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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육수 Jun 27. 2024

엄마가 이상하다

연재소설

1. 엄마가 이상하다


고요한 밤,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아니, 뜨여졌다.


아주 아기 때부터 밤에 자주 일어났지만 최근에는 더 많이 깨는 것 같다. 해가 떠 있는 낮보다 더 정신이 맑은 느낌이다. 낮에는 들리지 않는 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바람에 옷깃이 스치는 소리가 밤에는 유난히 크게 들려 내 잠을 깨운다. 내가 이런 고요한 밤에 깨어나면 새벽까지는 눈을 말똥 하게 뜨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고 옆으로 굴렀다가 앉았다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창밖에 붉은빛이 조금씩 비춰올 때쯤 나는 잠이 쏟아져 픽- 쓰러진다. 그래서 엄마는 아침마다 나를 깨운다고 늘 전쟁이다. 


오늘 밤에도 윗집 변기소리가 들려와 잠에서 깼다. 문득 인기척이 느껴져 옆을 돌아보니 엄마가 침대 머리맡에 앉아 내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고 있었다. 나는 그 촉감이 좋아 잠시 가만히 있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고 물건들이 더듬거리며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의 윤곽도 바깥 빛에 비춰 조용히 드러났는데 엄마 얼굴이 유난히 번들거렸다. 왜 저리 번들거리지 하고 빤히 쳐다보니 엄마 뺨에 물이 많이 묻어있었다. 세수하고 얼굴을 안 닦았나 보다. 나한테는 세수하고 수건으로 물기 제대로 안 닦는다고 잔소리하면서 엄마는 잘 때 물기 그대로 묻히고 있다니.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코도 훌쩍거린다. 엄마가 나한테 하는 것처럼 손수건으로 엄마 코에 대고 “흥해봐, 흥!”하며 코를 풀어주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내 머리를 만지는 엄마의 손길이 너무 부드러워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요즘 엄마는 밤에 자지 않고 내 옆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핸드폰으로 뭘 검색하는지 계속 뭔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는 경우도 있고 지금처럼 이렇게 나를 바라보며 “우리 준후 어떡해.”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릴 때도 있다. 지금 엄마의 표정은 요즘 배우는 표정카드 중 <슬프다>의 표정과 비슷해 보인다.


엄마가 요즘 이상하다. 내가 한창 놀고 있다가 문득 뒤통수가 따가워 쓱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엄마가 무섭게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내가 장난감을 일렬로 줄 세우거나 공중에 날아다니는 먼지 한 톨을 빤히 바라볼 때, 내가 즐거워 까르르 웃거나 화가 나서 막 내 배를 두드리면 엄마는 못볼꼴을 본 것처럼 기겁을 했다.


계속 내 이름을 불러대 귀찮아서 무시하면 엄마는 내가 고개를 돌릴 때까지 미친 듯이 내 이름을 불렀다. 엄마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내가 딴 곳을 쳐다보면 엄마는 왜 눈을 안 맞추냐며 나와 계속 눈싸움을 할 때도 있다.


이상한 건 이뿐만이 아니다. 요즘 병원을 너무 자주 간다. 내가 열나거나 기침해서 가는 소아과와는 조금 다른 곳이다. 그곳에는 소아과처럼 흰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이 있긴 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청진기나 주사는 없다.


어떤 병원은 한쪽에 어린이집처럼 장난감이 있는 공간이 있었고 최근에 간 곳은 아무것도 없이 그냥 의사 선생님과 테이블만 있는 곳도 있었다. 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방을 막 돌아다니면 의사 선생님은 무서운 눈빛으로 날 쳐다봤고 엄마는 초조하게 내 행동을 눈으로 좇았다. 


새로운 병원에 갈 때마다 검사를 했는데 나는 그게 너무 귀찮고 하기 싫었다. 갑갑한 공간에서 선생님과 내가 마주 보며 앉아있고 책상에는 알 수 없는 종이들과 카드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선생님은 그림카드를 보여주며 이게 뭐냐고 물어볼 때도 있고 조그만 블록을 주며 만들어 보라 할 때도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뭘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지겹고 힘들었다. 내가 여기 있는 동안 엄마가 어디 가버릴까 봐 무서웠다. 내가 몸을 베베 꼬며 짜증을 내고 검사 도중 밖으로 나가려 하면 선생님은 재밌는 걸 발견한 것처럼 종이에 열심히 뭔가를 써 내려갔다. 내가 울며 보채도 그 사람은 그 두꺼운 검사지를 끝내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듯 책상을 똑똑 두드리며 나를 억지로 앉혀 검사를 진행했다. 


검사를 마치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나와 엄마를 보면 더 힘이 쭉 빠졌다. 엄마는 병원에서 나올 때마다 <슬프다>의 표정을 지었다. 그 슬프다의 표정보다 좀 더 무거운 느낌이랄까. 엄마가 그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나도 울고 싶어 진다.


한 번은 엄마, 아빠와 다 같이 기차를 타고 병원에 간 적이 있다. 자동차를 탈 때 빠르게 달리는 느낌이 좋아 나는 차 타는 걸 좋아하는데 기차는 더 빨랐다. 창밖의 나무며, 건물이며, 전봇대들이 너무 빨리 지나쳐 여러 개 직선들의 연속으로 보였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내가 여태까지 간 병원보다 훨씬 컸다. 사람도 엄청나게 많아 나는 무서워 귀를 막을 정도였다. 그렇게 오래간 것 치고는 진료를 보고 나온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엄마가 진료실 문을 나오자마자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펑펑 흘렸다. 내가 듣기론 여태까지 다른 의사 선생님들이 한 말이랑 똑같이 한 것 같은데 이제야 엄마는 그걸 알아들은 것 같았다. 아빠는 엄마에게 울지 말라고 하면서도 정작 아빠 눈에도 눈물방울이 매달려있었다. 나는 엄마, 아빠의 우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도 내가 웃는지 모르지만 웃음을 멈출 없었다. 너무 웃겨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내가 이렇게 웃으면 엄마 아빠도 기분 좋아지겠지? 하며 엄마 아빠 얼굴을 쳐다봤는데 둘 다 뻥진 얼굴을 하고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준후 진짜 자폐 맞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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