우지 못할 때의 슬픔 말고는 슬퍼하지 않을 것임을 왠지 수인은 직감했기 때문이다.
처음 간 재활의학과 말고는 다 같은 진단이었다. 그래도 오진이길 바랐던 수인의 바람은 마지막 병원에서 와르르 무너졌다.
준후는 F84. 전반성발달장애(자폐증) 진단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