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4. 다른 육아
수인은 겨우 시간 맞춰 ABA센터 선생님에게 준후를 맡기고 대기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비도 내리는데 사고라도 났는지 차가 막혀 늦을뻔했는데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여기는 5분, 10분 늦어도 보충해서 수업해주지 않고 칼같이 수업시간을 엄수한다. 수업내용이 끝나지 않아도 종소리가 울리는 순간 선생님은 교구들을 탁탁 챙기고는 뒤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린다. 아이가 아파서 수업을 못 받는다 해도 빠진 수업을 이월해 주거나 보충해주지 않는다. 1회기당 가격도 만만치 않아 지각하거나 한번 빠지면 타격이 크다. 지방에 몇 군데 없기도 하고 들어오고자 하는 아이들이 계속 차고 넘쳐서 그런지 센터를 그만둔다 해도 잡지 않는다. 수인은 이런 아이들 가지고 갑질하나 싶어 울끈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도 긴 대기를 뚫고 겨우 들어온 곳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볼멘소리를 한다 해도 수업받는 아이에게 손해가 될까 봐 결국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다.
수인이 창밖을 내다보며 한숨 돌리고 있을 때 가방 안에 진동이 느껴졌다. 폰 액정을 보니 친구 은주의 전화였다. 수인은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통화버튼을 눌렀다.
-수인아, 뭐 해? 준후는 잘 있지?
수인은 알고 있다. 은주는 수인과 준후의 안부를 물었지만 답은 하나도 궁금해하지 않다는 것.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할 것이다.
은주는 예전 직장 동료였다. 같은 나이였지만 은주가 2년 늦게 입사했는데 같은 대학 출신인 것을 알고 급속도로 친해졌다. 일 끝나면 같이 쇼핑을 가거나 술집에서 직장 상사욕을 실컷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가족에게도 하지 못할 고민을 서로 털어놓을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서로 너 없이는 직장 못 버틴다 하다 결국 은주가 결혼하며 회사를 그만뒀다. 직장 다닐 때만큼은 자주 연락하지 않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전화하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다 준후가 그렇게 된 뒤로 수인은 차츰 전화를 먼저 걸지 않았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해도 준후의 상태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말하고 싶지 않아 은주는 그냥 준후가 느리다고만 알고 있었다.
“응, 잘 있어. 무슨 일이야?”
- 아니, 하람이 말이야. 어유, 애 키우는 게 왜 이렇게 힘드니.
역시 또 하람이 이야기이다. 하람이는 은주의 첫째 아들인데 준후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 아기일 때는 친구가 생겨 좋다고 하며 아이들과 같이 노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하람이와 준후는 다르게 커갔다. 준후가 5월생이고 하람이가 12월생이었지만 걸음마도, 기저귀 떼는 것도, 말도 하람이가 훨씬 빨랐다. 수인의 고민은 아이가 느린 만큼 정체되어 있었지만 은주의 고민은 아이가 크는 속도만큼 빠르고 다양해졌다. 같은 또래의 아이를 키우지만 각자의 고민은 너무 달랐다. 아이들의 발달 갭이 커질수록 수인의 괴리감은 더 커져갔다.
- 애가 왜 이리 고집이 세니. 지금 다니는 태권도학원 그만두고 영어학원 보내려고 하니 안 간다고 고집부리잖아. 영어학원에는 친구들이 몇 명 없다느니, 숙제가 많다느니 하며 따지네.
“그럼 태권도학원 계속 보내면 되잖아?”
- 어머, 얘는 그게 무슨 소리니. 지금 이 시기에 영어학원을 다녀야 발음도 유창하고 학교 들어가서도 영어 때문에 고생 안 한대. 다른 애들은 벌써 그래머 몇 레벨인 줄 아니? 하람이는 한참 늦었어. 준후도 더 늦기 전에 영어학원 알아봐. 그리고 여기가 입소문이 나서 대기가 엄청 밀린 곳인데 거기 리셉션에 일하는 여자가 나랑 같은 필라테스 다니거든. 그 사람이 겨우 한자리 나왔으니 얼른 나보고 신청하라는데 하람이가 안 가겠다고 떼를 쓰잖아. 어휴.
“아, 그래...?”
- 하람이 아빠는 하람이 하고 싶은 대로 해주자 하지만 내가 이렇게 관리했으니 이 정도지, 남편이 키웠으면 아직 한글도 못 뗐어. 하람이가 친구들이랑 노는 것만 좋아하지 공부에는 도통 관심이 없어 걱정이네.
은주의 말에 수인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준후는 아직 한글을 떼기는커녕 말도 제대로 못 하는데. 같은 대기라도 한 명은 치료센터에 들어간다고 전전긍긍하고 다른 한 명은 유명한 영어학원에 들어간다고 전전긍긍한다는 게 아이러니해 수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수인이 보기엔 하람이는 아주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크고 있는데 은주는 뭐가 그리 걱정인 걸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맘카페에 들어가 보면 애가 또래보다 키가 작다느니, 애가 질문을 많이 해 피곤하다느니, 게임을 좋아해 걱정이라느니, 유치원을 어디 보내야 할지 고민이라느니 등의 걱정투성이 글들이 쏟아졌다. 수인은 그들의 고민들이 그저 부러웠다. 너무 부러워 질투가 느껴질 정도였다. 수인이 겪어보지 못한 걱정들, 어쩌면 평생 겪지 못할 걱정들이었다. 어쩌다 준후처럼 아이가 말이 느려 걱정이란 글에 반가워 눌러보면 발음이 좀 어눌하다든지 간단한 대화는 잘 하지만 좀 더 유창한 대화가 안 된다는 정도였다. 이게 고민이면 준후는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며칠 전 마트에 갔다가 장난감 코너를 막 지나칠 때였다. 3살쯤 보이는 여자아이와 엄마가 대치중이었다. 여자 아이는 자기 키만 한 장난감 상자를 끌어안고 얼굴을 삐죽거리고 있고 엄마는 허리에 손을 얹고 아이를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다.
“집에 비슷한 장난감 많은데 왜 또 사달래? 이번엔 못 사줘.”
“집에 있는 거랑 다르단 말이야. 사줘.”
“안돼. 얼른 제자리에 갖다 놔.”
엄마의 강압적인 분위기에 아이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필살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앙-!”
그 조그만 체구에서 엄청난 성량이 울려 퍼졌고 순식간에 마트에 있던 손님들이며 직원들의 눈이 아이에게 쏠렸다. 아이는 바닥에 드러누우며 발버둥을 쳤고 눈에서 구슬방울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아이 엄마는 이런 상황을 몇 번 겪어봐서인지 당황해하지 않았다. 엄마가 눈하나 깜빡하지 않자 아이는 더욱 얼굴에 힘을 주며 울어댔다. 어찌나 힘을 줬던지 얼굴이 벌겋다 못해 터질 지경이었다. 엄마도 엄마지만 아이의 고집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 그들의 대치상황에 지나가는 어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다른 엄마들은 자기 애는 저러진 않은 데하며 안심하는 눈초리로 지켜봤지만 수인은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준후는 뭘 사달라고 조르거나 고집을 피운 적이 없었다. 예전에는 생떼를 쓰는 아이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집을 피우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아이들이 정상이고 가만히 있는 준후가 이상한 거였다.
놀이터에 가면 엄마가 뒤에 졸졸 쫓아다니는 애는 준후밖에 없다. 다른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미끄럼틀을 타거나 무리 지어 킥보드를 타고 다니고 엄마들은 벤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서로의 육아 이야기에 열을 올리느라 바쁘다. 예전에 엄마들이 모여있는 곳에 수인이 끼인 적이 있었는데 그들과 대화를 하면 할수록 수인은 자신이 여기 있을 자리가 아닌 것 같아 슬쩍 빠져나오기도 했다. 그 엄마들도 준후를 보고는 자신의 아이들과 다르다 생각하는지 더 이상 수인에게 같이 이야기하자고 권하지 않았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할 수 없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은 똑같지만 다른 육아를 하기에 서로 이해를 할 수 없다.
핸드폰 너머에서 은주는 계속 재잘거리고 있었고 수인은 살짝 귀에서 핸드폰을 떼어냈다. 들으면 들을수록 은주의 고민은 고민이 아닌 것 같다. 그저 투정 부리는 것 같았다. 은주와의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하던 수인은 은주의 전화번호를 차단했다. 아무리 듣기 싫어도 그동안 알고 지낸 시간들과 우정을 생각하면 너무한 거 아닌가 싶었지만 수인은 그런 걸 따질 여유가 없었다. 들을수록 친구를 미워하고 시기하느니 차라리 아예 연락을 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은주가 나중에 자신의 상황을 이해해 줄지 모르지만 지금은 이게 최선인 것 같았다.
세찬 빗줄기가 창문과 수인의 마음을 세차게 두드렸다.