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1. 엄마가 이상하다
고요한 밤,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아니, 뜨여졌다.
아주 아기 때부터 밤에 자주 일어났지만 최근에는 더 많이 깨는 것 같다. 해가 떠 있는 낮보다 더 정신이 맑은 느낌이다. 낮에는 들리지 않는 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바람에 옷깃이 스치는 소리가 밤에는 유난히 크게 들려 내 잠을 깨운다. 내가 이런 고요한 밤에 깨어나면 새벽까지는 눈을 말똥 하게 뜨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고 옆으로 굴렀다가 앉았다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창밖에 붉은빛이 조금씩 비춰올 때쯤 나는 잠이 쏟아져 픽- 쓰러진다. 그래서 엄마는 아침마다 나를 깨운다고 늘 전쟁이다.
오늘 밤에도 윗집 변기소리가 들려와 잠에서 깼다. 문득 인기척이 느껴져 옆을 돌아보니 엄마가 침대 머리맡에 앉아 내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고 있었다. 나는 그 촉감이 좋아 잠시 가만히 있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고 물건들이 더듬거리며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의 윤곽도 바깥 빛에 비춰 조용히 드러났는데 엄마 얼굴이 유난히 번들거렸다. 왜 저리 번들거리지 하고 빤히 쳐다보니 엄마 뺨에 물이 많이 묻어있었다. 세수하고 얼굴을 안 닦았나 보다. 나한테는 세수하고 수건으로 물기 제대로 안 닦는다고 잔소리하면서 엄마는 잘 때 물기 그대로 묻히고 있다니.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코도 훌쩍거린다. 엄마가 나한테 하는 것처럼 손수건으로 엄마 코에 대고 “흥해봐, 흥!”하며 코를 풀어주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내 머리를 만지는 엄마의 손길이 너무 부드러워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요즘 엄마는 밤에 자지 않고 내 옆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핸드폰으로 뭘 검색하는지 계속 뭔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는 경우도 있고 지금처럼 이렇게 나를 바라보며 “우리 준후 어떡해.”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릴 때도 있다. 지금 엄마의 표정은 요즘 배우는 표정카드 중 <슬프다>의 표정과 비슷해 보인다.
엄마가 요즘 이상하다. 내가 한창 놀고 있다가 문득 뒤통수가 따가워 쓱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엄마가 무섭게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내가 장난감을 일렬로 줄 세우거나 공중에 날아다니는 먼지 한 톨을 빤히 바라볼 때, 내가 즐거워 까르르 웃거나 화가 나서 막 내 배를 두드리면 엄마는 못볼꼴을 본 것처럼 기겁을 했다.
계속 내 이름을 불러대 귀찮아서 무시하면 엄마는 내가 고개를 돌릴 때까지 미친 듯이 내 이름을 불렀다. 엄마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내가 딴 곳을 쳐다보면 엄마는 왜 눈을 안 맞추냐며 나와 계속 눈싸움을 할 때도 있다.
이상한 건 이뿐만이 아니다. 요즘 병원을 너무 자주 간다. 내가 열나거나 기침해서 가는 소아과와는 조금 다른 곳이다. 그곳에는 소아과처럼 흰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이 있긴 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청진기나 주사는 없다.
어떤 병원은 한쪽에 어린이집처럼 장난감이 있는 공간이 있었고 최근에 간 곳은 아무것도 없이 그냥 의사 선생님과 테이블만 있는 곳도 있었다. 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방을 막 돌아다니면 의사 선생님은 무서운 눈빛으로 날 쳐다봤고 엄마는 초조하게 내 행동을 눈으로 좇았다.
새로운 병원에 갈 때마다 검사를 했는데 나는 그게 너무 귀찮고 하기 싫었다. 갑갑한 공간에서 선생님과 내가 마주 보며 앉아있고 책상에는 알 수 없는 종이들과 카드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선생님은 그림카드를 보여주며 이게 뭐냐고 물어볼 때도 있고 조그만 블록을 주며 만들어 보라 할 때도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뭘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지겹고 힘들었다. 내가 여기 있는 동안 엄마가 어디 가버릴까 봐 무서웠다. 내가 몸을 베베 꼬며 짜증을 내고 검사 도중 밖으로 나가려 하면 선생님은 재밌는 걸 발견한 것처럼 종이에 열심히 뭔가를 써 내려갔다. 내가 울며 보채도 그 사람은 그 두꺼운 검사지를 끝내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듯 책상을 똑똑 두드리며 나를 억지로 앉혀 검사를 진행했다.
검사를 마치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나와 엄마를 보면 더 힘이 쭉 빠졌다. 엄마는 병원에서 나올 때마다 <슬프다>의 표정을 지었다. 그 슬프다의 표정보다 좀 더 무거운 느낌이랄까. 엄마가 그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나도 울고 싶어 진다.
한 번은 엄마, 아빠와 다 같이 기차를 타고 병원에 간 적이 있다. 자동차를 탈 때 빠르게 달리는 느낌이 좋아 나는 차 타는 걸 좋아하는데 기차는 더 빨랐다. 창밖의 나무며, 건물이며, 전봇대들이 너무 빨리 지나쳐 여러 개 직선들의 연속으로 보였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내가 여태까지 간 병원보다 훨씬 컸다. 사람도 엄청나게 많아 나는 무서워 귀를 막을 정도였다. 그렇게 오래간 것 치고는 진료를 보고 나온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엄마가 진료실 문을 나오자마자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펑펑 흘렸다. 내가 듣기론 여태까지 다른 의사 선생님들이 한 말이랑 똑같이 한 것 같은데 이제야 엄마는 그걸 알아들은 것 같았다. 아빠는 엄마에게 울지 말라고 하면서도 정작 아빠 눈에도 눈물방울이 매달려있었다. 나는 엄마, 아빠의 우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도 내가 왜 웃는지 모르지만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너무 웃겨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내가 이렇게 웃으면 엄마 아빠도 기분 좋아지겠지? 하며 엄마 아빠 얼굴을 쳐다봤는데 둘 다 뻥진 얼굴을 하고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준후 진짜 자폐 맞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